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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채기와 기침에 관한 매너

영국에서의 올바른 예의는 재채기를 최대한 티 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코와 입을 싸 쥐고 입술을 앙다물어 참거나,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재채기가 나올라치면 가능한 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비록 이렇게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여간 재채기를 하면 미안하다Excuse me라고 양해를 구한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아무도 본인을 주목하지 않는 경우에도, 예를 들어 거리를 걸어가는 도중에도 혼자 재채기를 하고 혼자 대상 없이 Excuse me를 하기도 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한참 유행했지만, 매너는 사람을 지켜 주기도 한다. 침이 사방에 다 튈 정도의 씨원한 재채기를 하고, 입도 가리지 않고 기침을 하는 것은 가까운 사람을 감염시키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 김세정
  • 입력 2015.06.05 06:21
  • 수정 2016.06.05 14:12
ⓒPhilip Date

굳이 한국의 여러분들이 영국의 매너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냐, 한다면 또 할 말 없지만. 그러나 지금은 글로벌 시대. 중동의 낙타에게서 시작된 질병이 한국을 강타하고 뭐 그러는 시절인 것이다. 허니, 혹시 아나 뒀다가 언젠간 쓸지도 몰라, 의 심정으로, 영국에서의 재채기 및 기침 매너를 살펴 보아 드리기로 한다.

서울에서는 재채기를 하다가 참거나 소리가 작거나 하면, 옆에서들 막 뭐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다 답답하다고. 그게 뭐냐고. 하려면 시원하게 하라고. 특히 남자가 읏치(제대로 에취!가 아니고 조그만 소리가 나는 정도)했다간 수모를 당하는 일까지 있다.

반면, 영국에서는 재채기를 후련하게 해서는 안 된다. 영국에서의 올바른 예의는 재채기를 최대한 티 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코와 입을 싸 쥐고 입술을 앙다물어 참거나,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재채기가 나올라치면 가능한 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이건 소위 교양 있다는 사람들, 특히 여자들의 경우일수록 당연히 더 하여서, 어떤 여자 법정변호사barrister의 경우엔 갑자기 코를 꼭 쥐길래 저분 뭐하나 하고 보니, 재채기를 하는데 정말이지 소리 자체가 나지를 않더라고. 몸만 움찔하고 얼굴만 찌그러지더라 (이런 건 또 함부로 따라 할 일은 아닌 것이, 어떤 한국 사람이 영국으로 건너온 초기에 이와 같은 고급의 무소음 재채기 기술을 따라해 보다가 고막이 터질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비록 이렇게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여간 재채기를 하면 미안하다Excuse me라고 양해를 구한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아무도 본인을 주목하지 않는 경우에도, 예를 들어 거리를 걸어가는 도중에도 혼자 재채기를 하고 혼자 대상 없이 Excuse me를 하기도 한다. 언젠가 한번은 텅 빈 쇼핑몰의 저쪽에서 한 사람이 '읏치' 하더니 Excuse me, 하길래 나에게 대고 하는 소리인 건가 했다만, 알고 보니 그냥 허공에 대고 그러는 거더라고. 이러고 있는 거 막상 보면 조금 웃기다. 사실 점점 보기 드물어지고 있기는 하다만, 예전에는 이게 당연한 예의였고 많이들 그랬다. 따라서 여전히 기차나 버스 등 사람이 따닥따닥 있는 곳에서 재채기를 하는 경우와 같을 때는 Excuse me를 하는 것이 제대로 배운 예의범절이다. 뭐, 또릿또릿하니 큰 소리로 할 필요는 없고, 하는 척 중얼중얼거리기만 하면 된다. 이건 아이에게도 상당히 철저하게 주입시키는 예의라서, 아이가 재채기를 하면, Excuse you!라고 가르친다. 그러면 가끔, Bless me! 하고 받아치는 아이들도 있다.

즉, 누군가 재채기를 하면 그 옆에 있던 사람들은 Bless you!라고 말해 주는 것이다(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이를 말해줄 필요까지는 없다). 이는 매우 그 기원이 오랜, 1세기 정도에도 있었던 관습이라고 하는데, 왜 이런 짓을 하냐면 재채기를 하면 영혼이 빠져 나가 신에게로 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재채기가 나쁜 존재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에 주문처럼 신의 가호를 빌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으며, 재채기가 나쁜 존재 또는 악마를 몸 안으로 불러들이는 문이라는 설도 있다.

예전 동료인 영국인 사무변호사solicitor에게 왜 재채기sneeze만 Bless you를 해주고 기침cough할 땐 안 하는 거냐, 했더니 14세기와 17세기 두 차례에 걸쳐 영국에 엄청나게 유행했던 흑사병의 초기 증상 중 하나가 재채기였고, 그래서 재채기를 하는 사람은 이미 죽은 거나 다름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신의 가호를 빌어 주는 거다, 라고 하던데, 그게 맞는 말인지는 확인해 본 바 없고.

말하자면, 기침의 경우에는 옆사람들이 신의 가호를 빌어주지는 않는다. 하는 당사자도 심하게 기침을 해서 주변을 방해했겠다, 싶을 정도가 아니면 굳이 Excuse me를 하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역시 입을 가리고 하는 것이 매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한참 유행했지만, 매너는 사람을 지켜 주기도 한다. 침이 사방에 다 튈 정도의 씨원한 재채기를 하고, 입도 가리지 않고 기침을 하는 것은 가까운 사람을 감염시키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로마에서 로마의 법을 따른다 해서 굳이 나쁠 건 없다. 외국인이 에에에취! 하고 재채기를 요란하게 한다고 하여 대놓고 뭐라고 할 영국인들이란 잘 없기는 하지만, 아아주 싫어하고, 속으로 욕한다. 그러니, 영국에 온다면 한국에서처럼 듣는 사람 속이 다 시원하게 후련할 정도로 에에에취! 재채기를 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침방울 마구 튀게 하는 건 좀 안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기침도 입을 가리고 하고. 사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침 튀어 좋을 건 그닥 없다. 그러니 개인 건강 및 주변 사람들, 지역 사회의 안녕을 위해서 이제는 쫌 재채기와 기침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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