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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인터뷰] 술도녀 미깡, 식객 허영만을 만나다

  • 박세회
  • 입력 2015.05.28 22:16
  • 수정 2015.06.05 11:41

허영만 화백이 미깡 작가의 만화를 많이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두 사람을 한 자리에 운 좋게 모을 수 있었다. 둘은 공통점이 참 많다. 술을 좋아하고 음식을 즐기고 만화에 인생을 꽤 걸었다. 두 사람과 세 시간에 걸쳐 한우를 구우며 나눈 대화를 그 뉘앙스까지 전달하고 싶어 말의 맛을 최대한 그대로 살렸다.

미스터리의 여인 미깡을 위해 직접 팻말로 얼굴을 가려주는 허영만 화백. '왜 이러셔'가 저팔계의 대사임을 안다면 최소 80년대생.

미깡 : (이하 '깡') 선생님께서 저와 인터뷰 하고 싶어 하신다고 하셔서 정말 기뻤어요.

허영만 : (이하 '허') 미깡의 '술꾼 도시처녀들'을 보는데 그 처녀들 꼭 한번 만나서 술 한잔 하고 싶더라고. 그러던 차에 젊은 웹툰 작가 중에 누구 만나고 싶으냐 묻기에 고민도 안 하고 미깡이라고 얘기했지. 근데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셋 중에 미깡이 누구요?

깡 : 세 명 다 만들어낸 가상의 캐릭터예요. 세 명 전부가 저라고 할 수도 있고 셋 모두 제가 아니라고도 할 수도 있어요. 외모나 직업으로만 보면 꾸미가 제일 닮긴 했죠.

허 : 안주는 어떻게 그렇게 매일 찾아내는 거요?

깡 : 자주 가던 곳들 사진 찍어놓은 걸 많이 썼어요. 사실 연재 시작할 때 임신 중이어서 예전에 마셔놨던 DB를 활용하는 거죠. 제 만화에 올린 안주 중에 맘에 드시는 게 있으세요?

허 : 어유 난 그렇게 거친 음식 못 먹어. 미깡은 보니까 양념 진한 거 안 가리고 회에서부터 치킨이고 뭐 다 먹더구먼. 미깡은 사실 온갖 불량식품도 다 먹으면서 목숨 걸고 연재하는 거야.

깡 : 그래도 선생님께서 좋아할 집이 약수동에 하나 있어요. 삶은 닭을 데친 부추에 싸먹는 처갓집이라는 백숙 집이에요. 선생님도 하나 추천해주세요.

허 : 미깡 말하는 데는 그 골목에 간판도 없는 곳이지? 거기 가봤어요. 근데, 나는 추천할 집이 없어. 그렇게 많이 돌아다녀도 저녁 약속 잡으려면 뒤져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어요. 흠, 추천하자면 둔촌동에 XX 아줌마 집이라고 있는데 맛은 괜찮거든. 근데, 주인이 무지무지 싸가지가 없어.

깡 : 꼭 가봐야겠네요. 직접 음식도 하시나요?

허 : 그럼 하지. 어제는 작업실 식구들한테 정어리 조림을 해줬지. 고사리 넣고 묵은지 넣고, 요새 제철인 마늘 쫑 넣고. 이게 다 쉬운데, 국물 조절을 참 잘 해야 해. 뭔가 어려운 게 하나쯤은 있어야지.

깡 : 저도 요리를 좋아하는데, 꼬막이나 조개 삶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허 : 내가 가르쳐 줄게요. 꼬막은 3분 삶아야 한다, 5분 삶아야 한다고 들 그러는데, 제일 좋은 건 팔팔 끓은 물을 잘 씻은 꼬막에 부어서 익히는 거야. 근데, 꼬막 생각을 하니까 참 화나는 게 있어. 얼마 전에 여수 친구랑 막걸리 한잔 하고 꼬막을 먹으러 갔어요. 허름한 벌교 음식 파는 곳이었는데 참꼬막이 4만 원이더라고. 시키고 음식이 나왔는데 세어보니까 이게 40개야. 그럼 한 개에 얼마야. 한 개 천원이야. 이게 말이 되느냐고. 난 여수 사람인데 나 어렸을 때는 꼬막은 그냥 주는 거였어요.

깡 : 저도 엄마가 광주분이어서 어려서 참꼬막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먹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어려서부터 서울에 살던 사람들은 그걸 그리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워낙 참꼬막이나 갯장어 등의 특산품들은 원래 서울에선 비쌀 수밖에 없잖아요. 산지에 사는 사람들과는 좀 다른 거죠.

허 : 하긴 물류 방법이 발달 돼서 서울 사람들도 이제 골고루 먹고사는 거지. 예전엔 서울 사는 사람 중에 매생이가 뭔지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잖아. 고마운 줄 알아야 해.

허영만은 이날 미깡이 얼굴을 가린다기에 자신도 각시탈을 준비해왔다.

허 : 그런데 주량은 어떻게 돼요?

깡 : 그냥 평균이죠 뭐. 소주 두 병? 기분 좋으면 더 마시기도 하고요. 선생님은 어떤 술을 주로 드세요? 와인 애호가신 건 알고 있지만요.

허 : 와인이야 워낙 좋아하고, 위스키는 평상시에는 잘 안 먹고 밤에 자기 전에 마시는 걸 즐겨요. 오징어 씹으면서 혼자. 이 나이에 오징어 씹을 수 있는 것도 참 신기한 거야.

허 ; 아니, 근데, 나도 좋아는 하지만 미깡은 술을 왜 그리 좋아하는 거요?

깡 : 음 술을 좋아하는 것도 맞지만, 술 보다...

허 : 사람을 좋아하나?

깡 : 아뇨 사람보다도...

허 : 그럼, 분위기를 좋아하나?

깡 : 아뇨, 안주를 좋아해요. 그냥 안주는 아니고, 안주와 술의 상성을 좋아해요. 물론 마시고 취하는 것도 좋아하지만요. 선생님은 어떻게 마실 때 행복하세요?

허 : 생음악을 연주하는 단골 재즈 바가 있는데 거기서 친구들이랑 자주 마셔요. 근데 우리가 모이면 만날 하는 얘기가 '여기는 음악만 없으면 참 좋은데 말이야 마셔. 웃기지. 재즈바에서 말이야. 혼자 가장 행복하게 마셨던 순간은 대구 말린 거에 레드 와인을 마셨을 때야.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매년 대구를 500마리씩 말리는 사람이 있어요. 그중에 매년 내 몫으로 두 마리를 주거든. 몇 년 전인데, 옅은 초장을 만들어서 그 받아온 대구를 쭉쭉 찢어서는 어디서 받아온 몬테스 알파랑 같이 마셨거든. 잘 안 어울릴 것 같은 레드 와인이랑 초장 찍은 대구가 그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거든. 근데 행복할 만치 잘 어울리더라고. 미깡은 어떻게 마실 때 행복해요?

깡 : 예전에 직장 생활할 때는 야근한 날이면 종종 혼자 좋아하는 바에 가서 마시곤 했어요. 식사 시간은 이미 놓쳤고, 늦게 밥 먹으면 몸만 쳐지니까 패스하고, 좀 묵직한 기네스 같은 걸 두잔 정도 시켜서 마시곤 했죠. 바쁜 하루를 마감하며 혼자 조용히 한 잔 하는 시간이 참 좋더라고요. 요새는 남편이랑 아이 재워놓고 잔반을 클리어하면서 오순도순 마시는 게 낙이에요.

허 : 캬~. 오순도순 부럽구먼. 어제는 어떻게 마셨어요?

깡 : 어제는 망원시장 가서 갈치속젓을 사다가 마셨어요. 남편이 저보다 더 열렬한 선생님 팬이라 '변칙복서'가 어떻고 '거미'가 어떻고 '날아라 슈퍼보드'는 어떻고 하면서 새벽 4시까지 일장 연설을 들었어요.

허 : 근데 미깡은 왜 얼굴을 안 알리는 거요?

깡 :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술집 얘기를 주로 쓰니까 어디 호프집에 갔는데 '미깡 씨 아니세요?' 그러면서 안주라도 서비스로 하나 더 주면, 그러면 망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허 : 철저하게 계산해서 노출을 안 하는 거구먼. 가정주부로 계속 얼굴을 알리지 말고 궁금증을 증폭시키다가 한 50살쯤 돼서 빵 터뜨리라고.

그의 화실에는 총 세 명의 문하생이 있다. 허 화백은 문하생들에게 정어리 조림 해주는 자상한 남자.

깡 : 얼마 전 TV에서 선생님 화실이 소개되던데, 첫째 문하생은 13년 차인데 둘째 문하생은 2년 차더라고요? 차이가 참 많이 나요.

허 : 그렇게 오래됐나? 차이가 크게 나게 되는 이유는 애들이 중간에 다 나가서예요. 자기 거 한다고. 나는 우리 애들한테 충분히 준비하고 나가라고 하거든. 연재는 전쟁인데, 한참을 준비하고 전장에 나가도 금방 소재가 방전되는데 아무 준비 없이 나가면 되겠느냐 말이지. 근데 첫째 놈은 너무 충분히 준비하는 모양이야. (웃음)

깡 : 문하생 체재를 이탈하는 만화가 지망생이 많아진 데는 아무래도 디지털화된 도구의 도움도 큰 원인 중 하나일 것 같아요. 예전 같으면 찢어버려야 할 그림도 쓱싹 수정할 수 있으니까요.

허 : 대부분이 그래요. 와콤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만 하면 누구나 한 가지 소재 정도 가지고 연재를 시작할 수 있단 말이지. 그런데 그다음은 어떻게 할 거냐는 거지. 연재에 치이다 보면 말이야.

깡 : 저도 그런 고민이 있어요. 제가 딱 그런 당사자기도 하거든요. 술 만화가 없기에 만화를 배우지도 않고 그림도 잘 못 그리면서 뛰어들었거든요.

허 : 술도녀를 계속 연재할 순 없을 테고, 그다음엔 어떻게 할 거요?

깡 : 대학교에서 소설을 전공했거든요. 이야깃거리는 많아요. 그런데 개그에 최적화된 못 그리는 그림체가 발목을 잡는 거죠.

허 : 이말년이라는 친구를 알죠? 내가 처음에 그 친구가 일요신문에 연재하던 만화를 봤어요. 그때는 그림도 괜찮았다고. 그런데 날이 갈수록 실력이 개판이 되는 것 같아.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안 하는 것 같아. 이번 손오공 만화부터는 정말 못 봐주겠더라고. 그런 걸 생각하면 이제는 노력에 반드시 보상이 주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얘기를 시작해야 해요. 이게 이말년을 욕하는 게 아니야. 이건 내 얘기야. 화가 나. 그 친구를 보니까 나는 밤을 새워서 그림 연습을 했는데 이건 뭔가 싶어서 화가 나더라고. 근데 물론 못 그리는 것도 힘들지.(웃음)

깡 : 그런데 제가 더 못 그리는 것 같아요.

허 : 이런 것도 있다고. 우리 예전에 데뷔할 때 즈음에는 만화가 협회에 등록해야 작가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그 당시 내가 우리 선생의 수 문하생일 때 데뷔하려고 협회에 그림을 냈거든. 근데 만화가 협회에서 그러더라고 '너 그림이 선생이랑 너무 똑같아서 안 된다'고. 아니, 당연히 똑같지. 내가 다 그리는데. 수 문하생이면 곧 선생의 그림이 내 그림인 거요. 그래서 내가 한번 잘렸다니까. 미깡 같은 작가가 나왔다는 데는 지금의 환경이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미깡은 만화를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다고 아는데, 직장 다닐 때랑 비교해보면 어떻게 달라요?

'술도녀' 40화에서 전통주 타령을 하던 미깡이 실제로 요새 전통주에 폭 빠져있다는 소식이다.

깡 : 예전에 다니던 회사는 정말 힘든 회사였거든요. 술을 마시면 왜 사람이 평상시와는 아무래도 조금 달라지잖아요. 회사 다닐 때는 술 마시고 공격적으로 변했어요. 화도 좀 많아지고. 그런데 지금은 술 마시면 옆에 있는 사람한테 더 살갑게 구는 예전 성격을 찾았어요. 회사라는 곳이 시간도 많이 들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모멸감을 주고 모멸감을 받아야 한다는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프리랜서라 굉장히 행복해요.

허 : 그보다 더 좋으려면 보수가 좋아야지. 연재료는 많이 받아요?

깡 : 인터뷰를 많이 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두 사람의 얘기를 가만히 듣다 보니 굉장히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 폰을 들고 다니면서 예전보다 음악도 많이 듣고 만화도 많이 보는데, 음악가들이나 만화가들은 점점 더 돈을 적게 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 : 그게 참 이상한 거야. 많이 벌어야 하는데, 게다가 대중들은 만화 작가들이 아주 많이 버는 걸로 잘못 알고 있으니 말이지.

깡 :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많이 버는 작가는 정말이지 손에 꼽죠. 일본 작가 중에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세요?

허 : 우라사와 나오키. 정말 굉장한 작가야. 그 사람처럼 처음부터 긴장을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고 끌고 간다는 건 엄청난 거거든. 그 사람 만화들이 근데 다 비슷비슷해. 마스터 키튼도 그렇고 20세기 소년도 그렇고,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얘기를 끌고 나가는 것 같더라고. 그 사람 그림을 확대해서 보면, 엉성해. 아니, 엉성하다기 보다는 큰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손이 몇 번 안 가게 그려. 그렇게 그림을 그린다는 건 '오케이 이 정도면 됐어'라는 굉장한 자신감이야. 멋있어.

깡 : 저도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우라사와 나오키예요. 다른 사람은요?

허 : 또 한 명은 슬램덩크 그린 다케히코 이노우에. 그 사람이 근간에 '리얼'이라는 걸 그리잖아. 정말 잘 그리더라고.

깡 : 이노우에는 화집이 따로 나올 정도죠.

허 : 베가본드 같은 작품은 정말 잘 그려.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가 그릴 수 있는 작업량을 오바한 것 같아. 그렇게 엄청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야.

깡 : 선생님도 절대 대충 그리는 스타일은 아니죠.

허 : 내가 정말 칭기즈칸 같은 거 그리면서 만화가 한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십만 대군이 맞붙어봐. 아무리 먼지로 위장을 해도 200명은 그려야 한다고. 소설 같은 걸 할 걸 그랬어. 소설은 그냥 '십만 대군이 진격했다'하면 되는걸.

허영만의 대표작 식객의 그림체.

깡 : 선생님은 취재는 어떻게 하셨어요? 예를 들어 비트 같은 만화를 보면 당시의 패션이 그대로 살아 있잖아요.

허 : 나 그때 정말 열심히 했어. 그때 당시의 젊은이들 패션을 그리려니까 '논노'라는 패션 잡지를 사다 놓고 몇 권을 스케치를 했는지 몰라. 그러다 보니까 좀 알겠더라고. 그런데 취재를 하다 보니까 이 만화는 그때까지 그리던 내 그림체 가지고는 안 되겠다 싶더라고. 그림체를 확 바꿨지. 그전까지 내 만화에 등장하던 좀 각진 얼굴, 신파조의 얼굴을 버리니까 문하생들이 먼저 좋아하더라고.

깡 : 사실 대부분의 작가가 자신의 그림체를 유지하려고 하는데 그걸 박차고 나오신 게 정말 존경스러워요.

허 : 시대가 변하고 내 인간성도 변하는데 과거를 고집할 필요가 뭐 있느냐 말이지. 예를 들어 허영만이라는 바위가 있다고 쳐봐. 사람들에게 그 바위의 겉모습은 항상 똑같단 말이지. 그런데 이걸 확 뒤집으면 어떠냐면 그 바위의 밑면에서 벌레도 있고 흙도 묻어 있고 축축하게 젖어있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 등장하거든. 그렇게 계속 바위를 뒤집어 줘야 해.

깡 : 그림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이번 전시에서 참 좋았던 게 그림일기였어요. 마치 프랑스 카투니스트들 같은 세련되고 귀여운 그림체로 그린 일기들 말이죠. 식객의 취재일기에도 간간이 그런 그림체가 등장하지요.

허 : 그건 내가 매일 그리는 일긴데, 그거 그릴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아요. 요새 와콤에다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림체가 맘에 안 들어 죽겠어. 식객 2부터 와콤에 그리기 시작했는데 아주 맘에 안 들어. 난 어떻게 하면 다시 종이로 돌아갈까를 생각하는 중인데 혼자 그리는 것도 아니고. 지금 연재하는 '커피 한잔 할까요?'는 문하생들 3명이랑 같이 하는 거니까 공동 작업인데 혼자 종이에 그릴 수도 없고 말이지. 내 나이면 사실 마누라한테 용돈 받아서 나와서 산에 갔다가 내려오면서 막걸리 한잔 마시고 당구치는 사람들이 99%에요. 근데 나는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내 결과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계속 해야지.

깡 : 선생님은 안 다룬 소재가 없더라고요. 야구, 복싱, 요리, 커피, 술, SF, 정치, 역사까지. 일본 만화들을 보면서 참 소재가 다양하다고 부러워했는데, 우리에겐 허영만이 있다고나 할까요?

허 : 그게, 이것저것 다 했다는 건 잘 못 했다는 뜻이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정말 앞만 보고 달려왔거든. 예전에 '각시탈' 할 시절에는 만화가 분량이 딱 정해져 있었어요. 연재 결정 나면 '한 달 안에 3권 148페이지' 뭐 이런 식으로 말이지. 그럼 죽어라 그리는 거야. 그렇게 하다 보니까 어느 정도냐면 내가 원고를 보내놓고 인쇄된 책이 왔는데 보지도 못하고 처박아 놓은 경우가 부지기수야. 전시회 때문에 세어보니 타이틀만 215개야.

깡 : 이미자 씨가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라디오에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노래가 나와서 봤더니 자기 노래더라. 톨스토이도 그랬죠. 책장에 재밌는 책이 있어서 재밌게 다 읽고 봤더니 자기 소설이더라.

허 : 그럴 수 있지. 우리는 잘 모르지만, 소설도 사실은 공동 작업을 하는 경우가 있나 보더라고. 톨스토이는 잘 모르겠고, 프랑스의 소설가 뒤마는 같이 작업한 문하생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대. 공동작업으로 써내는 분량이 많으면 자기 작품도 못 알아볼 수 있는 거지. 지금 드라마 쓰는 사람들도 보면 공동 작업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하더라고.

깡 : 사실 공동 작업이 아니면 선생님 그림 같은 디테일이 나오기 힘들 것 같아요. 오늘 전시된 그림을 보다 보니 저 멀리 후경에 있는 작은 책까지 아주 자세하게 그리셨더라고요.

허 : 전시회장 고릴라 피겨가 있는 곳에 왜 '제 7 구단 엄청나게 크게 뽑아 놨잖소. 야구경기에 고릴라가 처음 등장하고 관중석에 난리가 나는 장면인데 배경에 아주 작게, 한 남자가 총을 들고 있거든. 그걸 보면서 한 기자가 '이건 정권에 대한 반항이냐'고 묻더라고. 나 원, 참.

깡 : 그럼, 총 들고 있는 사람은 왜 그리셨어요?

허 : 위험하니까. 그 많은 사람이 모인 야구장에 고릴라가 나타났으면 위험하다 싶어서 가지고 있던 총을 꺼내 드는 사람도 한 명쯤은 있지 않겠느냐 싶어서 그린 거지.

깡 : 그런 상상력이 작품을 살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선생님 요새 방송에도 나오고 하시니까 어떠세요?

허 : 난 잡놈 다됐어. 그동안 그래도 아끼고 아낀다고 인터뷰도 많이 안 하고 자제하고 그랬는데, 전시회 한번 하느라 방송에도 나가서 '내 전시회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데 만화계로서는 큰 사건이고요'라고 떠들고 말이야.

깡 : 그래서 손석희 앵커랑 인터뷰하면서 장소를 말씀 안 하신 거예요?

허 : 아냐. 그땐 정말 생각이 안 나더라고. 손석희 씨가 '예술의 전당이 넓은데 예술의 전당 어디서 하십니까?' 물었는데 순간적으로 생각이 안 나더라고.

깡 : 그게 또 화제가 됐잖아요. 아까 만화일기가 좋았던 것도 같은 맥락인데, 방송에서 대가가 나와서 우리 삼촌 우리 아빠 같은 일상의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게 매력적인 거죠. 공감의 시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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