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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와 세월호의 닮은 점 6가지(분석)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사고와 2015년 5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전염 확산은 닮았다. 무능력과 무책임은 쌍둥이 같고 골든타임은 또 놓쳤다. 늦장 초동 대응 탓에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 비전문가로 구성된 컨트롤타워의 안일함은 끝이 없었다. 치료하고 구조할 인력과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마저도 훈련이 안 됐다. 세월호 사고 뒤 7시간 만에 모습을 드러냈던 대통령은 메르스 발생 13일째 되는 날에 메르스를 처음 언급했다. 메르스 감염자 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1. 늦장 초동 대응

메르스 2015년 5월11일 최초 환자(68)는 기침·발열 등을 앓았다. 병원 4곳을 전전하다가 5월17일 서울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가 고열 증세 등으로 찾아간 4번째 병원이었다. 진료하던 의사는 메르스를 의심했다. 환자가 중동 지역인 바레인을 다녀왔다고 말하자 그는 보건 당국에 신고했다. 5월18일 오전이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검사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레인은 메르스 발생국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30시간 뒤 병원은 다시 메르스 검사를 요청했고 5월20일 확진 판정이 나왔다. 최초 환자에게서 감염 증세가 나타난 지 9일, 병원이 메르스를 의심한 지 2일 만이었다.

세월호 4월16일 아침 8시53분 학생 최덕하(17·사망)군이 119에 “배가 기울고 있다”고 신고했다. 3자 통화를 받은 해양경찰은 경도와 위도를 물으며 ‘골든타임’을 허비했다. 오전 9시7분 세월호와 교신을 시작한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도 배가 급속히 기우는 상황인데 선장에게 “알아서 하라”며 퇴선 명령을 미뤘다. 이는 “비상탈출 여부는 현지 상황을 잘 아는 선장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해경 상황실의 지시를 따른 것이었다.

2. 오락가락 피해자 수

메르스 초기 역학조사에서 보건 당국은 환자와 2m 이내 거리에서 1시간 이상 접촉한 사람만 ‘밀접 접촉자’로 보고 격리 관찰 대상으로 잡았다. 그런데 5월28일 최초 환자와 10m나 떨어진 같은 병동의 다른 병실에 입원했던 환자가 감염자로 확인됐다. 또 다른 환자의 아들(44·10번째 환자)도 5월19일부터 발열 등 메르스 의심 증상이 있었음에도 중국 출장(5월26일)을 떠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검역망 밖에서 다른 병원을 방문했고 또 다른 환자와 의료진을 감염시켰다. 결국 세계 최초로 3차 감염자가 등장했다.

세월호 탑승자 수와 실종자, 구조자 수가 끝없이 바뀌었다. 탑승자 수는 사고 첫날부터 477명→476명→459명→462명→475명으로 거듭 조정되다 마침내 476명으로 굳어졌다. 구조자 수도 161명→368명→164명→179명으로 계속 변하다가 174명으로 정리됐다. 174명으로 확정됐던 구조자 수는 사고 발생 20일 만에 다시 172명으로 줄었다. 동일인이 중복 기재되고 실제 탑승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3. 무지한 대통령

메르스 “5월20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메르스 환자가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15명의 환자가 확인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6월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처음 메르스를 언급했다. 첫 확진자가 나온 지 13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15명의 환자”는 틀린 숫자였다. 이날 아침 보건 당국은 감염 환자가 18명이라고 발표했다. 박 대통령이 메르스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청와대는 사망자 2명이 나온 6월2일 전문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24시간 비상근무 체제를 가동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예외였다. 그는 이날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 참석했다. 비상 상황이 닥쳤는데도 평상시 잡아놓은 일정은 소화하겠다는 뜻이다. 6월14~18일에는 방미 일정이 잡혀 있다.

세월호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드냐?” 오후 5시30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박 대통령이 질문했다. 이경옥 안전행정부 2차관이 “(배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선체 내부에”라고 설명하자 박 대통령이 “아, 갇혀 있어서…”라고 답했다. 사건 발생 9시간이 지났지만 승객 대부분이 배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대통령이 모르는 듯한 인상이었다.

사고 발생 다음날 박 대통령은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방문했다. 그는 “철저한 조사와 원인을 규명하겠다.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엄벌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진상 규명을 위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현재 출범도 못했다. 정부가 인력과 예산 문제로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9일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4. 컨트롤타워의 안이한 판단

메르스 정부는 메르스 감염력이 0.6~0.8로 낮다는 점을 과신했다. 2차 감염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잠복기가 지나자 확진자가 속출했다. 최초 환자로부터 감염된 사람이 20명이 넘었다. 그가 ‘슈퍼 전파자’였던 것이다. 또 그가 머물렀던 한 병원에서만 감염자가 30명 나왔다. 병원 내 감염 위험성이 크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세월호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헬기 511호가 세월호 상공을 선회하며 통신한다. “대부분 선상과 배 안에 있음.” 뒤이어 도착한 경비정(123정) 역시 “사람이 하나도 안 보이고 구명벌(구명뗏목) 투하도 없고”라고 보고했다. 현장의 긴박한 보고를 받은 해경 수뇌부는 묵묵부답이었다. “잠시 후 침몰할 것으로 보인다”는 현장 보고가 잇따르자 첫마디를 내뱉는다. “힘을 내봐!” 세월호가 완전히 전복되기 직전인 오전 10시14분 본청 상황실에서 명한다. “여객선 자체 부력이 있으므로 바로 뛰어내리기보다는 함정에서 차분하게 구조할 것.”

5. 부족한 시설과 인력

메르스 감염병 사태에 대비한 음압시설(병실 안 기압이 외부보다 낮아 문밖으로 공기가 나가는 것을 차단하는 시설)을 갖춘 국가지정 격리병상은 모두 105개뿐이다. 이 때문에 보건 당국은 결핵 등 다른 감염 환자의 격리병상을 비워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시설 격리 대상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지만 마땅한 곳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다.

세월호 수백 명이 탄 여객선이 침몰하는 상황인데도 침몰 전에 해경이 보낼 수 있는 구조 세력은 100t급 소형 경비정(123정)과 헬기 3대뿐이었다. 다른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함정들은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단속에 동원된 상태였다. 현장에 도착한 해경 대원들은 배 안으로 진입해 인명을 구조하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다.

6. 비전문가 컨트롤타워

메르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연금 전문가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복지부 장관은 경제학과 출신이고 차관은 법대 출신의 사회복지 전공자다. 비전문가들이 국가 의료 위기 상황 때마다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세월호 김석균 당시 해경청장은 해경 출신이지만 바다를 몰랐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법제처 사무관을 지내다 1996년 경정 특채로 임용됐다. 당시 경무관 이상 고위 해경 간부 14명 중 함정 근무 경력이 없는 사람이 절반이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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