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액션 영화인 척하는 페미니스트 영화인 척하는 액션 영화다

  • Joe Goodman
  • 입력 2015.05.27 09:46
  • 수정 2016.05.26 14:12
ⓒwarner bros.

나는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 정말이다. 멋진 자동차 추격, 총격전, 어딘지 모를 중동 대도시에서 옥상을 뛰어다니는 파쿠르를 좋아한다. 양복을 입은 남자가 테이블을 발로 차서 뒤집는 것, 맷 데이먼이 아파트에서 누군가를 볼펜으로 찌르려 하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액션 영화 중에서도 똘똘한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 '헝거 게임: 캣칭 파이어'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나,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영화들처럼 서브 텍스트가 있는 지적인 영화가 좋다. 뻔히 예측 가능했던 영화가 갑자기 돌변하고, 모든 것이 다 꿈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그리고 그 꿈이 알고 보니 꿈 속에서 꾼 꿈이었고 모든 것이 영화 제작에 대한 포스트 초현실주의 메타포가 되는 순간이 좋다. 즐기는 동시에, 내가 이 영화를 이해했다고 기뻐할 수 있는 액션 영화가 정말 좋지 않은가.

내가 읽어 본 글들에 의하면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내 문화 비평에 딱 들어맞는 영화로 보였다. 생태계가 끝장난 지 40년 뒤, 종말 후의 황무지를 배경으로 한 자동차 추격전. 배부른 자본가라는 걸 못 알아볼 수 없도록 너덜너덜한 양복을 입은 악당들. 가부장제를 전복하고 억압받던 여성들을 해방시키는 강력한 여성 주연. 할머니를 몇 명 넣고, 신체 장애를 가미하고, (영화 제목이 그 사람 이름이긴 하지만) 형식적으로 내세울 남자를 하나 등장시키면 내 가짜 스칸디나비아 취향을 전부 충족시키는 영화가 될 것 아닌가.

하지만 막상 봤더니 꽤 지루했다. 사령관 퓨리오사(머리 짧은 샤를리즈 테론)가 멋지다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상징적으로는 여성, 그것도 장애가 있는 여성이 강하고 독립적인 실용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중요한 선언이다(그렇다고 비키니와 가죽바지를 입은 모습이 멋지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퓨리오사는 아주 남성적인 의미에서 강하고, 부발리니 - 이런 이름을 짓다니 참 상상력이 풍부하기도 하시다 - 역시 그렇다. 이 영화가 페미니스트 알레고리라면, 그건 여성성을 희생하며 성취한 것이다. 퓨리오사와 부발리니는 총을 잘 쏘고 오토바이를 잘 타는데, 그렇다면 다섯 명의 아내들은 그들의 다양한 인격보다는 알록달록한 머리 색깔로 구분하는 게 빠른, 내숭 떠는 어린아이들인가. 여성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장면이라곤 여자아이들과 할머니들 사이의 어색한 일화 몇 개뿐인데, 전혀 감동적이지 않다.

슬프지만 난 이 영화가 페미니스트들에게 덫을 놓았다고 생각한다. '여자를 넣되 성적 대상으로 만들지 마.', '모성을 드러내는 나이 든 여자들을 보여 줘.', '약점이 있다는 걸 보여주도록 그 여자 팔 하나는 잘라.' 그러나 효과가 없다. 그래봤자 이 영화는 남자가 만든, 주로 남자들을 위한 영화다. 캐릭터 개발은 뒷전이고, 정치와는 무관한 감각적 자극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매드 맥스가 말을 거의 안 한다는 건 사실이지만, 다른 캐릭터도 말은 별로 하지 않는다. 화염방사기 기타 맨이 아내들 두세 명을 합친 것보다 더 개성이 있다.

나는 이런 종류의 페미니즘은 마가렛 대처가 수상이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취급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대처와 마찬가지로 퓨리오사는 명예 남성이다. 한 여성의 성공이 여성 전체의 해방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그녀의 강함이 젠더 비유가 지나치게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소아병적인 다섯 아내에게까지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아깝다. 강한 여퓨리오사와 부발리니는 대처처럼 명백히 '타인'일 뿐, 강한 여성들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공감할 수 있는 여성이라기보다 외계 종족에 더 가깝다. 한편 여성의 억압을 나타내야 할 성 노예들은 눈에 확 들어오는 세차 패러디 장면으로 등장한다. 농담을 의도한 레퍼런스일지도 모르겠으나, 그 다섯 명 중 두 명이 빅토리아 시크릿 앤젤들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과연 농담이었을까 싶다.

이 영화엔 분명 무언가 있긴 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픽사 영화들이 색깔과 액션에 예민한 아이들에게 어필하는 동시에 서브텍스트로 아이의 부모들도 즐겁게 하는 것을 아는가? 이 영화도 그런 느낌이었지만, 이 경우 아이들이 아닌 성인 남자들이 평범한 섹스와 폭발을 즐기는 와중에, 부모가 아닌 페미니스트들이 모래 폭풍 속을 뒤지며 정치적인 것을 찾아내는 형국이다. 안타깝게도 절충이 효과를 보지 못했고, 충분히 페미니스트이지도, 충분히 짜릿하지도 않아 영화를 보는 내 뇌의 양쪽 모두 만족하지 못했다. 남성 권리 주의자들을 속이지도 못했다. 그들은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이 영화의 메시지를 물고 늘어지며 탄원서를 작성했다. 내가 이것을 아이들에게 비교한 것이 내 의도보다 더 적절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것들을 사람들이 못 보고 넘어가리라 생각했다면 그건 너무 나이브한 일이다.

이 영화가 내게 보여준 것은 정치적인 액션 영화가 훌륭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다. 빠른 속도로 싸우는 것이 우리 사회의 병폐에 대한 교묘한 선언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 준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영화가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정말 필요한 것은 장르를 제대로 이해하지만, 두려움 없이 장르를 완전히 뒤엎고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퀜틴 타란티노 같은 사람이다. 그가 여자라면 될 텐데.

허핑턴포스트US의 ''Mad Max' Is an Action Movie Posing as a Feminist Movie Posing as an Action Movi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