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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다른 죄? 버림받은 로힝야족

“물과 식량이 부족해 배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들로 이뤄진 일가족은 얻어맞은 뒤 숨졌다. 사람들이 가족의 시체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로힝야족인 모함마드 아민(35)은 최근 영국 <가디언>에 동남아시아 안다만해를 표류하던 난민선의 참상을 이렇게 전했다. 아민을 포함해 이 난민선에 탄 이들은 로힝야족과 방글라데시인들로, 애초 말레이시아로 가려 했으나 인도네시아 해군과 말레이시아 해군 모두로부터 쫓겨났다. 바다를 석달 넘게 떠돌다가, 인도네시아 아체주 근해에서 침몰 직전에 겨우 지역 어부에게 구조됐다. 구조 당시 살아남은 이들은 700여명이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마지막 남은 식량을 두고 배 안에서 싸움이 벌어져 100명이 살해됐다는 증언도 있다고 전했다. 로힝야족과 방글라데시인들이 서로를 살육했다는 말도 나왔다.

최근 안다만해를 떠돌고 있는 해상난민은 수천명으로 추정된다. 난민 중에는 극심한 가난에서 탈출하려고 배에 탄 방글라데시인도 있지만 상당수는 미얀마의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으로 알려졌다. 안다만해 주변 국가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타이는 난민선을 발견하면 서로 다른 나라로 쫓아내다가, 로힝야 난민 표류 문제가 커지자 1년 동안은 이들을 난민촌 등에 수용하기로 했다. 로힝야족의 고향인 미얀마는 ‘우리와는 관계없는 문제’라고 주장한다.

로힝야족은 미얀마 북서부 라카인주에 80만명가량, 그리고 방글라데시의 난민촌 등에 20만명 이상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소수민족이다. 언어는 방글라데시 남부지방 방언과 비슷하며, 미얀마인 다수의 종교가 불교인 것과 달리 이슬람교다.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이들’, ‘세계에서 가장 환영받지 못하는 이들’, ‘세계에서 가장 잊힌 이들’이라는 서글픈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로힝야가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이 된 데는 이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미얀마에서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데 일차적 원인이 있다. 미얀마 정부는 이들에 대해 로힝야라는 용어조차 쓰지 않는다. 대신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이주자라는 뜻이 담긴 ‘벵갈리’라는 호칭을 쓴다. 라카인 지역에서는 이들의 어두운 피부색을 비하하는 뜻이 내포된 ‘칼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2009년 홍콩에 있던 미얀마 외교관이 다른 나라 외교관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로힝야족은 “괴물처럼 추하다”고 표현해 파문이 일었던 적이 있다. 이 외교관은 당시 로힝야족의 피부가 짙은 갈색으로 다른 미얀마 사람들의 얼굴색과 다르다며 인종차별적인 시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미얀마 정부는 영국이 1824년 이후 미얀마를 영국령 인도의 일부로 식민통치하기 시작한 뒤 같은 영국의 식민통치 지역인 방글라데시에서 로힝야족들이 건너오기 시작했으며,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방글라데시에서 넘어오는 불법이주자들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로힝야 역사학자들은 로힝야가 7세기 라카인주에 정착한 아랍 무슬림 상인들의 후예라고 말한다.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 박해는 1962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네윈 정권이 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버마족과 다수 불교도 위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본격화됐다. 네윈 정권은 1978년 무슬림 반군 토벌을 명분으로 내건 군사작전인 ‘킹 드래건’ 작전을 펼쳐 로힝야족을 대규모로 체포했다. 이 작전을 피해 로힝야족 20만명이 방글라데시로 피난을 떠났다. 이들은 방글라데시에서도 지원을 별로 받지 못해 1만2000명가량이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었으며, 살아남은 이들은 대부분 미얀마로 송환됐다.

네윈 정권은 1982년 시민권법 개정을 통해 로힝야의 미얀마 국적도 사실상 박탈해버렸다. 이 시민권법은 미얀마 국민을 ‘태생시민’(Citizen), ‘제휴시민’(Associate Citizen), ‘귀화시민’(Naturalized Citizen) 세가지로 구분한다. 태생시민은 미얀마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종족 또는 미얀마-영국 1차전쟁이 일어난 1824년 이전부터 현재 미얀마 영토 안에 거주했던 조상을 둔 주민에게 부여되는 지위다. 미얀마 정부가 인정하는 종족은 130개가 넘지만, 로힝야는 공식 인정 종족에 포함되지 않는다. 로힝야는 82년 시민권법에 따르면 귀화시민 정도로나 인정받을 수 있었다.

미얀마가 2011년 부분적 민주화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한 뒤 로힝야족의 사정은 오히려 악화됐다. 미얀마의 다수 종교인 불교 신도들 사이에서 극단주의적인 목소리가 커졌고, 2012년 라카인주에서 불교도 라카인족과 로힝야족 사이에 유혈충돌이 벌어졌다. 로힝야 남성이 라카인족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폭발한 유혈사태로 적어도 200명 이상이 숨졌는데, 숨진 이들 다수는 로힝야족이었다.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2013년 라카인주 폭동에 대해 다룬 보고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에서 당시 미얀마 정부 관료와 군 그리고 불교 승려들이 라카인족이 로힝야족을 살해하는 것을 선동하고 방조하는 ‘인종청소’를 했다고 비판했다.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은 2012년 로힝야 문제의 해법으로 사실상의 추방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로힝야 문제에 대한 해법은 “유엔난민기구(UNHCR)가 운영하는 난민캠프에 정착시키는 것이다. 만약에 이들을 받아주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로 보내 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얀마 정부는 라카인주 폭동 이후 로힝야족 10만명 이상을 따로 마련한 캠프에 살게 하고, 이들이 다른 마을을 방문할 때는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라카인주 당국은 로힝야 인구 증가를 막는다며 로힝야 마을 주민들에 대해서만 아이를 2명 이상 낳지 못하게 하는 산아제한 정책까지 실시해왔다. 최근 미얀마 정부는 여성이 한번 출산을 하면 3년 동안은 아이를 갖지 못하며 무슬림과 불교도 사이 결혼을 제한하는 법률을 공포했는데, 이 법률이 로힝야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다.

지난 14일 타이 남부 리뻬섬 부근에서 타이 군이 헬리콥터를 이용해 로힝야 난민들이 탄 배를 향해 식량을 떨어뜨려주자, 난민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식량을 줍고 있다. 리뻬/AFP 연합뉴스

미얀마 정부는 지난해 로힝야에게 국적을 부여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라카인 행동계획’을 내놨는데, 로힝야 주민이 조상이 미얀마가 영국에서 독립한 1948년 이전부터 미얀마에서 거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스스로 ‘벵갈리’라고 등록하면 시민권을 부여하겠다는 게 뼈대다. 로힝야족 상당수가 1948년 이전부터 거주했음을 증명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이 계획은 로힝야 추방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뉴욕 타임스>는 라카인 행동계획에 담긴 미얀마 정부의 메시지는 로힝야는 미얀마에서 나가라는 의미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미얀마에서 강을 건너면 닿을 수 있는 방글라데시도 로힝야의 안식처는 될 수 없다. 방글라데시에는 이미 유엔난민기구가 인정하는 로힝야 난민이 약 3만명 있으며, 유엔 난민촌 주위에 미등록 난민 20여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2012년에는 국경없는의사회 같은 국제 구호단체의 구호활동이 난민 유입을 증가시킨다며 사업 중단을 요구한 적도 있다. 최근에는 로힝야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 순찰을 더 강화하고 있다.

갈 곳 없는 로힝야가 최근 부쩍 눈을 돌리고 있는 곳이 이슬람 국가이면서 비교적 소득 수준이 높은 말레이시아다. 그리고 로힝야가 말레이시아로 가기 위해 브로커들에게 몸을 맡긴 결과가 동남아 바다를 기약 없이 떠도는 해상난민 사태다.

로힝야에게 말레이시아 밀입국을 주선하는 브로커 가운데 상당수의 정체는 로힝야족과 말레이시아인 그리고 타이인이 뒤섞인 다국적 인신매매범들이다. 유엔난민기구가 올해 초 낸 보고서를 보면, 인신매매범들은 로힝야족이나 경제적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방글라데시인들을 상대로 처음에는 1인당 90~370달러의 비교적 적은 돈을 받고 밀입국 배에 태워준다. 때로는 공짜로 태워주기도 한다. 배가 타이에 상륙한 뒤 인신매매범들은 본색을 드러낸다. 난민들을 말레이시아 국경 근처에 있는 타이 남부 밀림 캠프에 가두고, 가족들에게 연락해 몸값을 1인당 2000달러까지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몸값을 낼 때까지 밀림 캠프에 가둬두는데, 이 과정에서 난민들이 병들어 죽거나 맞아 죽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타이 정부가 최근 로힝야뿐만 아니라 인신매매 문제 전반과 관련해 국제적 압력을 받으면서 문제는 다른 방향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타이에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미얀마나 라오스 등에서 오는 이주노동자가 많은데, 이들이 인신매매업자들을 통해 불법 조업을 하는 어선 소유주 등에게 팔린다는 보도가 지난해 잇따랐다. 미국은 타이에 인신매매 최하등급을 적용했고, 유럽연합(EU)은 타이의 불법 조업이 6개월 안에 개선되지 않으면 무역 제한 조처를 취하겠다고 했다.

이에 타이 정부는 인신매매 단속을 강화했고 지난 1일 타이 경찰은 말레이시아 국경과 인접한 타이 남부 송클라 지역 밀림에서 주검 26구를 발견했다. 며칠 뒤 타이 남부 밀림에서 해골 몇 개가 다시 발견됐다. 타이 경찰은 이 주검들 중 상당수는 인신매매범들에게 몸값을 내지 못해 타이 밀림지대 인신매매 캠프에 억류되어 있다가 숨진 로힝야족들이라고 밝혔다. 최근 타이 경찰이 인신매매 조직을 추적해 이들이 타이 남부 지역 당국자들과 유착한 사실을 밝혀냈다. 타이 언론에서는 인신매매업에 타이 군 장군이 연루돼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로힝야족 주검 발견은 또다른 비극의 예고였다. 타이 정부의 인신매매 단속 강화로 인신매매범들이 로힝야족이 탄 난민선을 버리고 탈출하면서 난민선에 탄 사람들이 배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 서로 난민선을 쫓아내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타이 정부가 일단 구조로 방향을 전환해 난민 3000명가량을 구조했지만, 아직도 안다만해 어딘가에 난민들이 떠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가운데 타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말레이시아 북부에서 로힝야족이 묻힌 것으로 보이는 집단 매장지들이 발견됐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24일 인신매매범들이 거처로 사용했던 캠프 인근에서 주검들을 발견했다며 난민 관련 인신매매 범죄로 추정했다. 현지 일간 <스타>는 100여구의 주검이 발견됐다고 전했으나, 아직 정확한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다.

미얀마 내부에서도 로힝야 같은 소수자에 대한 박해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다. 2012년 라카인주 폭동 때 로힝야뿐만 아니라 시민권을 인정받는 소수민족인 카만족도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불교 극단주의자들이 행사하는 폭력의 희생양이 됐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치도 로힝야 문제에 대해서 ‘법치’ 같은 원론적 수준의 말 정도에서 그칠 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발언을 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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