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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없는 풍력발전기의 꿈

보어텍스 풍력발전기엔 날개가 없다. 거대한 기둥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다. 이 기둥이 바람을 받아 에너지를 생산한다. 원리가 독특하다. 보어텍스 풍력발전기는 공기의 소용돌이 현상을 이용한다. 소용돌이 현상은 건축가에겐 오랜 세월 동안 위험 요소로 인식돼왔다. 보어텍스 공동설립자인 다비드 슈리오리와 다비드 야니에즈, 라울 인헤니에로는 발상을 바꿨다. '왜 회오리바람을 피하기만 하는 거지? 그걸 에너지로 바꾸면 되잖아.' 그들은 이 발상을 풍력발전기 디자인에 투사했다.

  • 이희욱
  • 입력 2015.06.07 07:38
  • 수정 2016.06.07 14:12
ⓒ보어텍스 블레이드리스

풍력발전기는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기둥은 하늘 높이 치솟고 거대한 날개는 바람 따라 빙글빙글 도는 풍경. 130년이 지나도록 이 디자인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이 거대한 '풍차'는 종종 문제를 일으켰다. 새들이 풍력발전기 날개에 부딪혀 속절없이 죽어간 것이다. 거대한 날개가 돌며 만들어내는 진동과 소음은 주민에게도 골칫거리였다. TV와 라디오 전파를 방해하는 데다 두통과 구토, 어지럼증까지 유발했다.

이런 까닭에 전통적 풍력발전기 디자인을 벗어나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2012년 새폰에너지는 풍력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해 충전해둘 수 있는 접시 모양의 새로운 풍력발전기 모델을 선보였다. 시그마디자인이란 대안에너지 기업은 메가폰 모양의 풍력 터빈을 단 발전기 모델을 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시원찮았다. 대개는 턱없이 낮은 생산성 때문에 곧바로 시장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혁신의 바람은 디자인 도면만 겨우 스쳐가는 미풍에 그쳤다.

또 다른 혁신의 도전자가 등장했다. 스페인 기업 보어텍스 블레이드리스는 한발 더 나아갔다. 그만큼 훨씬 파괴적이다. 보어텍스 풍력발전기엔 날개가 없다. 거대한 기둥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다. 이 기둥이 바람을 받아 에너지를 생산한다. 원리가 독특하다. 보어텍스 풍력발전기는 공기의 소용돌이 현상을 이용한다. 소용돌이 현상은 건축가에겐 오랜 세월 동안 위험 요소로 인식돼왔다. 보어텍스 공동설립자인 다비드 슈리오리와 다비드 야니에즈, 라울 인헤니에로는 발상을 바꿨다. '왜 회오리바람을 피하기만 하는 거지? 그걸 에너지로 바꾸면 되잖아.' 그들은 이 발상을 풍력발전기 디자인에 투사했다.

보어텍스 블레이드리스 제공

보어텍스 풍력발전기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아래쪽은 본체 격인 기둥이다. 윗부분엔 강화유리섬유와 탄소섬유를 합성해 만든 기둥이 하나 더 있다. 두 기둥 사이엔 자석 링이 달려 있다. 보어텍스 발전기에 닿은 바람은 기둥 전체를 감싸며 회오리 현상을 일으킨다. 상단 기둥은 이 바람을 받아 사방으로 흔들리고, 자석은 위아래 기둥이 닿는 부분은 밀어내고 떨어진 곳은 당긴다. 이런 식으로 기둥은 일정한 운동에너지를 발생시키고, 이는 전기에너지로 변환된다. 이 과정 사이엔 어떤 기계 부품도 들어가지 않는다. 보어텍스가 발전기 제작비를 줄이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보어텍스는 높이 12.5m인 '보어텍스 미니' 모델로 현장 테스트를 거쳤더니 4kW가량 전기를 생산했다고 밝혔다. 기존 날개 방식 발전기보다 30% 정도 적은 수준이다. 그렇지만 보어텍스 발전기는 같은 공간에서 기존 날개 방식보다 2배가량 촘촘히 설치할 수 있어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이들은 말했다. 또 이 새로운 디자인이 제조 비용을 53%, 발전기 유지 비용은 최대 80%까지 줄여줄 것이라고 했다. 탄소배출량도 기존 발전기보다 40%가량 줄여주는 친환경 제품이란다. 소음도 적으니, 새나 주민도 더 안전하다. 무엇보다 기존 풍차발전기보다 공간을 덜 차지하는 점이 좋다. 보어텍스는 높이 2m에 100W 정도 전기를 생산하는 시제품을 저개발 지역에 우선 내놓을 예정이다. 보어텍스 미니도 올해 안에 선보일 계획이며, 1MW 이상 전력을 생산하는 대형 모델 '보어텍스 그랑'도 제작 중이다.

보어텍스의 시도가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아직 없다. 무수한 혁신 모델이 시제품 단계에서 바람이 돼 날아갔다. 지난 20년 동안 나온 수많은 풍력발전기 가운데 효율성을 입증한 모델은 단 하나, 지금의 풍차발전기였다. 그럼에도 이건 확실하다. 우리에겐 지금보다 나은 풍력발전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보어텍스는 그 가능성에 도전하는 참이다. 보어텍스는 이미 100만유로가 넘는 투자금을 금고에 채웠다. 6월부터는 보어텍스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기금도 모금한다. 보어텍스는 이 돈을 바탕으로 올해 안에 시제품 발전기를 공개할 계획이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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