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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개정 국회법

국회법 개정은 세월호참사 이래로 이룩된 유일한 개혁에 다름 아니다. 그런 법률을 또 한번 대통령이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그런 대통령에게 "뭐가 삼권분립 위배냐"고 반문한 유승민 원내대표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 보수의 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한번도 새누리당과 그 전신이었던 정당들의 국회의원을 응원한 바 없었지만, 지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폭거를 막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유승민 원내대표를 응원하고 그에게 후원금이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 김종엽
  • 입력 2015.06.04 10:44
  • 수정 2016.06.04 14:12
ⓒ연합뉴스

최근 여야 합의로 국회법 제98조의2 제3항이 개정되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대통령령·총리령·부령이 법률 취지·내용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수정·변경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개정 전과 비교하면 '수정·변경을 통보'하던 것이 '요구'로, '처리 계획과 결과 보고'가 '처리 후 결과 보고'로 바뀌었다. 국회가 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은 대통령령 등의 수정을 요구할 때, 그것에 대한 행정부의 복종 의무가 한결 엄격해진 것이다.

이 개정 국회법을 둘러싸고 국회와 대통령, 그리고 좁게는 여당과 대통령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대통령은 개정 국회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고, 보수언론은 연일 개정 국회법이 불러올 '혼란', 그것을 자초한 국회의 무능, 야당과 대통령의 대립을 강조하며 사태를 호도하고 있다. 그러자 처음엔 그런 대통령의 행보에 불만을 터뜨리던 여당 지도부가 이른바 '친박' 의원들의 거센 '성토'에 움츠러들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미 발을 반 이상 뺐는데, 아마도 대통령의 법령 거부권 행사 시사를 차기 대권주자에 대한 현직 대통령의 거부권 의지로 읽은 듯하다. 당 대표가 뒤로 물러서자 여당에서는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 주장까지 쏟아져 나왔다.

국회법 개정의 중요한 의의들

정치에 대한 산술을 장기로 하는 정치'평론'의 시각에서 본다면, 지금 벌어지는 새정치연합의 내홍과 혁신위의 출범이나, 여당과 청와대의 갈등 모두 내년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수 싸움으로 보일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세월호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 방향에 대한 대통령의 '걱정'이 추가 요인으로 고려될 것이다. 이런 시각과 분석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각도에서만 사태를 조명하면 우리는 이번 사태에서도 제 밥 그릇 다툼과 그로 인한 난장판이란 익숙한 풍경의 반복을 확인하게 되며, 기실 이런 인상에 이어지게 마련인 정치 혐오는 보수언론이 유도하려는 프레임과 다르지 않다.

사태를 좀더 규범적인 틀에서 볼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볼 경우 개정 국회법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의의를 갖는다. 우선 민주적 법치국가를 향한 중대한 전진으로 평가될 수 있고, 다음으로 의회정치의 미래에 대해 한결 낙관적 전망을 갖게 하는 사례라 할 만하며, 마지막으로 세월호참사라는 엄청난 사태가 우리 사회의 개혁에 기여한 첫번째 사례라고 하겠다. 차례로 살펴보자.

민주적 법치국가 확립과 의회정치의 진전으로

복잡한 현대적 조건에서 사회성원을 통합하는 힘은 헌법과 그것에 구현된 가치체계 그리고 헌법의 규율을 받아 민주적으로 제정된 법의 지배, 즉 법치에 근거한다. 87년 민주화 이행이 제도화하고자 한 것은 무엇보다 민주적 법치국가이다. 하지만 민주적 법치국가는 여러 수준에서 공격받거나 제약에 처해왔다. 행정부는 국제 조약이나 협상 등이 가진 제약을 강조하며 국내법과 시민의 통제로부터 벗어나왔다. 지금 론스타와 국가·투자자 소송을 유발한 한·벨기에 투자협정은 그 상징적인 사례이다. 경찰은 시위와 집회를 차별적으로 통제하고 심지어 차벽을 설치해왔으며, 검찰은 기소권을 차별적으로 사용하거나 아예 기소와 재판 과정 자체를 정치적 반대자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활용해왔는데, 이는 법치를 법을 이용한 지배로 타락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최근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재심판결이나 교원노조법 합헌 결정에서 보듯이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종종 궤변을 동원해 헌법과 법률에 대한 민주적인 해석 프로젝트를 방해하는 법기술자의 면모를 보여왔다.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더 일반적인 행태는 '법의 아들'인 시행령이 저질러온 '부친살해'였다. 그것이 얼마나 일반적이었는지는 '행정입법'같은 표현이나 개정 국회법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횡행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이번 국회법 개정은 그런 잘못된 구조적 관행 가운데 시행령 관련 부분을 시정함으로써 민주적 법치국가를 향해 크게 한걸음 더 내디딜 토대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의회정치의 면에서도 이번 국회법 개정은 중요한 전진이다. 국회를 비효율적 기관으로 묘사함으로써 정치를 축소하려는 것이 행정부와 대통령, 보수언론, 대기업 집단의 일관된 시도이며, 그런 프레임은 이미 대중 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이런 공격 속에서 국회 스스로도 역량이 침식된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중에도 여야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거두며 의회정치를 활성화해왔다. 이번 국회법 개정은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의회 고유의 권한인 입법권을 강화함으로써 행정부를 견제하는 데 여야 합의를 이룬 것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다. 더불어 이번 일로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비난받아온 국회가 대통령보다는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 아니 지금 우리 사회 최고의 비효율은 대통령이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월호참사 이래 이룩된 유일한 개혁

끝으로 이번 국회법 개정의 계기가 무엇인지 상기하는 일이 중요하다. 세월호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조사위원회는 작동하지 않고 있는데, 그 중요한 이유가, 여러모로 미진하지만, 그나마 마련된 세월호특별법을 대통령과 행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아예 파괴하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참사로부터 우리 사회가 무엇인가를 학습하는 첫걸음은 제대로 된 진상조사이다. 따라서 그 진상조사를 가로막는 제도적 제약을 혁파하는 것은 세월호참사를 겪은 사회가 이루어야 할 기초 개혁이다. 이번 국회법 개정은 그것에 해당하는 일이다. 세월호참사 이래로 무엇이 바뀌었는가? 제도개혁은 고사하고 세월호 인양의 미래조차 선거가 끝나자 불투명한 것이 현재 상황이다. 목하의 메르스 파동에서 보듯이 시민의 안전을 지킬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방역 능력에서도 국가는 전보다 더 퇴행한 듯하다.

이런 상황에 비춰보면 국회법 개정은 세월호참사 이래로 이룩된 유일한 개혁에 다름 아니다. 그런 법률을 또 한번 대통령이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그런 대통령에게 "뭐가 삼권분립 위배냐"고 반문한 유승민 원내대표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 보수의 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한번도 새누리당과 그 전신이었던 정당들의 국회의원을 응원한 바 없었지만, 지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폭거를 막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유승민 원내대표를 응원하고 그에게 후원금이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왼쪽)와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5월 28일 국회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에서 '공무원연금개혁안'과 '세월호시행령'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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