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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 불쾌한 반말광고

첫 대면에 밑도 끝도 없이 반말이다. 그것도 나보다 한참 잘난 사람의 하대(下待)다.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피할 수 있는 이도 아니다. 급증하고 있는 TV나 라디오의 반말 광고 얘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에이스 침대 광고. 배우 이정재가 말한다. "가구는 디자인만 보고 사면 되지. 그런데 침대를 그렇게 사봐라. 아침에 어떻게 되겠어?" 그런가 하면 같은 제품 광고에서 고현정 역시 아무렇지 않게 반말을 내뱉는다. "화장대 조금 불편하다고 화장이 안 먹니? 침대 불편해봐라. 화장 다 뜬다!"

  • 이여영
  • 입력 2015.06.02 07:05
  • 수정 2016.06.02 14:12
ⓒ에이스침대

첫 대면에 밑도 끝도 없이 반말이다. 그것도 나보다 한참 잘난 사람의 하대(下待)다.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피할 수 있는 이도 아니다. 원치 않아도 시도 때도 없이 봐야만 한다. 그것도 이제는 한두 사람이 아니라 떼로 몰려온다. 시도 때도 없이 불쾌한 기분을 간직하며 지내야 한다.

급증하고 있는 TV나 라디오의 반말 광고 얘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에이스 침대 광고. 배우 이정재가 말한다. "가구는 디자인만 보고 사면 되지. 그런데 침대를 그렇게 사봐라. 아침에 어떻게 되겠어?" 그런가 하면 같은 제품 광고에서 고현정 역시 아무렇지 않게 반말을 내뱉는다. "화장대 조금 불편하다고 화장이 안 먹니? 침대 불편해봐라. 화장 다 뜬다!"

이 반말 광고가 노리는 효과는 짐작할 만하다. 우선 이정재나 고현정 같은 슈퍼스타가 마치 친구처럼 침대에 대해서 조언을 하는 상황을 연출해 광고 시청자들이 친근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지극히 정중한 말투가 일상화 된 광고에서 반말은 은근히 관심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다. 꼭 이 광고가 아니더라도, 광고 속 반말은 친근감과 관심 집중 효과를 노린 고도의 전략적 광고 문구이다.

하지만 이 침대 광고는 선을 넘었다. 이정재나 고현정 같은 슈퍼스타가 던지는 말들은 광고 시청자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나 하대에 가깝다. 친근감을 느낄 여지가 별로 없다. 대신 귀나 눈을 집중시키는 효과는 극대화 된다. 그렇더라도 광고 시청자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누군가에게 무시나 하대를 당했다는 불쾌감이 오래 뇌리에 남는다.

이 침대 광고만이 아니다. 요즘 반말 광고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얼마 전 마사회는 대놓고 윽박지르는 반말 광고를 지하철과 버스 옥외 광고판에 선보였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말의 탈을 쓴 사람이 호통을 치는 그림이었다. "마! 자고 또 자고, 자고 또 자고, 주말엔 그러는 거 아니야!"

삼성화재 다이렉트 보험 광고 역시 마찬가지다. 요즘 한창 세간의 관심을 끌어 모은 탤런트 손종학과 배우 김부선이 광고 모델로 등장한 TV CF에서 둘은 외친다. '들어 둬! 인생 모른다.' 이 경우는 반말로 인한 불쾌감이 침대에 비해 덜하긴 하다. 그래도 '왜 권유가 아니라 명령인데?' 하는 식의 반발 심리는 어쩔 수 없다.

당대 최고의 여성 연예인이 등장하는 화장품 광고에도 반말 광고가 은근히 오래 지속돼 왔다. 탤런트 김희애가 10년째 모델로 활동해온 SK Ⅱ 광고다. 잇단 이 광고에서 김희애는 자신의 아름다움 비결을 반말 투로 설명해왔다. 적지 않은 여성 광고 시청자들이 불편다고 호소해왔지만 불쾌감만 남을 만큼 선을 넘지는 않았다.

광고업계나 카피라이터들이 알아야 할 것은, 반말 광고의 경우 친근감과 불쾌감의 경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광고 시청자와 소비자가 친근감을 느끼는 정도가 불쾌감보다 앞선다면 효과적일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역효과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마치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처럼, 관심을 집중시킬 수만 있다면 소비자들이 느낄 불쾌감은 감수하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글_이여영 (주)월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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