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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 조문시의 어느 대처법

노건호씨가 현대 중국 뿐만 아니라 고대 중국 역사도 좀 더 천착했더라면 조금 다른 태도를 취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고전 소설 [삼국지연의]의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전근대(前近代) 동아시아 한자문명권(漢字文明圈)에서 불청객(?)이 조문을 하였을 때 상주나 제주 측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대한 일종의 전범을 보여준 것은 필자 생각으로는 나관중의 위 소설에서 동오(東吳)의 중신 주유(공근)가 죽자 제갈량(공명)이 문상 갔을 때 벌어진 일화가 아닐까 싶어서 그 내용을 소개해 본다.

  • 바베르크
  • 입력 2015.05.28 07:50
  • 수정 2016.05.28 14:12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가 부친의 6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상대로 독설을 퍼부어 화제가 되고 있다. 상대방인 김무성 대표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가운데, 새정치연합 등 야권에서는 시원한 발언이었다는 반응도 있고, 내용은 적절했으나 장소는 부적절했다는 신중론도 있는 듯하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인 듯하다. 노건호씨는 LG전자를 휴직하고 중국 베이징에서 유학 중이라고 하는데, 발언 중 중국 관련 발언 등도 아마 평소 노씨가 학업 중 느낀 바가 아닐까 하는 짐작이 든다.

그런데 필자는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노건호씨가 현대 중국 뿐만 아니라 고대 중국 역사도 좀 더 천착했더라면 조금 다른 태도를 취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고전 소설 [삼국지연의]의 다음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전근대(前近代) 동아시아 한자문명권(漢字文明圈)에서 불청객(?)이 조문을 하였을 때 상주나 제주 측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대한 일종의 전범을 보여준 것은 필자 생각으로는 나관중의 위 소설에서 동오(東吳)의 중신 주유(공근)가 죽자 제갈량(공명)이 문상 갔을 때 벌어진 다음 일화가 아닐까 싶어서 그 내용을 소개해 본다.

5월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서 노건호씨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앞을 지나가고 있다.

조조의 83만대군에 맞서 주유의 주군인 손권과 제갈량이 모시는 유비가 힘을 합친 적벽대전 때부터 주유는 제갈량을 눈엣가시처럼 여겨 없애 버리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였다. 제갈량도 동오가 막대한 전비를 들여 적벽대전의 승리를 사실상 주도했음에도 땅 한 치도 얻지 못하게 막으며 형주의 핵심인 형주성과 남군성을 그야말로 날로 먹었다. ([삼국지연의]의 바탕이 된 실제의 역사서인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서는 오히려 적벽에서 유비의 활약이 꽤 있다고 나와 있는 걸 보면 이것은 연의의 저자 나관중이 "제갈량이 킹왕짱이심!"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도술로 동남풍을 일으키는 것 같은 어이없는 얘기들을 연의에 많이 삽입한 것과 같은 맥락의 과장인가 싶기도 하다)

그 후에도 주유와 제갈공명은 형주의 귀속을 놓고 불꽃 튀는 싸움을 벌였다. 주유는 손권의 여동생과 유비의 결혼식을 이용해 유비를 죽이거나 동오에 억류하려 했다. "서천을 정벌하여 유비에게 내주고 대신 형주를 돌려받겠다"는 명분을 내세운 후에 실은 형주를 치려는 주유의 계략(실은 동오의 서천 정벌 계획이 삼국 중 전반적으로 제일 소극적이었던 오나라가 취했던 가장 적극적인 현상타파 행위였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다)을 제갈량이 간파해 주유를 역공하자, 화병이 난 주유는 이 일 때문에 결국 세상을 떠나기에 이른다. 결국 제갈량이 주유를 죽인 것과 다름없었고, 심지어 주유는 죽으면서 "하늘이 이 세상에 주공근을 내보내셨으면서 어찌하여 다시 제갈량을 태어나게 하셨는가"라고까지 했다고 한다-_-; 그런데 이 게 피장파장인 것이 제갈량이 주유를 죽게 하지 않았더라면 앞에서 보았듯이 주유가 제갈량을 죽였을 것이다; 말하자면 둘은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는 철천지원수이자 라이벌이었던 것.

어쨌든 동오쪽 주유의 상관, 동료, 부하들은 주유를 죽인 게 제갈량이라면서 복수심에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제갈량이 떠억하니 문상을 하겠다고 나타나니 성미 급한 동오의 무장들 중에서는 그 자리에서 제갈량 다리 몽둥이를 뿐질러버리겠다고ㄷㄷㄷ 나서는 이들까지 있었고 동오의 친유비파인 노숙 같은 이가 그들을 간신히 뜯어말려야 했다.

그러나 자고로 동아시아에서 문상객 앞에서 패악질치는 것만큼 칠칠치 못한 일이 없고 더군다나 큰 뜻을 품은 상주는 어디까지나 지극한 분노가 있다고 해도 이를 삼키는 법. 제갈량은 이 적대적인 동오의 문무백관들 앞에서 주유의 영정에 술잔을 올리고 조사를 읽기 시작했는데, 아아 그런데 그 뜻이 참으로 곡진하고 지극하였고 천하의 대역적인 조조를 치기 위해 적벽대전에서 손가와 유가가 힘을 합쳤던 일을 회상하면서 그 중에서도 으뜸장수인 주유의 지략과 용맹함을 칭송하고 젊은 나이에 죽은(주유는 사망 당시 불과 36세ㅠㅠ) 주유를 안타까워 하고 애통해 하는 마음만 담았을 뿐이었다.

문상은 죽은 이를 위한 것이지만 실은 살아남은 이를 위한 행위이기도 했기에 적대적인 동오 중신들도 제갈량의 조사를 들으며 점차 마음이 누그러졌다. '어쩌면 주유가 성격이 유별나서 제갈량을 나쁘게 말한 것이 아니었을까, 제갈량은 주유를 이렇게 좋게 말하는데'하는 의문을 품게 된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고.

하지만 제갈량이 정말 주유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했을까? 연의에서는 제갈량이 이런 감동적인 조사를 마치고 나서는데 '세상 사람 다 속여도 난 못속인다'고 낄낄대며 봉추 방통이 속삭이는(응?) 바람에 제갈량이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나오지만, 글쎄 난 제갈량의 조사에 진심이 전혀 담기지 않았다고는 보지 않는다. 제갈량의 형 제갈근도 동오에 출사하고 있었고 제갈량이 유비의 삼고초려 후에 유비에게 개진하였다는 대전략인 천하삼분지계에서는 최후의 적 조조를 거꾸러뜨리기 전에는 동오는 동맹으로 상정되어 있었다.

그러기에 심지어 유비와 그 의형제들이 직간접적으로 동오 때문에 죽고 문제적 지역인 형주까지 끝내 동오에 강탈당한 다음에도 제갈량은 동오와의 동맹을 복원했고 이런 제갈량의 진심이 마침내 동오에 전해진 탓인지 서기 234년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어서 촉한이 가장 취약해진 시기에도 손권은 촉한을 넘보지 않고 제갈량의 죽음을 문무백관과 함께 애도하였다.

사실 주유의 문상을 한 단기적인 효과도 주유의 죽음에 대한 보복전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었을 동오 내의 반대여론을 누그러뜨리고, 주유에 이어 동오 군국의 대권을 쥐게 된 친유비파인 노숙을 위해 제갈량이 물거나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응?) 동오 내 중신들에게 보여준 것이었다. 그리고 막말로 이렇게 주유 문상을 온 제갈량을 동오의 반유비파들이 해치기라도 했으면 이제 주유도 없는데 동오가 제대로 그 뒷감당을 했을지 의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동오에서 가장 탁월한 중신이었던 주유를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잃고 나서 연의에 따르면 거기에 사실상 전적인 책임이 있다시피한 제갈량이 주유를 조문하겠답시고 나타났을 때도 그에게 휘둘려 감동하여 눈물만 흘리고 돌려보낸 동오는 끝내 제갈량에게 호구만 잡혔는가? 아니다. 연의에 의하면 동오는 친유비파인 노숙이 있을 때에도 유비 세력과 첨예한 분쟁의 대상이던 형주의 아홉개 군 중에서 세 군데를 돌려받았으며, 주유와 노숙의 뒤를 이어 손권을 보좌한 여몽에 이르러서는 결국 지략으로 형주를 완전히 되찾는데 성공한다. 이때 유비 측에서 형주를 지키던 연의에 유비의 의형제로 나오는 관우가 양측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악화되기 전에 손권의 결혼 동맹 제의에 대하여 '범(관우 자신을 지칭)의 자식이 어찌 개(손권을 지칭)의 자식과 맺어지겠냐'며 코웃음을 쳤던 것이 특기할 만하다고나 할까. 관우는 청사에 그 꼿꼿한 이름을 남겼으나 불청객의 조문과 관우의 모욕을 참아낸 동오는 형주와 형주를 지키던 관우의 목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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