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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조선 호랑이'를 따지지 마라

  • 원성윤
  • 입력 2015.06.07 11:22
  • 수정 2015.06.07 11:30

전남 목포 유달초등학교에서 전시중인 국내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조선(아무르)호랑이 박제. 불갑산에서 잡힌 이 맹수는 일본인 동물저술가 엔도 기미오에 의해 포획 과정이 밝혀졌다.

▶ 조선호랑이, 아무르호랑이, 시베리아호랑이는 다 같은 하나의 종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는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엇갈립니다. 다만 전남 목포 유달초등학교의 호랑이 박제는 호랑이가 이 땅에 살았다는, 현존하는 유일한 증거입니다. 호랑이의 마지막 장면들, 그리고 이를 추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한 일본인의 노력이 국내 연구자들에게 이어졌고 지금은 외국인 연구자들도 한국에 와서 호랑이를 탐구합니다.

‘마지막 호랑이’는 ‘마지막 황제’만큼이나 아련하고 강력한 단어다. 사라진 호랑이는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로 가장 많이 회자된 건 1922년 경주 대덕산에서 사살된 이였다. 일제강점기 초등학교 교과서인 <국어독본>에 실린 이 이야기는 1980년 1월26일 <한국일보>가 사진을 입수해 “이 모습이 남한 땅 마지막 호랑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하지만 여러 기록을 보건대, 대덕산 호랑이가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였을 리 만무하다. 2년 뒤인 1924년 2월1일 <매일신보>만 봐도 강원 횡성에서 잡힌 호랑이 사진이 있고, 그 뒤에도 호환과 목격담이 심심찮게 신문에 나왔다. 마지막 호랑이는 분명치 않다.

살아있는 호랑이를 발견하면, 그 호랑이가 마지막이 된다. 호랑이의 것처럼 보이는 발자국에 흥분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도 그것이 마지막 호랑이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보도 이틀 전인 24일 <동아일보>는 똑같은 장소인 경주 대덕산에서 야생호랑이가 58년 만에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오보였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벵골호랑이 사진을 건넨 제보자의 거짓말에 기자가 속아 넘어갔다. 마지막 호랑이를 둘러싼 가장 큰 해프닝이었다.

전남 목포시 유달초등학교에도 ‘마지막 조선의 호랑이’가 있다. 불갑산호랑이. 일제강점기 사냥된 호랑이는 호피나 박제로 죄다 국외로 반출됐지만, 불갑산호랑이는 혼자 초등학교 복도에 남아 역사를 증언한다.

4월22일 오후, 어두운 복도 유리상자 안에 한 왜소하고 빛바랜 맹수가 서 있었다. 체장 160㎝, 신장 95㎝. 잔뜩 기대했는데 볼품이 없었다. 그래도 튀어나온 근육, 포효하는 호랑이의 자세는 꽤 역동적이었다. 박제로 만들어진 1908년만 해도 큰 구경거리가 됐을 것이다. 이 호랑이가 국내에 현존하는 유일한 조선(아무르)호랑이 박제라는 사실을 처음 알린 이는 일본인 동물저술가 엔도 기미오였다.

1980년대 한국에 드나들며 이 호랑이의 역사를 추적한 그의 이야기를 간추리면 이렇다. 1908년 영광 불갑산에서 덫에 걸린 호랑이를 농민들이 발견해 창으로 찔러 죽였다. 호랑이를 팔기 위해 농민들은 맹수를 둘러메고 목포까지 며칠을 걸었다. 호랑이는 일본인 실업가 하라구치 쇼지로에게 경매로 넘겨져, 당시 일본인 학교였던 유달초등학교에 기증된다. 엔도 기미오는 불갑산호랑이 말고도 1922년 경주 대덕산 호랑이에게 물린 촌로를 찾아가 인터뷰하는 등 일제강점기 조선호랑이의 마지막 장면들을 기록했다.

호랑이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진 결정적인 이유는 해수구제 정책 때문이었다. 엔도 기미오가 밝혔듯, 1920년까지만 해도 엽총을 가진 조선인 포수는 일본인 포수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았고, “한반도의 새와 짐승을 걱정할 만한 상태로 만든 장본인은 바로 일본인”이었다.

일례로 1917년 11월에는 일본에서 ‘정호군’이라는 대규모 민간 호랑이사냥대가 도착해 함경도, 금강산, 전남 일대에서 호랑이를 토벌한다. 12월엔 도쿄 제국호텔에서 각계 인사를 초청해 ‘포획물 시식회’도 연다. 정호군을 조직한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는 “여기 이 자리에 매우 희귀한 고기를 내놓는다”며 인사말을 시작한다.

“전국시대의 무장은 진중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호랑이를 잡았습니다만, 다이쇼시대의 저희들은 일본의 영토 내에서 호랑이를 잡았습니다. 여기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자, 이쯤에서 참석하신 모든 분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건배를 하겠습니다.”(야마모토 다다사부로의 <정호기>)

함경남도 호랑이의 차가운 고기, 영흥 기러기 수프, 고원 멧돼지 구이와 작은 과자를 곁들인 아이스크림 등이 식탁에 올랐다. 주최 쪽은 호랑이 뼈의 정기를 뽑아 ‘호골정’이라는 환을 손님들에게 나눠줬다. 야마모토가 언급했듯, 과거 일본은 한반도에서 호랑이 사냥을 한 적이 있었다(일본에는 호랑이가 살지 않는다).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총애하는 가토 기요마사를 비롯해 여러 무장들이 경쟁적으로 호랑이를 잡아 본국에 보냈다. 장병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포획을 지시했다는 해석이 있는데, 그 뒤 일본에서는 호랑이와 용맹스럽게 싸우는 무사 그림이 자주 그려졌다.

각각 인도와 중국의 호랑이 서식지에서 보전활동에 참여하다가 현재 서울대에서 유전자분석법을 연구하는 푸닛 판디(31·왼쪽)와 리잉(30)

일본인의 호랑이 사냥은 조선인에게 어떻게 다가갔을까. 매우 보기 힘들었지만, 신문에 간혹 실리는 호환은 공포를 주기에 충분했다. 경기 양주군에서 호랑이가 가축을 많이 물어가고(<동아일보> 1924년 6월24일), 경남 진주에서 호환이 나자 경찰에 포획을 의뢰하고(˝ 1927년 9월9일), 묘령의 임산부가 평남 대동군의 산골짝에서 톱으로 베인 듯 두 다리만 남고 몸통이 없어진 사건(˝ 1939년 6월5일) 등이 일어났다.

엔도 기미오가 조선총독부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1917~18년을 제외한 1915~24년까지 8년 동안 연평균 13.8명이 호랑이나 표범의 공격으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야생보호 개념도 없던 시대였다. 일제는 헌병과 경찰을 동원해 호랑이를 잡고, 민간인들의 사냥을 장려했다. 해수구제를 제국주의의 자연수탈이라고 반대하던 이는 그 시대에 없었다. 적어도 일제에 의해 호랑이가 멸종됨으로써 민족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은 당대 사람들이기보다는 후대의 우리들이었다는 것을 당시 자료 등으로 추측할 수 있다.

호랑이는 민족의 상징이었지만, 학계에서 진지하게 연구되지 않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가 무색할 정도로, 민속학을 제외하곤 자연과학이나 인문·사회과학 등 ‘과학’의 영역에서 다룬 이가 없었다. 연구 대상인 호랑이가 사실상 남한에서 멸종됐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씨앗 하나가 뿌려졌다. 2004년 환경단체 녹색연합 회원을 중심으로 ‘아무르표범 보호 만원계’ 모임이 시작됐다. 야생동물 연구자, 환경단체 활동가 등이 한달 1만원씩 모아서 한국 표범과 호랑이 보호활동에 나서자는 취지였다. 이항 서울대 교수(수의학)와 김동진 교원대 박사(생태사학) 등이 호랑이 연구에 뛰어들었다. 이들이 국내 호랑이 연구 1세대다. 2010년에는 한국범보존기금이 창설됐다.

빈약한 자료를 모으는 데서 연구의 첫발을 디뎠다. 엔도 기미오 등의 작업이 발견됐고,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정호기> 등의 책으로 번역했다. 김동진 박사는 <조선왕조실록> 등을 분석해 농경지 개간 등으로 인해 호랑이 서식지가 위협받았고 이것이 잦은 호환으로 나타났음을 보여줬다.

국외로 반출된 조선호랑이의 박제도 수소문했다. 이항 교수 등은 2009년 일본 도쿄 국립과학박물관과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의 조선호랑이 박제 디엔에이(DNA)를 채취·분석해 이들이 한때 한반도에서 살았음을 밝혀냈다. 두 호랑이가 현재 극동러시아와 중국에 400~500마리 서식하는 아무르호랑이와 유전적으로 동일한 집단임이 밝혀졌다. 즉 조선호랑이와 아무르호랑이는 같은 혈통을 갖는 같은 종이다. 국립생물자원관도 2009년 유달초등학교 불갑산호랑이 박제의 젖가슴 살점으로 유전자 검사를 벌여 조선호랑이임을 최종 확인했다.

국내 호랑이 연구는 차츰 체계를 잡아가고 있다. 이항 교수 연구실에는 외국인 박사과정 학생 두 명이 호랑이 디엔에이 분석을 연구한다. 인도에서 온 푸닛 판디(31)는 2010~11년 인도 중부의 란탐보어(Ranthambhore) 호랑이 보호구역에서 발자국과 무인카메라 그리고 유전자 분석 등으로 지역 주민과 벵골호랑이의 갈등을 연구해왔다. “서너 차례 호랑이를 직접 봤어요. 마음만 먹으면 관광객도 가서 볼 수 있을 정도로 마을과 호랑이의 서식지가 가까워요. 야행성이어서 인간과의 충돌이 생각보다 빈번하지는 않죠.”

판디는 아무르호랑이와 벵골호랑이를 포괄해 한꺼번에 호랑이의 아종을 구별해내는 유전자 분석법을 개발하는 연구를 한다.

중국에서 온 리잉(30)은 2011년부터 일년 동안 중국-러시아 국경 인근 서쪽의 훈춘 자연보호구역에서 아무르(조선)호랑이 모니터링을 했다. 아무르호랑이는 극동러시아 남북을 잇는 시호테알린산맥을 따라 주로 분포하고, 가장 남쪽에선 중국 훈춘 보호구역에서도 발견된다. 리잉은 지난 27일 “이 지역 인근에 건설된 고속도로가 호랑이의 이동통로를 가로지르고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에는 중국 동북 내륙지역인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에서 호랑이가 출몰하는 게 관심사다. 호랑이 서식지가 점차 서쪽인 백두산 방향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한때 호랑이가 많이 살았지만 개발로 사라진 곳이다. 이달 들어 지린성 황니허 국가자연보호구역 인근 민가의 소가 호랑이에게 습격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다섯 차례 발생했다. 호랑이가 보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호랑이 개체 수가 약간 늘면서 서식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호랑이들이 서쪽으로 이동했으리라는 추정이 나온다. 이 지역 숲 환경이 나아진 것도 이유다.

호랑이에게 국경은 없다. 서식영역 최대 800~1000㎢를 갖는 조선호랑이는 전라도 남단의 불갑산에서 시베리아의 입구 시호테알린산맥까지 호령했다. 중국 동북지역에는 사라졌다가 최근 눈에 띄기 시작했다. 백두산에서도 발견될지 모를 일이다. 이항 교수는 27일 “극동러시아와 중국에 있는 호랑이를 보호하는 일이 조선호랑이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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