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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선 사회

정치인이나 논객의 인기는 반대편을 조롱하거나 아프게 만드는 언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지지자들의 환호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의 논쟁이란 상처를 주고받는 게임이다. 언젠가 고종석이 잘 지적했듯이, 그런 게임에선 아픔을 느끼는 능력이 가장 모자란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일상적 삶에선 더할 나위 없이 선량하고 순수하다는 점이다. 이에 관한 수많은 증언들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순수와 정치의 만남이 문제인 걸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 강준만
  • 입력 2015.06.01 05:41
  • 수정 2016.06.01 14:12
ⓒGetty Images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독선적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아무리 똑똑해도 '싸가지 없는 인간'이라며 상종하길 꺼린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를 대할 땐 특정 당파 집단의 일원이 되거나 익명성을 얻는 순간 전혀 다른 인간으로 태어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어떤 이념이나 당파성의 옹호자가 되면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경멸감이나 적대감을 드러낸다.

그런 토양에서 정치인이나 논객의 인기는 반대편을 조롱하거나 아프게 만드는 언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지지자들의 환호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의 논쟁이란 상처를 주고받는 게임이다. 언젠가 고종석이 잘 지적했듯이, 그런 게임에선 아픔을 느끼는 능력이 가장 모자란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일상적 삶에선 더할 나위 없이 선량하고 순수하다는 점이다. 이에 관한 수많은 증언들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순수와 정치의 만남이 문제인 걸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순수주의자들은 가능성을 추구하는 정치를 이상을 추구하는 종교처럼 대하기 때문에 타협을 거부하는 극단적 강경파로 활약하기 마련이다. 어느 집단에서건 이런 강경파는 소수임에도 지배력을 행사한다. 그들의 강점은 뜨거운 정열과 헌신이기 때문이다.

순수는 독선과 동전의 양면 관계를 이룬다. 순수주의자들은 자신의 순수를 무기와 명분으로 삼아 정쟁을 종교전쟁으로 몰고 간다. 정치를 혐오하고 저주하는 유권자들은 그런 명쾌한 접근법에 환호한다.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정치에 등을 돌린 가운데 그런 소수의 전사들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정치권 역시 그런 '시장 논리'에 굴복한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10 대 0'의 정치다.

여야 싸움에서건 같은 당내에서의 싸움에서건,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당성을 10, 상대편의 정당성을 0이라고 주장하는 고질병을 앓고 있다. 진실은 7-3이거나 6-4이거나 5-5일 텐데도 언행은 '10 대 0'에 근거한 과장과 과격과 극단을 치닫는다. 그래야 열성 지지자들의 피를 끓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또는 그렇게 해온 체질 때문이겠지만, 이게 나중엔 부메랑이 되어 타협의 발목을 잡는다. 양쪽 진영 모두에서 타협을 야합이라고 욕해대니 죽으나 사나 출구가 없는 격돌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정도의 차이일 뿐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독선적이다. 아니 대한민국은 '독선 사회'다. 해방정국에서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런다. 상대편을 향해 서로 독선적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대지만, 피차 역지사지를 하지 않는 독선 공방 속에서 모든 건 권력 쟁탈의 의지로 환원된다.

독선 사회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특유의 사회문화적 동질성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 그게 나쁘기만 했던 건 아니라는 데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한국 사회는 다양성을 박해하면서 획일성을 예찬해왔기 때문에 전 국민이 '전쟁 같은 삶'을 살면서 "잘살아보세"라는 한가지 목표에 집중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압축성장이 가능했다. 성공과 행복의 기준이 다양했다면, 우리가 그렇게 미친 듯이 일하고 공부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다름'의 불인정은 물질이 아닌 정신 영역에선 재앙을 몰고 왔다. 우리는 각기 다른 생각을 소통하고 타협하면서 화합하는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 물론 독재자들의 독선만이 독야청청했던 독재정권 때문이다. 폭력적 독선에 대항하는 길은 신념적 독선 이외엔 없었다. "싸우면서 닮아간다"는 말은 사실상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독선을 강요당했다"는 걸 표현한 것이지만, 한번 형성된 체질은 세상이 바뀌어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온갖 갈등과 분란과 이전투구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 후유증 때문이다. 궁극적으론 세월이 해결해 주겠지만, 그렇게 넋 놓고 기다리다간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니, 우리는 소통과 타협과 화합을 모색하기 위해 애를 써야만 한다. 우리의 진정한 적은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아닌, 독선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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