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복면 벗어던진 루나에 열광하는 이유

ⓒMBC

#1. “이명박씨밥세끼는, 콩밥으로챙겨주자.” 지난 5월17일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내건 문구다. 문장 앞부분을 몇 음절씩 띄어서 읽을까. ‘4-1-3’으로 읽으면 평범한 서술이지만, ‘3-2-3’으로 읽으면 비판과 풍자로 둔갑한다. 더 눈길을 끈 것은 이 문구를 든 사람이 고양이 가면을 썼다는 점. 고양이는 쥐를 잡는다. 쥐는 그이를 지목한다.

#2. 가면을 쓰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 허걱, 잘한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가면으로 얼굴 가린 사람을 궁금해한다. ‘황금락카 두통썼네’가 누구지? 가면을 벗었는데, 놀라워라, f(x)의 루나. 아이돌 그룹 멤버가 빼어난 가창을 보이고 자신들을 감동시켰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진다. 단지 가면을 쓰고 노래했을 뿐인데….

평범한 사물 속 생소한 모양

가면 시대다. <복면가왕><복면검사><복면달호><반칙왕><각시탈><오페라의 유령> 등등. 최근 방송을 시작한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부터 드라마, 영화, 뮤지컬은 물론 권력자를 비판하는 정치적 풍자에 이르기까지 가면이 라면처럼 흔하다. 가면은 숨기는 것이되, 숨기려는 사람에게는 거꾸로 자신을 드러내는 길을 열어준다. 닫아야 열리는 문. 가수 루나는 가면을 쓰니 더 편안하게 노래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감춰야 드러난다는 이 역설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장마철 논둑처럼 정보가 철철 넘치는 시대에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 정보를 제한하는 것에 사람들은 왜 열광하는가. 정체를 가리는 가면의 정체는 무엇인가.

가면은 수수께끼다. ‘먼 산 보고 절하는 것은?’ ‘앉으면 높아지고 서면 얕아지는 것은?’ 따위 수수께끼는 익히 아는 대상을 낯설게 만든다. 감추기 때문이다. 감추면 낯설어지고, 낯설어진 대상은 이후 더 낯익게 다가온다. 새로워진다. 수수께끼 효과를 문학으로 가져간 것이 ‘낯설게하기’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로 유명한 낭만파 시인은 자신의 시 쓰기 비밀을 이렇게 고백했다. “사건과 상황에 어떤 상상력의 채색을 가해서 평범한 보통 사물이 마음속에 생소한 것인 양 떠오르도록 하는 것.”(윌리엄 워즈워스)

생소한 바람이 부는 시도 있다. ‘겨울 꽃밭의 대화’. “버려진 겨울 꽃밭 한쪽 귀퉁이./ 마른 풀잎 하나가 말한다./ 방금 지나간 것이 무엇이지?/ 다른 풀잎 하나가 말한다/ 글쎄/ 무엇을 위한 지나감일까?/ 글쎄/ 또 지나가는데!/ 그렇군, 끝이 없잖아/ 대체 저것들이 무엇일까?/ 아마 바람이라는 걸 거야/ 왜 자꾸만 지나가는 거지?/ 글쎄.”(홍영철)

시를 읽고 나면 낯선 바람이 마음에 분다. 문학 언어를 ‘일상 언어에 가해진 조직적 폭력’(러시아 형식주의)이라고 정의한 이유다. 가면 벗은 루나는 가면 쓰기 전의 그가 더는 아니다. 새로워진다. “오늘날 어떤 대상을 존재케 하는 최상의 전략은, … 그 대상을 사라지게 하고 감추는 모험을 하는 것이다.”(장 보드리야르)

5월17일 ‘정봉주와 미래권력들’ 회원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택 근처에서 자원외교 비리 수사 등을 촉구하고 있다.

‘모름지기-물론-당연’의 삼각벨트

예쁜 루나의 것처럼 밝은 가면만 있는 건 아니다. 이청준의 단편소설 ‘가면의 꿈’은 가면의 그늘을 충격적으로 드러낸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S대 법대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사법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한 엘리트 판사다. 그런데 그는 어느 날부터인가 밤에 외출을 나간다. “제법 손질된 장발머리에 콧수염을 의젓하게 달고.” 그의 서재에는 여러 가발과 콧수염, 안경, 모자들이 빼곡하다. 부인은 그런 남편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식으로 변장을 하고 그는 자기 가면 뒤에서 정말로 조용한 휴식을 얻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점점 잦아지던 밤 외출이 익숙해지면서 그는 자신의 가면 뒤에서도 피로감을 느낀다. 어느 날 그는 2층 서재에서 돌연 추락한다, 기다란 가발과 콧수염을 단 채, 이런 말을 남긴 채. “가면이 우는 걸 보았을까. 물론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지. 가면의 눈물은 속으로만 흐르게 마련이거든….” 가면은 껍데기가 아니며 인간의 마음과 닿아 있다는 것을 소설은 날카롭게 보여준다.

“가면을 쓰고 무대에 서면 자유로울 것 같았다. 홀가분하다. 진짜 후회 없이 노래를 불렀다.” 가면을 벗은 루나가 한 말은 그가 가면을 쓰기 전에, 이미 ‘보이지 않는 가면’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아이돌, 춤, 몸매 따위 말들이 가요계에서 유통되는 상황을 떠올려보라. 실상 루나는 줄곧 가면을 쓰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타인들에 의해 가면이 씌어졌던 것이다.

“가면은 ‘실제 얼굴’과 일체화되며 때로는 실제 얼굴보다도 더 ‘진짜 얼굴’이 되고 만다.”(철학자 나카야마 겐) 이런 사회적 가면, 곧 페르소나(Persona)를 벗어던지기 위해 루나는 진짜 가면을 쓴 것이다. 가면을 써야 가면을 벗을 수 있다는 역설이 여기서 꽃핀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다. “가면은 감추기 위해서만 있지 않다. 가면은 감춤과 드러남의 기제이다. 가면은 뒤를 감추지만 앞으로는 더 확연히 드러난다.”(철학자 김용석)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사용된 가면에서 비롯한 말이다. 여기서 의미가 확장돼 분석심리학에 이르면, 가면은 천국과 지옥 사이를 진자처럼 요동치는 사회에 사는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핵심 도구가 된다. “엄밀히 말해서 페르소나는 참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가 ‘어떤 사람이 무엇으로 보이는 것’에 대하여 서로 타협하여 얻은 결과다.”(카를 구스타프 융) 가면 쓰기 전 루나는 페르소나에 갇힌 박선영(본명)이며, 가면 쓴 루나는 한순간일지언정 박선영이 되었던 것이다.

페르소나는 ‘모름지기-물론(勿論)-당연(當然)’의 삼각벨트로 둘러싸인 얼굴이다. ‘루나는 모름지기, 물론, 당연히 어떨 거야’라는 게 진실이 아니라 편견이었으며, 루나를 둘러싼 ‘사회적 시선’이 만든 페르소나라는 걸 루나는 또렷하게 구분해서 보여주었다. “페르소나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페르소나와의 맹목적인 동일시가 문제 되는 것이다. 페르소나는 무턱대고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고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분석심리학자 이부영)

루나-가면-노래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시선은 호기심인가, 놀라움인가. 방송사 제작진이 밝힌 의도는 이렇다. “숨겨야 사는 복면가수와 이를 밝혀내려는 연예인 판정단 사이의 긴장감과 반전의 재미를 강화했다. 경쟁이 아닌 다양한 목소리를 편견 없이 들어보면서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상상해보는 재미가 <복면가왕>의 기획 의도다. 시청자들도 함께 추측하며 방송을 즐겼으면 좋겠다.”(4월3일) 제작진의 의도는 대부분 이뤄진 듯 보인다. 10%를 오르내리는 꾸준한 시청률에다 지난 5월10일 방송분은 같은 시간대 경쟁 프로그램들을 제치고 유일하게 시청률이 오르기도 했다.

사람을 끄는 ‘관심의 경제학’

그러나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지만 재미있게 볼 일인지는 미지수”(TV칼럼니스트 이승한)라는 지적처럼 가면을 도구 삼아 호기심에 기대고 경쟁 구도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다. “호기심은 둘러봄도 바라봄도 아니며 그저 보임새라는 겉모양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보임새만을 찾는다. 호기심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은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날아다님이라고 말할 수 있다.”(철학자 이기상)

두부를 생각해보라. 두부의 속을 보기 위해 자르면, 애초 속이었던 부분은 다시 두부의 겉이 된다. 또 잘라도 속은 없고 겉만 있다. 어떻게 잘라도 마찬가지다. “결국 우리가 보는 것은 늘 두부의 겉면이고 속 그 자체는 결코 볼 수 없다.”(이강영 경상대 교수) 예능이라는 가면에 덧씌워진 가면은 본질이 사라지고 변질된다.

2000년 개봉한 영화 의 한 장면

‘인기라는 계급장 떼고 목소리만으로 판단한다’. 제작진은 ‘두부의 속’(목소리)을 가리켰는지 모르지만 시청자는 끊임없이 ‘두부의 겉’(“목소리 주인공이 누구지?”)을 궁금해하도록 이끌린다. 책임은 경쟁 구도에 있다. 경쟁에서 탈락하면 자발적으로 벗고, 경쟁에서 이기면 벗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은 어떻게든 먼저 벗기고 싶어 한다. 두 겹의 경쟁이다. 손짓, 몸짓, 반지, 버릇 등등 목소리뿐 아니라 다른 것을 집요하게 캔다. “우리가 무엇을 볼지 결정하는 것은 이론이다”(아인슈타인)라는 말은 텔레비전 앞에서 무색해진다.

불편한 것은 가면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가면 뒤 사람을 맞히라!’는 틀이 사람들을 윽박지른다. 가면 뒤 루나를 맞히지 못하면 온전한 소비가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삼삼오오 모이면 가면 뒤 사람을 추리하기 바쁘다. “소비인간은 그 어떠한 향유이든, 무언가를 ‘놓치는 것’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즐기는 것, 자신을 감동시키고 즐겁게 하거나 만족시키게 하는 모든 가능성을 철저하게 개발하는 것이 강요된다.”(장 보드리야르)

가면은 사람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자석으로도 변질된다. 관심 그 자체가 이윤 창출에 직결되는 ‘관심의 경제학’ 시대다.(경제학자 허버트 사이먼) 텔레비전·신문·잡지 같은 전통 매체와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매체가 한데 뒤섞여 “모두 인간의 관심 혹은 주의력을 두고 벌이는 일종의 제로섬게임”을 벌이고 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의 미방송 장면

시청률로 대변되는 경쟁의 우열에서 가면은 마치 비장의 무기처럼 등장한다. 구름에 가려진 달을 보고 싶은 마음을 시청률로 쓸어담는다. 텔레비전은 더욱 조밀해진 해상도로 가면을 내보이며 사람을 유혹한다. “‘텔레비전은 수동적인 시청자를 위한 경험을 제공한다’라는 상투적인 발언은 엉뚱하게 빗나간 말이다. 텔레비전은 특히 창조적으로 참여하려는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미디어다.”(마셜 매클루언)

사회적 자외선을 막는 마음의 선글라스

페르소나는 인간의 슬픈 얼굴이다.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슬픈 가면이다. 그것은 베네피트 파운데이션을 통통 두드리고, 슈에무라 립스틱을 쓱싹 바르고, 로레알 마스카라로 총총 칠해도 가려지지 않는 슬픈 얼굴이다. 고약한 암세포를 싹둑 잘라내는 복강경으로도 그것을 해체할 수 없다. 페르소나는 ‘사회적 피부’이기 때문이다.

가면은 애면글면 현실을 견뎌내야 하는 현대인의 생활필수품이다. 그것은 삶을 돌파하는 ‘액션가면’이자 삶을 즐기고픈 ‘예능가면’이며 삶을 희망하는 ‘주술가면’이다. “현실 생활로부터의 해방, 예컨대 이 해방이 비록 일시적인 것이라 해도, 이 해방감이야말로 민중에게 부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위안”이다(김욱동). 가면을 벗고 울음을 터뜨린 루나에게 다수가 공감하는 이유다.

오늘도 가면을 동원한 텔레비전·스크린·무대 앞에서 사람들은 환호하고 열광하고, 종내 기뻐서 울음을 운다. 가려야만 드러나는 우리네 팍팍한 삶의 해방구, 그것의 이름이 가면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에 무시로 내리쬐어 고통하게 하는 ‘사회적 자외선’을 막아주는 마음의 선글라스, 그것의 정체가 가면이기 때문이다. 돌아와 가면을 벗기 위해, 우리는 가면을 쓰고 날마다 집을 나선다.

기사에 참고한 책들

<문학이란 무엇인가>(유종호, 민음사, 1999)

<철학광장>(김용석, 한겨레출판, 2010)

<젊은 시인들의 상상세계/말들의 풍경>(김현, 문학과지성사, 1992)

<분석심리학>(이부영, 일조각, 1998)

<아니마와 아니무스>(이부영, 한길사, 2001)

<자기와 자기실현>(이부영, 한길사, 2002)

<상상력과 지식의 도약>(김상환·박영선·장태순 엮음, 이학사, 2015)

<소비의 사회>(장 보드리야르 지음, 이상률 옮김, 문예출판사, 2002)

<토탈 스크린>(장 보드리야르 지음, 배영달 옮김, 동문선, 2002)

<사고의 용어사전>(나카야마 겐 지음, 박양순 옮김, 북바이북, 2009)

<미디어의 이해>(마셜 맥루언 지음, 김성기·이한우 옮김, 민음사, 2002)

<지식의 최전선>(김호기·임경순·최혜실 52인 공동집필, 한길사, 2002)

<탈춤의 미학>(김욱동, 현암사, 1994)

<철학노트>(이기상, 까치, 2002)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문화 #복면가왕 #복면가왕 루나 #복면 #가면 #루나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