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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합병을 밀어붙일 수 있을까

  • 김병철
  • 입력 2015.06.10 10:42
  • 수정 2015.06.10 10:47
ⓒ연합뉴스

케이씨씨(KCC)가 삼성의 백기사로 나서고,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총 결의 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는 등 삼성과 엘리엇이 다음달 17일로 예정된 제일모직-삼성물산 간 합병 임시주총에서 각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케이씨씨가 지난 8일 삼성물산 주식 0.2%(약 230억원 안팎)를 사들인 것은 삼성의 요청에 따라 백기사 역할을 맡은 것이다. 케이씨씨는 2011년에도 삼성카드로부터 삼성의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 주식을 대규모로 사들여 삼성과 우호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 케이씨씨는 보유 주식가치가 수조원에 이를 정도로 만만치 않은 현금 동원력이 있어, 9일에도 추가로 삼성물산 주식을 사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규정상 7월 합병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이날까지 주식을 매입해야 한다.

엘리엇도 삼성물산과 이사진을 상대로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는 등 본격적인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는 엘리엇이 지난 4일 지분 7.12% 보유 사실 공개와 함께 제일모직-삼성물산 간 합병 비율(1 대 0.35)의 불공정성을 지적하고, 이후 국민연금과 삼성물산 주주인 삼성 계열사들에 합병 반대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 데 이어진 행보로 삼성에 대한 압박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이는 작전으로 보인다.

현행 규정상 합병은 주총에서 출석주주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을 확보해야 통과된다. 평소 삼성물산 주총에서 주주 참석률은 60% 안팎이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 경우 주주 참석률이 더 높아지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으로서는 실질적으로 50% 가까운 우호 지분을 확보해야 합병안 통과를 확실시할 수 있다. 반면 엘리엇은 20~30%가량의 훨씬 더 적은 지분만 확보해도 합병을 무산시킬 수 있다. 현재로서는 삼성과 엘리엇 모두 자체 지분만으로는 크게 부족하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1.37%)과 삼성에스디아이(7.18%) 등 계열사 지분을 모두 합쳐도 13.65%다. 자사주 5.76%를 우호세력에 넘기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지만, 삼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엘리엇은 자체 지분 7.12%와 동조 의사를 밝힌 일성신약의 2.05%를 합치면 9.17%를 확보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일부 소액주주들은 인터넷 자체 카페를 개설하고 의결권을 엘리엇에 위임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삼성과 엘리엇 모두 동조세력 확보가 관건인 셈이다. 시장에서는 최대주주로 9.79%를 보유한 국민연금과, 전체 외국인 지분 34.03% 가운데 엘리엇을 제외한 나머지 27%의 향배가 승부의 키를 쥔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26일 합병 발표 당시에는 현 주가 수준과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주당 5만7234원)을 비교해 주총에서 찬반 여부를 판단하겠다며 사실상 삼성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최근 신중한 태도로 돌아섰다. 시장의 한 관계자는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일고 있는데 국민연금이 뒷짐 지고 있는 것은 책임 방기이고, 자체 의결권 행사 지침 위배라는 비판이 경제개혁연대와 야권에서 제기되면서 고심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엘리엇을 제외한 나머지 외국인 투자자 가운데 네덜란드 연기금 등 장기투자 성향 기관투자자 30~40곳은 합병 비율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면서도 엘리엇과 다른 독자 행보를 선택했다. 이들은 삼성에 긴급이사회를 열어 합병 비율을 재산정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외국인들은 9일 삼성물산 주식을 347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외국인들의 삼성물산 지분 보유율은 합병이 공시된 지난달 26일 34.01%에서 6월 초에 32%대로 떨어졌다가, 엘리엇 사태를 거치며 이날 34.03%까지 올랐다.

결국 공은 삼성으로 넘어간 셈인데, 삼성 안에서는 대응 방향과 관련해 강온 기류가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합병 비율의 재산정 등 시장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개선안을 내놓을 경우 국민연금과 대다수 외국인 기관투자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지만, 외부 압력에 물러섰다는 전례를 남기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반면 기존 합병 비율을 고수하는 강경책을 선택할 경우 주총에서 엘리엇과 힘든 표대결을 감수해야 한다.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교수는 “삼성으로서는 7월 주총에서 엘리엇과의 단판 승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향후 3세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긴 여정을 남겨두고 있다. 사회와 시장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헤아려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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