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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위기로 보지 못하는 '박근혜 위기'

박 대통령이 2년 반 동안 한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위기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100%의 대통령'은커녕 '30~40% 정도의 대통령'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대통령의 힘은 떨어진 지 오래고 나라는 사안마다 분열되어 있다. 경제는 복지도 성장도 아닌 정체불명의 노선 속에서 속절없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초기엔 그렇게 잘한다고 자화자찬하던 외교·안보도 북한과 일본에 대해 스스로 설정한 '탈레반적 기준'에 발목이 잡혀 비틀대고 있다.

  • 오태규
  • 입력 2015.05.26 11:11
  • 수정 2016.05.26 14:12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에 대한 걱정이 남녀노소와 이념의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분출하고 있다. 대통령이 가장 많이 나라와 국민을 걱정해야 마땅한데, 오히려 국민이 대통령과 나라를 보며 노심초사해야 하는 역전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임기가 거의 반환점에 이른 박근혜 정부는 지금 나라 안팎에서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2년 반 동안 한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위기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100%의 대통령'은커녕 '30~40% 정도의 대통령'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대통령의 힘은 떨어진 지 오래고 나라는 사안마다 분열되어 있다. 경제는 복지도 성장도 아닌 정체불명의 노선 속에서 속절없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초기엔 그렇게 잘한다고 자화자찬하던 외교·안보도 북한과 일본에 대해 스스로 설정한 '탈레반적 기준'에 발목이 잡혀 비틀대고 있다.

야당 의원들의 말에 따르면, 대통령이라면 자신의 임기 동안에 해놓고 싶은 이른바 '대통령 사업'을 예산에 집어넣고 밀어붙이는 게 보통인데 두 차례 예산을 심의해 봐도 딱히 그렇게 여겨질 만한 예산이 없었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 때의 벤처 지원, 노무현 대통령 때의 세종시·혁신도시, 이명박 대통령 때의 4대강과 같은 굵직한 사업이 눈에 띄지 않아 덩달아 예산심의도 그리 긴장감이 없었다는 것이다. 낭비적인 사업이야 당연히 안 벌이는 게 낫지만 '창조'니 '미래'니 하고 떠벌리던 것을 생각하면 그에 맞는 행동이 따르지 않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오죽하면 박 대통령 하면 생각나는 게 통합진보당 해산 말고는 없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여기에 성완종 추문에 연루되어 사퇴한 이완구 전 국무총리 후임에 통진당 해산 및 성완종 추문 사건을 비롯해 중요한 사안이 터질 때마다 대통령의 '입안의 혀' 노릇을 해온 황교안 법무장관을 지명한 것을 보면, 박 대통령의 상황을 보는 눈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둔감한지 알 수 있다. 남들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나의 길'을 꿋꿋이 가겠다는 오기와 독선밖에 보이지 않는 인사다. 박상옥 대법관 인준 때처럼 숫자의 힘으로 밀어붙이자는 생각일 테지만, 황 장관의 총리 지명과 함께 여야 협조나 통합의 정치는 물 건너갔다고 보는 게 옳다.

정치가 좀 시끄러워도 경제가 괜찮으면 좀 나으련만, 경제 사정은 더욱 꼴이 아니다. 엔과 유로의 지속적인 약세로 수출 동력이 크게 약해졌고, 20~30대 취업 미경험 실업자가 12년 만에 최고치인 9만5천명에 이를 정도로 청년실업이 고착화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이 20일 발표한 올해 성장률 수정 전망은 더욱 사정이 악화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애초 3.5%에서 3.0%로 전망치를 수정했으나, 말이 3.0%이지 거기에 기준금리 추가 인하, 세수 목표치 달성 등 거의 불가능한 조건을 몇 개 붙여놓은 것을 고려하면 2%대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공언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경제 수장인 최경환 부총리의 존재감은 시간이 갈수록 흐려지고 있다.

외교·안보 문제에 이르면 할 말을 찾기가 더욱 어렵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취소,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사출시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숙청,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방북 허가 취소로 이어지는 북한의 불투명한 행태로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자세로 북한과 대화하고 협력을 끌어내는 것만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목소리를 키우는 길이다. 그런데 현영철 처형설의 섣부른 공개와 그에 대한 대통령의 잇단 비판 발언으로 북을 자극하면서 입지 축소를 자초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6월 한-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문제의 미국화'를 가속화하는 자리로 끝날 게 뻔하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위기란 낡은 것이 사라지는 반면,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위기는 그것보다는 위기를 위기로 보지 못하는 데 있지 않을까. '당태종의 위징'과 같은 인물은 보이지 않고 아첨꾼만 득시글거리니 참 걱정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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