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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희귀본이 500원에 나온 사연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가 서점에서 팔린 것은 단 하루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 만에 팔려봐야 몇 권이나 팔렸겠는가? 자연스럽게 이 책은 희귀본 애호가의 표적이 되었는데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책이었다. 그런데 개인 간 헌책 거래사이트에 이 책이 매물로 떴다. 더구나 판매가격이 기절초풍할 만했다. 단돈 500원에 팔겠다는 것이다. 희대의 희귀본을 단돈 500원에 팔겠다는 그 판매자는 졸지에 슈퍼 울트라급 엔젤로 숭상되었고 헌책 수집계의 '간디'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그 판매자의 영광은 굵고 짧았다.

  • 박균호
  • 입력 2015.06.04 12:35
  • 수정 2016.06.04 14:12

<강아지 똥>의 작가 권정생 선생과 이오덕 선생의 편지를 모아서 엮은 책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 납니다>는 출간된 당일로 전격 회수 및 폐기처분되었다. 권정생 선생이 이 책의 출간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본 사람은 알게 되겠지만 두 분의 20년간의 눈물 겨운 우정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두 분의 '고달픈' 인생살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다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어서 권정생 선생의 결정이 이해가 된다.

결국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가 서점에서 팔린 것은 단 하루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 만에 팔려봐야 몇 권이나 팔렸겠는가? 자연스럽게 이 책은 희귀본 애호가의 표적이 되었는데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책이었다. 나만 해도 이 책의 존재를 알고 구하려고 동분서주를 했지만 겨우 5년 만에 구했더랬다. 책을 낸 측에서 회수를 했는데 굳이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구해서 읽어보겠다고 동분서주한 이유는 간단하다. 편지를 주고 받은 두 당사자들의 20년간의 걸친 눈물겨운 우정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하늘이 내려준 선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귀하게 여겨진 만큼 헌책 수집가들에게는 '로망'이었고 존재조차도 희미한 '신기루'에 가까웠다. 그런데 개인 간 헌책거래사이트에 이 책이 매물로 떴다. 더구나 판매가격이 기절초풍할 만했다. 단돈 500원에 팔겠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사이트가 생긴 이후로 가장 짧은 순간에 가장 많은 댓글이 달렸을 게다. 희대의 희귀본을 단돈 500원에 팔겠다는 그 판매자는 졸지에 슈퍼 울트라급 엔젤로 숭상되었고 헌책수집계의 '간디'로 인정되었다. 자기에게 이 책을 팔아 주기만 하면 매년 명절 때마다 문안인사를 드리겠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그러나 그 판매자의 영광은 굵고 짧았다. 판매리스트의 간략정보가 담긴 초기 화면에서 500원이란 환상적인 가격만 확인하고 폭풍 클릭한 그의 잠재적인 고객들이 판매자에게 연락을 하고, 판매게시판에 자신에게 팔아달라고 읍소를 하는 글을 남기는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책 사진 옆에 위치한 깨알 같은 판매조건에 대한 설명을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흥분한 고객들이 미처 인지하지 못한 상세 설명을 그나마 살펴본 것은 이미 너무 늦어서 그 책을 사지 못할 것이라고 포기한 소수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판매자가 공지한 상세설명을 요약하면 이랬다. 가격이 500원이 맞긴 하지만 보통의 500원짜리 동전이 아닌 반드시 1998년산 500원짜리 동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를 구하기 위해 자신도 많은 공을 들였으니 귀하디귀한 1998년산 500원짜리 동전을 구한 노력과 바꾸고 싶다는 것이다. 판매자에 따르면 1998년산이면서 상태가 상급이면 30만원 정도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판매자는 500원이 아닌 30만원에 책을 팔겠다는 말이 된다.

현금 30만원보다 몇 갑절 구하기 힘들 것으로 보이는 1998년산 500원짜리 동전을 어디서 구해서 그 책과 바꾼단 말인가? 그의 모든 잠재 구매자들은 이 험악한 판매조건에 절망을 했고 그 절망은 판매자에 대한 비난으로 탈바꿈했다.

구매자들의 온갖 비아냥거림에도 불구하고 뚝심이 천하장사 이만기에 못지않았던 그 판매자는 그 이후에도 그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았고 그는 또 다른 이유로 '살아 있는 전설'로 기억된다. 물론 거래가 성사되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다. 그 사건이 있었던 지 수년 후 나는 다양한 분야의 수집가를 소개한 책 <수집의 즐거움>을 집필하면서 운이 좋게도 부산의 화폐수집가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김천에서 부산까지 내려가 그 분을 만나서 내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이 뭐였겠는가? 그렇다.

"1998년산 500원짜리 동전이 정말 그렇게 귀하고 비싼가요"였다. 그 양반의 대답은 당연히 'Yes'였다. 1998년산 500원짜리 동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설명을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매년 수백만 개가 제조되고, 많게는 한 해에 1억 2천만 개가 나온 적도 있는데 유독 1998년에는 8천개만 생산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유통용이 아니고 기념품 용도로만 나왔다는 것이다. 상태가 완전하다면 120만원에 거래가 되었다고.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를 1998년산 500원짜리 동전으로만 판매하겠다던 그는 헌책방계의 기부천사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에겐 올해 나쁜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 납니다>의 개증보판격인 <선생님 요즘 어떠하십니까>가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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