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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의 종교와 과학

전염병 대유행 시대 종교의 역할을 SNS가 수행한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평상시 환희가 흘러넘치던 그곳에 요즘은 공포가 만연해 있으니 말이다. 물론 신종플루와 사스(SARS)에 이어 오늘날의 메르스까지 대유행 단계까지 이른 예는 아직 없다. 하지만 SNS 상에서는 그에 못지않다. 메르스 초기부터 각 지역 상황이라며 올라온 소문들은 살벌하기만 하다.

  • 김방희
  • 입력 2015.06.08 11:20
  • 수정 2016.06.08 14:12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 확산 사태라면 중세 유럽의 흑사병을 꼽을 수 있다. 14세기 중반 시작된 이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많게는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이 죽었다는 추정도 있다. 적어도 3분의 1 가량은 사망했다.

이 전염병의 기원과 원인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많다. 일반적인 설로는, 아시아에서 발병해 쥐와 같은 설치류를 통해 유럽으로 전파됐다. 실제로 1330년대 초 중국에서는 흑사병으로 추정되는 전염병이 돌았다는 기록이 있다. 1346년 크림반도의 카파(현재의 페오도시야)에서 전투를 벌이던 몽골 군영에서도 치명적 역병이 발생했다. 이때 몽골군은 시체를 투석기에 넣어 상대 진영에 던져 넣는 등 일종의 세균전을 펼쳤다. 그 결과 도시 전체가 흑사병의 온상이 됐다. 도시를 탈출한 이들이 북부 이탈리아로 향하면서, 이 전염병은 무역로를 따라 프랑스와 영국, 북부 유럽 등으로 널리 퍼졌다.

그 후 3백년 동안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게 된 데는 종교의 역할이 컸다. 당시 유럽에서는 기독교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다. 사태 초기 많은 사람들은 신종 유행병을 신의 징벌로 여겼다. 그 결과 자신의 몸을 가혹하게 다루는 종교적 수행이 유행했는가 하면, 세상의 종말을 믿는 염세주의도 널리 퍼졌다. 특히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의 시체는 길거리에 공공연히 버려둔 채 교회에 모여 기도를 올리고는 했다.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발병 초기와 달리 점차 사람과 사람의 접촉으로 흑사병이 전파됐기 때문이었다.

마녀 사냥과 함께 이뤄진 고양이 대량 살처분도 흑사병 대유행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초기 흑사병 매개체인 쥐의 대량 번식이 이뤄졌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인노첸시오 8세가 일종의 종교 순화 차원에서 마녀뿐만 아니라 고양이의 처리를 지시했다는 기록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칙서는 1484년 발표됐다. 이때는 이미 흑사병이 유럽을 한 차례 강타한 후 위세가 덜할 때였다.

정작 흑사병 대유행을 끝낸 것은 위생과 검역 절차였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할 때도 유태인 공동체는 비교적 타격을 덜 받았다. 이들이 평상시 위생을 중시하는 습관과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15세기 들어 유럽 각국은 방역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동시에 여행증명서를 발급했다. 일단 여행객이 다른 나라의 국경을 통과하려면 한 달 이상의 법적 검역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 결과 흑사병의 전염 속도는 현저히 둔화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전염병과 싸우며 일종의 내성이 생긴 것도 흑사병이 자취를 감춘 데 한몫 했을 것이다.

1411년 토겐부르크 성서에 그려진 흑사병 환자 (위키피디아)

공포는 SNS를 타고

요즘 사람들은 SNS(Social Network Service)에 열광한다. 그곳에 올라온 글과 사진, 동영상에 열광하고, 올린 사람을 부러워하고 추종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그리고 블로그는 현대판 종교라고 할 만하다. 중세인들이 종교로 그랬듯, 현대인들은 SNS를 통해 세상을 본다. 심지어 전염병 대유행 시대 종교의 역할을 SNS가 수행한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평상시 환희가 흘러넘치던 그곳에 요즘은 공포가 만연해 있으니 말이다.

물론 신종플루와 사스(SARS)에 이어 오늘날의 메르스까지 대유행 단계까지 이른 예는 아직 없다. 하지만 SNS 상에서는 그에 못지않다. 메르스 초기부터 각 지역 상황이라며 올라온 소문들은 살벌하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전염병과 싸워야 할 정부는 이른바 유언비어와의 전쟁을 수행 중이다. 전염병에 대한 소문을 막으려고 지나치게 정보를 감추고 소극적으로 대처한 탓에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지적마저 받는다.

중세나 지금이나 종교는 전염병의 유행을 막지 못한다. 무기력한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공포와 무관심은 오히려 전염병 확산을 부추기는 경향마저 있다. 6백50년 전이나 지금이나, 팬데믹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위생과 검역이라는 점을 우리가 종종 망각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 이 글은 제민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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