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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공군기지에 택배로 탄저균이 들어와도 우리는 안전한 걸까?

  • 박세회
  • 입력 2015.06.06 12:35
  • 수정 2015.06.06 12:37
ⓒJTBC캡처

해골의 골짜기에서 시작된 생물 무기

미국 유타주에는 약 3243㎢의 ‘그레이트 솔트레이크 사막’이 있다. 모르몬교의 도시 솔트레이크시티 서쪽으로 100여㎞ 떨어진 이곳은 산맥에 둘러싸인 사막분지다.

1968년 봄, 솔트레이크시티 주민들의 공포가 현실화됐다. 이 사막의 ‘스컬 밸리’라 불리는 산등성이에서 6000~6400마리의 양떼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은 채 발견된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한군데로 쏠렸다. 스컬 밸리에서 40여㎞ 떨어진 ‘더그웨이 육군 생화학 실험기지’였다.

당시 지역언론 보도와 <사이언스> 1968년 12월 기사를 살펴보면, 재난이 벌어지기 하루 전날 미 육군은 신경가스(VX)를 공중에서 살포하는 실험을 벌였다. 주변 초본류와 죽은 양의 몸에서 흔적이 검출됐다. 미 육군은 생물무기 실험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최초의 양 사체가 발견되기 하루 전인 3월13일 살포실험이 이뤄진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지금까지도 미 육군은 명시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스컬 밸리 사건은 생물무기가 대량살상을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된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한 논쟁이 미국을 달구었고, 1970년대 환경운동과 반전운동의 성장의 촉매가 된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에서 ‘탄저균 우편물 공격’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면서, 국내에서도 탄저균 의심 신고가 빗발치는 등 ‘흰색 가루’의 공포가 이어졌다. 2001년 10월18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발견된 흰색 가루를 생화학테러 대비 요원들이 수거하고 있다.

오산 공군기지에 탄저균이 도착했다

더그웨이 육군 생화학 실험기지에서 지난 4월말~5월초 소포가 왔다. 배송지는 경기 오산 미국 공군기지의 한 실험실. 소포 안에 든 것은 냉동 포장된 액체 1㎖의 분량의 비활성화된 탄저균 샘플이었다. 탄저균 샘플은 실험실 냉동고에 보관됐다가 5월21일 실험 준비를 위해 해동됐다.

주한 미군은 포자 형태의 액체 1㎖ 분량의 탄저균 표본을 민간 배송업체인 페덱스를 통해 오산 공군기지로 들여왔다고 서울 경제신문이 전했다.

엿새 뒤, 실험실 연구원들은 미국 국방부로부터 긴급 명령을 받았다. 배달된 탄저균이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즉시 폐기하라는 것이었다. 주한미군은 긴급대응팀을 투입해 탄저균 샘플을 락스 성분의 표백제에 넣어 폐기하고 실험실 사방을 제독제로 닦았다. 이렇게 모든 조처를 완료하고 주한미군은 보도자료를 냈다. 주한미군은 28일과 29일 보도자료에서 “24시간 뒤 실험실 공기에서 탄저균 포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연구원 등 22명의 감염 증상은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어떠한 위협 요소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대한민국 정부의 긴밀한 공조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원래 탄저균 샘플은 비활성화되거나 죽은 상태로 배달됐어야 했다. 미 국방부가 급히 오산기지에 폐기를 명령한 이유는 활성화된 표본이 발송됐을 가능성을 뒤늦게 인지했기 때문이다. 탄저균 샘플은 미국 국내외 여러 곳에 배달돼 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하나인 미국 메릴랜드주의 한 민간연구소가 배달받은 비활성화된 탄저균 샘플이 배양되기 시작한 걸 발견했다. 이 민간연구소는 곧바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신고했고, 미국 국방부가 의심스러운 표본이 배달된 곳에 즉시 폐기를 명령한 것이다.

애초 미 국방부는 탄저균 샘플이 미국 9개 주의 실험실과 한국에 실수로 발송됐다고 밝혔지만, 조사가 진행될수록 의심스러운 샘플이 배달된 실험실은 늘어만 갔다. 지난 3일 밥 워크 국방부 차관이 브리핑룸에 섰을 때엔 미국 17개 주와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등의 51개 실험실로 늘어나 있었다. 밥 워크 차관은 “이 수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생화학방어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프랭카 존스 중령은 “탄저균이 일반에 노출될 확률은 0%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그는 탄저균 샘플의 포장 과정을 기자들 앞에서 시연했다. 탄저균 샘플 1㎖가 든 시료병을 비닐 지퍼락에 넣고 다시 액체를 흡수하는 부직포에 쌌다. 그는 다시 내구성이 강한 폴리카보네이트 통에 이를 넣은 뒤 드라이아이스와 함께 상자에 넣어 배달됐다고 설명했다. ‘감염성 물질’이라는 경고 또한 부착되어 있다며 존스 중령은 상자 겉면을 가리켰다.

탄저균은 생물무기로 인공 배양되기 이전부터 인간과 동물을 괴롭혀왔다. 20세기까지 유럽 대도시에는 심심찮게 탄저병이 나돌았고 사망 원인의 상당 비율을 차지했다. 예방접종으로 가축 탄저병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인간 탄저병의 경우 2005년만 해도 경남 창녕에서 탄저병에 걸려 죽은 쇠고기를 먹은 주민 5명이 감염돼 2명이 숨진 사건이 있었다. 국내에서 발생한 인간 탄저병은 대부분 죽은 쇠고기를 먹고 나타나는 ‘장 탄저병’이었다. 탄저균은 포자 상태로 대기를 날아다닐 수 있는데, 호흡기를 통해 몸안으로 들어가면 호흡 곤란을 수반하는 ‘폐 탄저병’도 일어날 수 있다.

‘변신 괴물’이 생물무기로 개발돼

19세기 독일의 의사 로베르트 코흐는 막대기 모양의 박테리아(탄저균)가 가축에 탄저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그는 탄저병에 걸린 동물에서 혈액을 채취해 실험용 쥐에게 주입했다. 쥐는 곧 탄저병이 걸렸다. 그런데 어떤 동물은 흙에만 노출되었는데도 탄저병 증상을 보였다. 미생물 연구의 최대 미스터리였다. 코흐는 얼마 안 돼 흙속에서처럼 산소가 부족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환경에서는 탄저균이 스스로 포자를 만들어 보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숙주가 있는 유리한 환경에서는 포자는 다시 치명적인 박테리아로 변신했다. 탄저균은 이렇게 환경에 따라 형태를 변화시키며 포자 상태로 옷이나 신발 등을 타고 이동했다.

포자 상태의 탄저균은 확산성이 좋고, 이것이 일으키는 폐 탄저병은 치사율이 95%에 이를 정도로 높다. 이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래 각국은 생물무기로 이용하기 위해 탄저균 포자를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탄저균을 배양해 무기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포자 상태로 만들어 건조하는 게 핵심이다. 이렇게 ‘흰색 가루’가 나온다. 인체 실험은 일제강점기 731부대에 수용된 포로들을 대상으로 맨 처음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2차대전 당시 영국도 스코틀랜드의 그뤼나드 섬을 폐쇄하고 양떼를 대상으로 탄저균 실험을 진행했다. 1997년 공개된 기록영상을 보면, 공중에서 투하된 탄저균 포자가 흩어지면서 양떼는 사흘 뒤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2001년 9·11 무역센터 테러 직후 벌어진 ‘탄저균 우편물 공격 사건’은 미국 사회를 흰색 가루의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해 10월5일 타블로이드지 <선>의 직원이 탄저병 양성 반응을 보이자, 뒤이은 조사에서 탄저균 포자가 든 여러 통의 편지가 에이비시(ABC), 엔비시(NBC) 등 언론사와 상원의원 사무실에 배달된 것이 확인됐다. 5명이 숨지고 17명이 감염됐다. 부시 대통령은 탄저균 테러의 배후로 알카에다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용의자는 메릴랜드주의 미 육군기지 포트디트릭에서 일하는 연구원 브루스 아이빈스였다. 이 연구소는 더그웨이와 쌍벽을 이루는 미국의 대표적인 생화학전 기지다. 2008년 연방수사국(FBI)이 수사망을 좁혀오자 아이빈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망상증 환자’의 테러로 추정될 뿐 알카에다 공격설을 뒷받침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생물무기를 적진에 살포하는 것은 독을 묻힌 부메랑을 던지는 것과 비슷하다. 적진에 투하된 세균이 아군 지역으로 되돌아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백신이 없으면 공멸하는 자살공격이 된다. 그래서 생물무기는 백신 개발이 필수다. 무기개발 단계에서도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탄저균에 대한 세계 최고의 대응 역량을 쌓아왔다. 대응 역량은 동전의 양면이다. 탄저균 공격에 대한 방어 능력이 있다는 얘기는 거꾸로 공격 능력도 갖췄다는 얘기다. 특히 생물학전에서는 생물무기뿐만 아니라 백신의 성능이 더 중요하다. 백신의 효과가 좋고 보유량이 많을수록 상대방의 생물무기 사용을 억제하면서 힘의 우위를 달성할 수 있다.

미국은 왜 백신을 개발했나

미군은 1998년부터 탄저균 백신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2001년 탄저균 편지 테러 사건과 2003년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탄저균 백신이 모든 군인에게 의무화됐고 2008년까지 약 200만명에게 접종됐다. 줄곧 안전성과 정치적 논란이 따라붙었다. 일부 군인은 백신 접종을 거부했고, 생물무기에 대해 과잉 반응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미군은 지금도 ‘방어’를 목적으로 탄저균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탄저균 백신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학자가 많다. 피츠버그대의 토머스 잉글스비 교수 등은 1999년 쓴 <생물무기로서 탄저균>에서 “탄저균 백신 생산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민간용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설사 탄저균 백신이 충분히 확보되더라도 인구 규모의 예방접종은 비용이나 보급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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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저균은 왜 한국에 배달됐을까? 주한미군은 자초지종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문제의 탄저균 샘플은 주한미군의 생화학무기 공격 대응 프로그램인 ‘주피터(JUPITR·연합 주한미군 포털 및 통합위협인식) 프로그램’ 훈련을 위해 반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 프로그램은 생화학무기의 독소나 병원균 표본을 채집해 최소 4~24시간 안에 어떤 성분인지 감식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이 실험을 위해서는 탄저균 샘플이 필요하다. 2013년 미국 방위산업협회가 주최한 한 포럼 자료를 보면, 주한미군은 탄저균뿐만 아니라 가장 강력한 독소로 알려진 보툴리눔까지 주피터 프로그램의 분석 물질로 올려놓았다.(<한겨레> 6월4일치 1면)

1975년 미·소 냉전 때 발효된 생물무기금지협약(BWC)은 탄저균의 개발·생산·비축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은 사실상 이 협약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987년 이 협약에 가입한 한국은 2011년 생화학무기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탄저균을 반입하려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허가를 받고 보유량을 신고해야 한다. 주한미군주둔군지위협정(SOFA)은 위험물질을 반입할 때 한국에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주한미군 쪽은 비활성화된 탄저균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에 통지할 필요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국내에서 진행된 생화학무기 대응 프로그램의 현황과 진척 사항에 대해서도 주한미군은 입을 닫고 있다. 이렇게 국내에서 탄저균 실험이 추진되는 게 사실로 보이지만, 우리 군은 아직까지 탄저균 백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반면 주한미군은 탄저병 예방접종을 받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달 28일 “탄저균 감염 시 치료가 가능한 항생제 ‘시프로플록사신’과 ‘독시사이클린’을 보유하고 있다. 탄저균 백신은 질병관리본부가 2016년을 목표로 연구 중인데 개발이 완료되는 대로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968년 스컬 밸리 사건 이후 생화학무기는 없는 것처럼 있어왔다. 생물무기금지협약도 생물무기를 없애는 데 실패했다. 생물무기 연구는 방어용으로만 진행됐다고 미국은 밝혀왔지만, 2001년 탄저균 우편물 공격 사건처럼 자국 연구소에서 배양된 ‘세균만 있다면’ 테러와 사고는 언제든 터질 수 있다. 주피터 프로그램에 따르면, 서울 용산, 경기 오산 그리고 충남의 한 실험실에서 생화학무기 독소를 분석하게 돼 있다. 국내에도 탄저균과 보툴리눔 등 세균이 있다면, 사람이 실수하거나 테러로 이용될 가능성 또한 상존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우리는 미국처럼 탄저균 백신을 대량 생산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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