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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08일 13시 1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6월 08일 14시 12분 KST

복면 게이

어쩌다 나오게 된 방송 "SBS스페셜,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블러 처리된 나와 남편의 얼굴을 보니, 글을 쓸 때 느꼈던 이 김게이라는 이름의 가면성이 너무 직접적으로, 시각적으로 느껴져 뭔가 유난스러운 오늘이다. 언젠가 나도 가면 위의 가면을 벗고, 비로소 내 모든 가면을 벗어 자유로워질 날이 오길 바란다. 대부분의 회사원 게이가 그렇듯, 어쩌다 술자리 이야기로 게이 연예인 이야기라도 나오면 더럽네 죽여버리고 싶네 하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조직에서 밥벌이를 해야 하는 신세 탓에 아직 가면을 벗을 자신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맺을 관계를 내가 선택할 수 있게 되는 날, 그 냄새 나는 편협함을 굳이 견디지 않아도 되는 날, 그날 족쇄를 끊듯 가면을 벗고 노래를 해야지. 덩실덩실 춤을 춰야지.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주지 않겠는가.

Thomas Vogel

이중 가면

요즘 복면가왕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평소 챙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라고 해봤자 프런코나 도수코, 댄싱나인, 한식대첩 뭐 이런 정도였는데(써놓고 보니 뭔가 채널 취향, 프로그램 취향도 다 게이 같아...), 이렇게 본방 사수까지 해가며 보게 된 프로그램이 새로 생긴 건 오랜만이다.

가끔 나가수 뺨치는 무대가 나올 때 느껴지는 듣는 즐거움을 넘어서서, 가면을 꽁꽁 싸맨 저 가수가 대체 누구인지 추리해 보고 예상해 보는 건 또 굉장한 재미이다. 그리고 마침내 가면에 감춰진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의외의 인물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그때 느껴지는 짜릿함이란.

훌륭한 밴드 사운드와 가창도 좋고, 투표를 통해 결승까지 올라가는 승부 구조도 긴장감 넘치지만, 역시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가면이다. 어떤 가수들은 노래를 듣는 순간 금세 누군지 알아차릴 수도 있었지만, 그 동안 많은 화제가 되었던 몇몇 인물들은 정말 저 사람이 이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놀라울 때가 많았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여러 역할들이 뒤섞인 연예인의 이미지로 소비되다 보니, 진짜 가수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사람들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감동에 겨워 누구지 누구지 하고 있을 때 춤 잘 추기로 유명한 댄스 가수들이 나올 때면 정말 깜짝 깜짝 놀라곤 했다. 이게 역시 가면의 힘인가 싶으면서도, 자기의 목소리를 가리고 있던 댄스 가수, 웃긴 연예인이란 이미지가 어쩌면 진짜 가면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복면 게이

대한민국의 게이로 살면서 난 대부분의 시간을 가면을 쓴 채로 살아간다. 남자 직원들이 카톡으로 야한 여자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내주면, 아무리 단체방이라도 'ㅋㅋ 감사합니다' 정도의 성의 표시는 해줘야 하고, 주변 팀에 새로운 여직원이라도 들어올 때면 어김없는 노숙자들의 슈퍼카 품평을 들으며 최소한의 관심 표현 정도는 해줘야 한다. 우리 형, 그러니까 내 남편을 때로는 그냥 집을 같이 나눠 쓰는 선배로, 때로는 멀리 다른 동네에 떨어져 혼자 사는 여자친구로 변신시켜가며 태평양 오지랖에 대응해야 할 때도 부지기수다.

머리통이 커지고 난 뒤만 생각해도 십 수년을 이렇게 살았으니 이 가면이라는 게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참 신기한 게 익숙하면서도 떨칠 수 없는 이물감이 있다. 평생 안경을 써 온 사람이라도 쓸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려나.

글에서나 퀴어 행사, 모임 같은 데서 김게이라는 이름으로 날 소개할 때면, 어떤 면에서는 가면 위에 가면을 쓰는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게이로서의 글을 쓰는 지금도 얼굴은 뒤로 숨긴 채 내 진짜 이름을 감추고 있으니, 아무리 나는 게이요, 남자와 결혼을 했소 해봤자 오롯이 진짜 나를 보여주는 일일 수는 없다.

물론 이렇게 한 겹의 가면을 더 쓴 채라도 게이로서의 글을 쓰는 일이 날 더 자유롭게 하는 건 당연하다. 복면가왕에 나온 사람들이 이미지이라는 가면 위에 한 꺼풀의 가면을 더 쓴 상태에서야 자기 노래를 자유롭게 들려줄 수 있듯이, 여자를 좋아하는 척 하는 내 가면 위에 김게이라는 가면을 하나 더 써야만 나도 이렇게나마 자유로워진다.

간절히 원하면

어쩌다 나오게 된 어젯밤 방송 "SBS스페셜,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블러 처리된 나와 남편의 얼굴을 보니, 글을 쓸 때 느꼈던 이 김게이라는 이름의 가면성이 너무 직접적으로, 시각적으로 느껴져 뭔가 유난스러운 오늘이다. 보여주지만 숨어있고, 내 이야기지만 내 목소리가 아니고, 필요하지만 버려야 하는 이 가면의 양가적 성질.

[관련 기사 링크 "SBS 스페셜이 말하는 동성 결혼이 당연한 이유"]

언젠가 나도 가면 위의 가면을 벗고, 비로소 내 모든 가면을 벗어 자유로워질 날이 오길 바란다. 대부분의 회사원 게이가 그렇듯, 어쩌다 술자리 이야기로 게이 연예인 이야기라도 나오면 더럽네 죽여버리고 싶네 하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조직에서 밥벌이를 해야 하는 신세 탓에 아직 가면을 벗을 자신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맺을 관계를 내가 선택할 수 있게 되는 날, 그 냄새 나는 편협함을 굳이 견디지 않아도 되는 날, 그날 족쇄를 끊듯 가면을 벗고 노래를 해야지. 덩실덩실 춤을 춰야지.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주지 않겠는가.

(www.snulife.com 에 게시된 글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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