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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디버디를 기억하세요? 메신저 앱 20년, 그 흥망의 역사 정리

  • 박수진
  • 입력 2015.06.08 10:13
  • 수정 2015.06.08 10:28

그래픽: 한겨레 이임정 기자 (이미지를 새 탭에서 열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28살 김보아씨의 첫 메신저는 '버디버디'였다. 2000년대 초반 고등학교 시절, 새학기가 되면 같은 반 친구들끼리 종이 한 장을 돌려 ‘버디 아이디’를 공유하고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다. 10명 중 7명은 집에 컴퓨터가 있고, 피시(PC)방이 전성기를 누리던 때다. 낯선 이와도 대화할 수 있는 기능에 마음이 설렌 것도 잠시, 음란·광고성 쪽지가 난무하자 또다른 메신저인 드림위즈 ‘지니’로 갈아탔다.

대학 입학을 전후해 2005년부터는 ‘네이트온’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크게 유행하면서 그와 연동된 네이트온을 사용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엠에스엔(MSN) 메신저는 어학연수 다녀온 친구들이 많이 썼다”고 그는 기억했다. 자신은 엠에스엔 메신저를 거의 안 썼다며 한마디 덧붙였다. “메신저라는 게 친구들 영향이 크잖아요.”

“과장님, 이제 대세는 마이피플이에요.” 36살 이승미씨가 1년 동안의 휴직을 마치고 업무에 복귀했던 2013년 4월, “엠에스엔 메신저로 대화 나누자”고 말하는 그에게 후배는 딱 잘라 말했다. 엠에스엔 메신저는 ‘스카이프’로 바뀌어 낯설고, 카카오톡은 스마트폰 전용이니 업무 중에는 쓰기 불편한데, 마이피플은 모바일과 컴퓨터에서 동시에 구동이 돼 편하다”는 설명이었다.

각각 불과 10년 전, 2년 전 이야기인데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격변해온 ‘메신저의 흥망’ 때문일 것이다. 드림위즈 ‘지니’는 1999년 9월에 출시됐다가 2010년 8월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2000년 1월에 서비스를 시작했던 ‘버디버디’도 2012년 5월에 문을 닫았다. 카카오톡보다 먼저 모바일과 피시 버전을 연동했던 ‘마이피플’도 이달 30일 서비스를 그만둔다.

국내에 인스턴트 메신저가 등장한 지 17년, 그사이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퇴장한 서비스들을 짚어보면 ‘격동의 17년’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그들은 왜 인기를 끌었고, 어쩌다가 그 인기를 유지하지 못했으며, 어떤 서비스에 밀렸는가? 지금 우리에게 친숙한 메신저들은 어느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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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 메신저’란 별도의 채팅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고도 프로그램을 설치한 사람들끼리 실시간 대화를 하거나 파일 전송을 할 수 있는 인터넷 서비스를 뜻한다. 지난해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를 보면 20대의 99.4%가 메신저를 사용하고, 인터넷 사용자의 84%가 메신저를 매일 쓴다. 매일 쓰는 서비스라면 익숙하고 편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가치다.

이 때문에 메신저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했던 가치는 ‘선점’이었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그 안에 친구, 가족, 동료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메신저들이 출시 경쟁을 했던 초창기를 지나면 시장을 먼저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운영체제에 메신저를 끼워넣거나 ‘무료 문자’를 앞세운 전략 등이 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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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 메신저 서비스는 1996년 11월 이스라엘 회사 ‘미라빌리스’가 개발한 ‘아이시큐’(ICQ)'가 최초다. 국내 첫 메신저는 디지토닷컴이 1998년 9월 출시한 ‘소프트메신저’를 꼽을 수 있다. 1999년 <한겨레>에 실린 “실시간 쪽지·채팅 번개 같아요”(링크)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경탄의 어조로 ‘소프트메신저’ 등을 소개하고 있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국내 메신저들이 여럿 등장했지만 곧 시장은 ‘엠에스엔 메신저’ 중심으로 재편됐다. 2000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윈도 운영체제(OS)에 메신저를 끼워팔았기 때문이다.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런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행위에 대해 324억9천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이미 흐름이 바뀐 뒤였다.

에스케이(SK)커뮤니케이션즈가 ‘소프트메신저’ 개발자들과 협력해 ‘네이트온’을 개발한 것이 2002년 10월이다. ‘엠에스엔 메신저’는 물론 드림위즈 ‘지니’, ‘버디버디’, 세이클럽 ‘타키’(2002년 4월)보다 늦은 때였다. 하지만 에스케이커뮤니케이션즈는 싸이월드를 인수해 2003년 9월 ‘네이트온’과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연동했고 무료 문자 전송을 지원하면서 메신저 시장을 뒤흔들었다.

20대 김씨와 30대 이씨의 ‘메신저 추억’이 정확하게 겹치는 세번의 순간 중 첫번째가 바로 이때다. 두 사람 모두 싸이월드 미니홈피로 ‘파도’를 타며 놀고 네이트온으로 대화를 나눴다. 2005년 3월 ‘네이트온’은 ‘엠에스엔 메신저를 꺾고 피시용 메신저 시장 1위에 올라 ‘카카오톡 피시 버전’이 나오기 전인 2013년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2008년 6월 사용자 수는 2500만명을 넘어섰다.

두번째 순간은 스마트폰 시대가 본격 개막한 2010년,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이 출시된 때다. ‘무료’의 매력은 모바일 시대에도 통했다. 2010년 3월 서비스를 시작한 ‘카카오톡’의 사용자 수는 지난달 기준으로 2919만2888명이다. 스마트폰의 기존 주소록을 그대로 이용해 무료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게 해주는 이 단순한 메신저의 영향력은 “문자 보낼게”라는 말을 “카톡 할게”로 대체할 정도로 강력했다.

바로 이때, 메신저 시장 1위를 지켜오던 ‘네이트온’은 무엇을 했을까. 네이트온 개발에 초창기부터 관여해온 한 개발자는 “모바일이 그렇게 급격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네이트온은 모바일 대응보다는 피시용 메신저 틀 안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시도하는 쪽으로 개발 방향을 맞췄다. 또다른 관계자는 “대기업이다보니 의사결정이 늦은 것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카카오톡보다 7개월 늦게 모바일 버전을 내놨을 때는 이미 100만명 이상이 카카오톡을 즐겨 쓰는 상태였다.

이때부터 스마트폰과 결합한 메신저는 ‘실시간 대화’를 넘어 게임, 뉴스, 쇼핑 등의 플랫폼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인스턴트 메신저는 처음에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시작했지만 2012년 카카오톡이 ‘애니팡’ 등 전용 게임을 유통시키면서 하나의 미디어 플랫폼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동시에 환호한 서비스는 카카오톡의 피시 버전이다. 카카오톡은 ‘소프트메신저’ 개발자를 영입해 2013년 6월 카카오톡 피시 버전을 출시했다. 모바일과 피시를 아우르는 서비스의 출시가 다른 메신저들보다 늦었는데도 이미 모바일 시장을 점령하고 있던 카카오톡이 피시 사용자를 장악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출시 2주 만에 200만명이 피시 버전을 내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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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의 위기는 예상 밖의 방향에서 터졌다. 지난해 9월 검찰의 카카오톡 감찰에 대한 회사 차원의 대응 과정에서 사용자들이 실망을 해 ‘사이버 망명’을 떠난 것이다. 이때 조명을 받은 것이 독일에서 만든 메신저 ‘텔레그램’이다. 국내 사용자가 4만명 수준이던 텔레그램은 한달 만에 가입자 수가 172만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망명 사태 두달 뒤, 텔레그램은 실제 사용 여부를 보여주는 도달률에선 3.9%에 그쳤다.

하지만 이때를 계기로 아무리 강력한 메신저라 할지라도 기업 이미지 때문에 사용자들이 순식간에 등을 돌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김병수 서울여대 조교수(경영학)는 2013년 지식경영학회 추계 학술대회에서 “기업 이미지가 모바일 메신저 사용자 만족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세계 시장에서의 변화도 숨가빴다. 2011년 1월 중국의 텐센트가 ‘위챗’을, 6월 엔에이치엔(NHN)의 일본 법인이 ‘라인’을, 8월 페이스북이 페이스북 메신저 앱을 출시했다. 미국의 앱 분석 회사인 케트라의 올해 1분기 통계를 보면 전세계 애플리케이션 중 가장 많이 실행된 상위 10개 중 6개가 카카오톡, 와츠앱, 위챗, 라인 등의 메신저였다.

국내외 메신저의 기능은 ‘상향평준화’된 상태다. 빠른 속도는 물론 무료 음성통화, 화상통화 기능까지 ‘특별하다’고 내세우기 어렵게 됐다. 앞으로 승부는 플랫폼 전략에서 나올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지난해 카카오와 다음이 합병한 뒤 ‘다음카카오’는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카카오페이’, 콜택시인 ‘카카오 택시’ 등을 내놓으며 ‘메신저 플랫폼의 활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네이버 라인은 아시아 시장에서 라인 페이, 라인 택시 등을 운영중이다.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메신저가 많아지면서 용도에 따라 서로 다른 메신저를 쓰려는 움직임도 있다. 앱 통계 분석 서비스 ‘앱애니’ 집계 결과를 보면, 연인을 위한 둘만의 메신저 ‘비트윈’, 익명의 소통을 주선하는 ‘모씨’ 등이 애플 앱스토어 ‘소셜 네트워킹’ 분야 10위권 안팎에 올라 있다. 네이트온도 올해 안에 사무용 메신저 기능을 강화한 서비스를 내놔 ‘직장인 사용자’를 잡을 계획이다. 김성철 교수는 “메신저 세계에서 당장 지배력이 있다고 해도 영원하지 않아 매력적인 ‘킬러 앱’이 나온다면 얼마든지 판도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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