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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31일 11시 24분 KST

'1박2일' 스태프 80여 명 중 정규직은 몇 명일까?

KBS

“외주 조연출도 열악합니다.” “외화번역작가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요.” “드라마 보조 작가도 취재해주세요.” 지난달 6일 이른바 ‘열정페이’를 받고 일하는 방송국 막내 작가들의 열악한 업무 환경에 대한 기사(▷ 관련기사 : 자네 방송작가로 일해 볼 텐가 ‘헐. 값. 에’)가 나간 뒤, 방송 종사자들의 제보가 잇달았다. 막내 작가들은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잦은 야근에도 월급100~120만원을 받았고, 스스로를 ‘잡가’라고부를 정도로 글 쓰는 일보다 심부름 등 잡일이더 많았다. 문제는 이런 현실이 막내 작가들에게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스타는 웃지만…나는 슬픕니다

질문 하나. 인기 예능프로그램 <슈퍼선데이-1박2일>(한국방송2)의 스태프 80여명 중에 정규직은 몇명일까? 정답은 6명이다. <한국방송> 소속인 피디 6명을 제외한 나머지 스태프는 하청업체(카메라팀, 브이제이팀, 음향팀, 조명팀, 동시 녹음팀 등), 파견노동자(에프디 등), 프리랜서(방송작가 등) 등 모두 비정규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방송>의 한 예능 피디는 “<1박2일>은 그나마 정규직이 많은 편이다. 정규직이 2~3명인 프로그램도 많다”라고 말했다.

방송사들은 뉴스 보도 등을 통해 ‘열정 페이’와 비정규직 문제를 비판해왔지만, 정작 스스로가 거대한 ‘비정규직 백화점’이다. 파견, 용역(=하청=외주), 아르바이트, 계약직, 프리랜서 등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비정규직 고용 형태를 망라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즐기는 화려한 무대와 즐거운 볼거리 뒤에는 비정규직의 눈물과 땀이 숨어있다.

■ 하청과 프리랜서가 만드는 방송?

현재 예능과 드라마, 시사교양 등 대다수 프로그램은 하청과 파견으로 만들어진다. <에스비에스>의 한 예능 피디는 “프로그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새로운 프로그램이 결정되면 방송사의 정규직 피디가 조명팀, 음향팀, 카메라팀, 동시 녹음팀 등 5~6개 외부 업체와 각각 계약을 맺고 전체팀을 꾸린다”라고 말했다. 하청을 맡은 각 팀의 팀장은 다시 팀원 일부를 비정규직으로 조달하기도 한다. 카메라팀이 다시 브이제이(VJ)팀에게 하청을 주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하청도 이어진다. 이 예능 피디는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장으로 화려한 촬영기법 등이 요구되면서 카메라가 더 많이 필요해졌고, 10여년 전 브이제이(VJ) 등 야외촬영 인력을 시작으로 비정규직을 쓰게 됐다”라고 말했다. 4~5년 전부터는 에프디(FD·진행요원)만 전문으로 파견해주는 업체도 따로 생겼다. 몇명의 인력들이 헤쳐모여 식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지상파 드라마 일을 주로 맡는 경력 2년차 에프디는 “정식으로 회사를 차린 건 아니지만, 드라마가 시작되면 에프디 몇명이 팀처럼 함께 움직인다”라고 말했다.

프리랜서(특수고용직)도 대폭 늘어났다. 기상캐스터, 방송작가, 드라마작가, 영상번역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계약서도 없이 일하는 경우도 많다. 2000년대 초까지 기상캐스터는 정규직이었다. 1995년 <와이티엔> 김지현 기상캐스터가 기상기자로 입사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계약직이 늘기 시작했고, 이후 다시 프리랜서로 바뀌었다. 지상파 기상캐스터 ㄴ씨는 “신분은 프리랜서인데 방송사 보도본부 소속으로 기자들의 지시를 받는 기형적인 구조”라고 말했다. 계약직 때는 그나마 기본 월급에 뉴스당 수당이 나왔지만, 프리랜서가 되면서 기본 월급 없이 수당(출연료)만 받는다. 하지만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에는 출연할 수 없다. 행사 진행 등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기도 한다. ㄴ씨는 “프리랜서라면서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 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능력에 합당한 페이를 주는 것도 아니다. 날씨 보도에 필요한 최소 인원이라도 정규직으로 뽑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외국 영화·드라마·애니매이션의 자막, 시사교양물에서 외국어 부분을 번역하는 영상번역가 역시 프리랜서다. 10년차의 영상번역가 ㄷ씨는 “시사교양물 경우 외국어 나오는 부분 10분당 3만5000원~4만원을 받는데, 규정이 있어도 유동적이라 번역료를 깎이는 경우가 많다”며 “불만을 얘기하면 ‘어디가서 일 못하게 한다’는 식의 갑질에도 시달린다”고 말했다. 지상파의 한 간부급 피디는 “20년 전만 해도 방송사에서 비정규직을 찾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정규직을 찾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 150만원 못벗어나는 막내들…방송질 저하로

비정규직이라고 모두 열악한 처지인 것은 아니다. 외주제작 인력 중 베테랑 고참급은 상당한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한국방송>의 한 예능 피디는 “한류가 시작되고, 드라마 예능의 제작규모가 커지면서 한 하청업체가 회당 1000만원 이상을 가져가기도 한다. 여러 프로그램 일을 동시에 맡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상파와 주로 일하는 경력 10년의 프리랜서 편집 감독은 회당 250만원(월 1000만원)을 받기도 한다”고 <에스비에스>의 한 예능 피디는 말했다.

문제는 하청업체 안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청업체들은 일부 직원은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막내급’은 한시적인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 인력으로 충원하는 경우가 많다. 하청업체 대표가 방송사에서 돈을 많이 받더라도 막내급들이 받는 수입은 보통 월 150만원 남짓으로, 많이 받으면 200만원 정도다.

한 외주업체 대표는 “일이 계속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규직을 뽑으면 인건비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 정규직 신입 직원을 뽑더라도 석달 정도는 인턴 기간을 둔다”라고 말했다. 에프디 ㄱ씨는 “에프디 일이 없을 때는 조명이나 음향팀 막내로 일당 7만원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말했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외주 프로덕션에서 일한 한 외주 피디는 “작가 뿐 아니라 에프디, 에이디, 피디 모두 열정 페이로 일한다. 조연출과 막내 작가는 가장 안좋은 쪽에 속한다”고 말했다. 에프디 ㄱ씨는 “나는 월 200만원을 버는데 이정도면 이쪽 업계에서는 수입이 좋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드라마가 방영되는 5개월 동안 하루 2시간도 못자는 등 노동강도를 감안하면 정당한 대우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종사자들의 이런 열악한 환경은 일에 대한 동기부여를 약화시키고 조직 소속감을 떨어뜨려 장기적으로는 방송프로그램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영상번역가 ㄷ씨는 “자막에서 번역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방송사가 제작비를 줄이려고 대학생을 아르바이트로 기용해 쓴 이유가 크다”고 말했다. 최근 한 지상파 방송사 뉴스에서는 신입 에프디가 생방송 도중 화면 앞을 지나가 논란이 됐다. 지상파 간부급 피디는 “계약직이나 외주업체의 경우 계약 연장에 목을 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영진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 시청률이 최우선인 프로그램만 만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2000년대 급속 증가…대안은

방송가의 비정규직은 20여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2000년대 중후반 보편화됐다. 1997년 외환위기가 분기점이었다. 지상파 간부급 피디는 “외환위기로 사회 전반적인 경기가 침체되면서 방송 산업도 영향을 받았고 비정규직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1년 발표한 <인권상황실태조사>는 “정규직 중심의 고용형태에서 2000년 초중반 계약직 비정규직이 확산됐고 2000년 중후반부터 계약직에서 프리랜서화가 진행됐다”고 분석했다.

프로그램 제작인력의 외주화·하청화 역시 비슷한 시기에 진행됐다. 1990년대초까지는 방송사가 거의 독점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1991년 외주제작 공동생산 방식이 도입되면서 외주제작(의무외주 비율 3%)이 시작됐다. 2001년 의무외주 비율이 31%까지 치솟으면서 외주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2007년 비정규직 보호법안 시행은 비정규직이 또한번 늘어난 계기가 됐다.

케이블, 아이피티브 등 새로운 방송 플랫폼과 종합편성채널이 생겨나면서 수익성이 떨어지기 시작한 방송사의 위기 의식도 비정규직 확산을 부채질했다. 비정규직 비중을 높이면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상파의 또다른 간부급 피디는 “방송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아, 저비용으로 풍부한 노동력을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사용자 우위의 노동시장 구조도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산업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비정규직 문제점에 방송산업의 특수성까지 더해져 해결책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업계에서는 “방송산업은 창의적인 인력이 필요하고 자율경쟁이 중요하기 때문에 모두 정규직화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는 의견도 많다. 종사자들 중에서는 비정규직으로 여러 방송사 일을 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적절한 임금과 근로조건 등 노동자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는 현실, 직군의 특성에 관계없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무조건 비정규직으로 내모는 행태는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임영호 부산대 교수(언론학)는 “방송산업 특성상 비정규직을 쓰더라도, 적어도 임금은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을 지급하고, 분야별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현실을 개선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출범한 언론노조 산하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미로찾기) 관계자는 “업종별로 처한 상황과 고용 방식, 요구 사항 등이 다르기 때문에 분야별로 실태를 조사해 대안을 찾으려고 한다. 당장은 업종별로 임금단가와 각종 수당 등을 자세하게 명시한 방송제작 표준계약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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