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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인터뷰]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컴퓨터가 세상을 바꾼다

  • 허완
  • 입력 2015.05.28 12:25
  • 수정 2015.06.01 06:38

파이크 존스의 영화 ‘그녀(Her)’는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사만다’라는 운영체제(OS)는 중년 남성 테오도르의 이메일을 분류해줄 뿐만 아니라 쓸쓸함에 시달리는 그에게 대화상대가 되어준다.

테오도르는 어떻게 사만다와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걸까? 중요한 건 그가 OS에 불과한 사만다와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이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말의 어감을 읽어내기도 하고, 생략된 말 속에 담긴 감정과 기분을 알아채기도 한다.

원래 인간의 대화가 그렇다. 우리는 스스로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기 위해 늘 주의를 기울인다. 인간은 소리로 표현되는 언어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말투나 표정, 제스처를 통해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을 서로 주고받는다.

영화에서처럼 컴퓨터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할까? ‘감성 컴퓨팅(Affective Computing)’은 바로 이와 관련된 연구를 다루는 학문분야다. 기계가 인간을 이해하고 서로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감성컴퓨팅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보다 훨씬 더 넓은 분야를 다룬다. 여기에서는 감정(Emotion, 정서, 감성)이 중요한 요소로 다뤄지기 때문에 인지과학은 물론, 공학의 거의 모든 영역이 동원된다. 인간의 ‘느낌적 느낌’을 이해하는 컴퓨터를 만드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 개념은 1995년 미국 MIT(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의 로잘린드 피카드 박사가 논문(PDF)을 통해 처음으로 제안했다. 이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한 피카드 박사는 SBS ‘서울 디지털 포럼 2015’에 참석하기 위해 최근 한국을 찾았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그를 만나 감성 컴퓨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물었다. 피카드 교수는 1991년부터 MIT 미디어랩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다양한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 ‘감성 컴퓨팅’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아직 익숙하지 않은 개념인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접한 독자들을 위해 이 용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 감성컴퓨팅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감정(emotion)을 인식하도록 설계된 기술입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함께 했죠. 인간의 대화에는 늘 감정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화나게 했는지, 기쁘게 했는지, 지루하게 했는지, 흥미를 끌게 했는지 인식하는 것이죠. 그런 감정을 이용해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더 깊게 반응하고 또 더 나은 결정을 내립니다.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볼 것인지, 어떤 것에 집중할 것인지 판단할 때 감정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 그렇다면, 인간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컴퓨터를 연구하는 것인가요? 그 전에, 컴퓨터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게 정말 가능한지부터 여쭤봐야 할 것 같군요.

= 당신이 드러내는 감정을 컴퓨터가 인식(recognition)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이건 컴퓨터가 당신의 감정을 ‘이해(understanding)’한다는 것과는 약간 다른 문제입니다. 당신이 얼굴을 찡그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표정을 지을 때, 컴퓨터는 물론 그걸 인식하지만 ‘혼란스러운 감정’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 건 아닙니다. 인간의 기분(feeling)은 얼굴의 표정이나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어떤 신호 그 이상의 무엇이죠. 데모를 하나 보여주는 게 좋겠군요.

우리가 아펙티바(Affectiva; MIT 과학자들이 창업한 스타트업)와 함께 개발한 모바일 앱 중 하나를 보여드리죠. 이 앱은 당신이 눈썹을 치켜뜨는 모습, 얼굴을 찌푸리는 모습을 인식합니다. 이걸 통해 당신이 긍정적인 표정을 짓는지, 또는 부정적인 표정을 짓는지 인식할 수 있는 것이죠. 만약 당신이 무언가 당혹스러워서 찡그린 표정을 지으면, 부정적인 표정으로 인식하죠. 물론 그게 ‘나쁜 감정’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일 수도 있으니까요. 우울한 상태는 언짢은 표정으로 드러나죠. 다만 이런 표정들이 당신의 감정 상태, 즉 기쁜지 슬픈지를 전부 말해주는 건 아닙니다.

-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는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들이 필요한가요?

= 감정은 우리의 모든 행동에서 드러납니다. 카메라나 마이크, 센서로 인식될 수 있죠. 예를 들어 물병을 집어드는 행동에서도 감정이 묻어나죠. 물병을 확 잡아채는지, 부드럽게 잡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감정 상태를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여기에서는 센서가 모든 걸 담당합니다. 감정 상태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인식하도록 도와줍니다.

- 인간의 의사소통 과정에서도 종종 오해가 발생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죠. 컴퓨터가 인간의 감정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 조금은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 컴퓨터도 물론 얼마든지 오해를 하거나 실수를 저지를 겁니다. 우리 인간이 늘 그러는 것처럼 말이죠. 그 이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야, 예를 들어 반복적인 업무의 경우 우리는 컴퓨터에게 인간보다 더 많은 걸 기대합니다. 반면 감정을 다루는 이 분야에서 컴퓨터가 인간보다 뛰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사람의 표정을 얘기해보죠. 컴퓨터가 인간보다 그 순간을 더 잘 포착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적인 표정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하죠. 단순히 그 순간의 표정뿐만 아니라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는 겁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현재의 상황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 중요한 순간인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순간인지- 같은 것들 말이죠.

- 그렇다면 표정 같은 정보를 분류하는 알고리즘의 역할이 필수적이겠군요?

= 그렇습니다. 알고리즘은 이 부분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감정을 인식한다는 건 체스 게임에 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일이니까요.

대화 주제는 피카드 박사 연구팀이 발명한 ‘임브레이스(Embrace)’로 넘어갔다. 독특한 디자인을 뽐내는 이 스마트워치는 사실 의료기구 쪽에 더 가깝다. 이 시계를 착용한 이용자의 전기적 활동을 측정하며, 특히 뇌 깊은 곳의 신호를 감지하는 기능을 갖췄다.

이를 통해 임브레이스는 뇌전증 환자의 발작을 예측하고 미리 경고하는 기능을 한다. 또 실제로 발작이 일어났을 경우 즉각적인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 이 제품은 크라우드펀딩으로 70만달러(약 7억8천만원) 넘는 돈을 모았다.

- 당신이 개발에 참여한 ‘임브레이스’에 대한 얘기를 해보죠. 이 스마트워치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우리는 몇 가지 센서를 만들었습니다. 고객들은 이 안에 어떤 게 들어있는지 끊임없이 궁금해 하죠. 이 안에는 발작을 감지하는 센서가 들어있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 우리는 여기에 몇 가지 다른 센서와 프로세서를 넣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안에 모든 게 들어있습니다. 디자인 팀이 꽤 고생했죠.

* 피카드 박사는 임브레이스의 디자인에 대해 '애플스토어의 진열대에서 판매할 것 같은 의료용 가젯을 만들고 싶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임브레이스의 디자인은 'Pearl Studios'가 담당했다.

이 센서들을 통해 수집된 데이터는 다른 디바이스로, 또는 스마트폰으로 전달됩니다. 만약 제가 발작을 일으켰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즉시 저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럴 경우, 가족이나 친구, 애인 등 미리 등록해놓은 사람들에게 내 상태가 자동으로 전송됩니다. 진동이나 알림을 통해 지인들이 즉각 내 상태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 이 기기가 실생활에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기대하시나요?

= 우리는 이 기기를 통해 다양한 신체 활동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대부분의 스마트워치는 활동(activity)과 수면 상태만 추적할 수 있죠. 우리는 거기에 더해 스트레스 데이터 같은 건강 정보를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이 기기를 통해 스트레스나 건강상태, 발작 위험 같은 정보를 더 면밀히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일반적인 스마트워치에 비하면 훨씬 더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 그렇다면 앞으로 이 기기, 더 나아가 감성 컴퓨팅 기술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아직 더 많은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목표로 따지자면 끝이 없죠. (웃음) 현재 헬스 분야에서 굉장한 변화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 나와 있는 대부분의 헬스케어 서비스는 질병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하는 부분에 집중하죠. 심장병이든 뭐든, 그동안에는 모두가 신체적 측면에서 건강을 다뤄왔습니다.

그러나 더 크게 봐야 할 건 인간의 감정, 정신적 건강입니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은 그만큼 신체의 질병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 건강이 신체적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고,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이죠.

우리는 인간의 정신적 건강에 수면, 스트레스 같은 것들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스마트폰과 센서를 통해 인간의 감정 상태도 측정할 수 있게 됐죠. 이제 이런 기술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벌어질 일을 ‘전망’할 수도 있게 될 거라고 봅니다.

일기예보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의 일기예보를 떠올려봅시다. ‘조만간 비가 옵니다’ 정도가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수많은 연구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내일은 비가 옵니다’에서 ‘내일은 비가 올 확률이 60%입니다’로 점점 진화해왔죠.

마찬가지로 우울증, 발작 같은 증상을 미리 예고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지금처럼 운동을 하지 않고 친구들도 만나지 않으며 계속 우울한 기분을 유지한다면 곧 앓게 될 확률이 70% 높아집니다’라고 미리 알려줄 수 있다면? ‘오늘은 조금 더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알려준다면?

말하자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미리 알려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건 중대한 진전이고, 엄청난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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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임브레이스는 언제쯤 출시되나요?

판매는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 사전 예약을 하면, 올 가을 쯤에는 제품을 받아볼 수 있게 될 겁니다. 일부는 한국에서 생산됩니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더 빨리 받아볼 수도 있겠군요! (웃음)

로잘린드 피카드 박사는...

로잘린드 W. 피카드 교수는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미디어랩 소속 감성컴퓨팅리서치그룹 창립자이자 디렉터로 미디어랩 어드밴싱 웰빙 프로젝트(Advancing Wellbeing Initiative)의 공동 디렉터를 맡고 있다. 건강 증진을 위한 웨어러블 센서 및 분석기술을 개발하는 기업 엠파티카(Empatica)와 기술을 활용해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연구를 하는 어펙티바(Affectiva)를 공동 창립했다.

조지아공과대학교(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전기공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고 수석 졸업했다. 이후 MIT에서 전기공학, 컴퓨터공학 두 분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각각 모두 취득했다. AT&T 벨 연구소 기술팀으로 입사,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디지털 신호 처리에 활용되는 VLSI 칩과 영상압축에 사용되는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1991년 MIT 미디어 랩 교수로 임용된 이후 내용기반 이미지 검색을 위한 수학적 텍스처 모델 설계, 포토북 시스템과 같이 자동검색이나 영상 주석 등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 등으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1997년에는 저서 을 출간했고, 이는 감성컴퓨팅(Affective Computing)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가 시작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8년 설립되어 웨어러블 컴퓨팅 영역 개척에 공헌한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 산하 웨어러블 정보 시스템 기술위원회(IEEE Technical Committee on Wearable Information Systems)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해오며 웨어러블 센서, 비접촉식 센서, 알고리즘, 인간의 감정 정보를 감지, 인식하고 적절하게 반응하는 시스템 등 다수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자폐증, 간질,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수면 장애, 스트레스, 치매, 자율신경계 이상과 같은 질병의 치료와 인간 및 기계학습, 건강 습관 개선, 시장조사, 고객서비스, 인간과 컴퓨터간 상호작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피카드가 개발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2005년 이미지 및 비디오 분석과 감성컴퓨팅 분야에 기여한 공로로 국제전기전자기술협회 펠로우로 위촉되었다.

지금도 업계와 활발하게 협력하고 있고 애플, AT&T, BT, HP, iRobot, 머크, 모토로라, 삼성 등 다수의 기업에 자문을 제공해왔다.

현재 남편과 세 아들과 함께 메사추세츠주 뉴튼에 거주하고 있다. (via SBS 'SDF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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