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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과 그를 낳은 분명한 시대가 그립다

영화 [변호인]을 보면서 계속 해서 떠오른 단어는 '번신(飜身)'이라는 말이다. '번신'은 리영희 교수가 중국 혁명 당시에 한 마을의 농민들이 자신들을 속박하던 봉건적 굴레들을 자각하고 이를 떨쳐 내는 과정을 그린 서구 작가의 동명의 책을 소개하며 쓴 말로 기억한다. 이 영화는 돈 버는 일밖에 모르던(그러나 오로지 합법적인 수단만 사용해서 열심히 일해서 벌던) 변호사가 1980년대 폭압적인 전두환 군사독재가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일상마저 무참히 유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가진 전문성과 성실함으로 이에 맞서 싸우면서 '번신'하는 과정을 그렸다.

  • 바베르크
  • 입력 2015.05.23 07:04
  • 수정 2016.05.23 14:12
ⓒ한겨레

오늘은 그분께서 세상을 뜨신지 벌써 6년째 되는 날이다. 정치적으로 그분을 계승하였다고 하는 세력들에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을 계속해서 견지해 온 내가 감히 그분을 추모하는 글을 올릴 주제는 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인권변호사셨고, 민주화 투사였으며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과 장관을 거쳐 국민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신 제6공화국의 네 번째 대통령을 지내셨으며, 탄핵의 심판도 이겨 내신 분을 추억하는 글 한 편은 올리고 싶어 과거 트위터에 썼던 영화 [변호인] 감상평을 손질하여 보았다. 물론 실물치의 그분과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 간의 격차, 인권변호사/민주화운동가 시절의 그분과 정치인 특히 대통령으로서의 그분의 차이에 대해서는 논란으로 가득 찼던 그분의 정치행적에 대한 의견만큼이나 저마다의 생각이 많이 다르리라 짐작해 본다. 아울러 재작년에 개봉되었던 이 영화 [변호인]에 대한 스포일러 논란도 사절하고 싶다.

영화 [변호인]을 보면서 계속 해서 떠오른 단어는 '번신(飜身)'이라는 말이다. '번신'은 리영희 교수가 중국 혁명 당시에 한 마을의 농민들이 자신들을 속박하던 봉건적 굴레들을 자각하고 이를 떨쳐 내는 과정을 그린 서구 작가의 동명의 책을 소개하며 쓴 말로 기억한다. 이 영화는 돈 버는 일밖에 모르던(그러나 오로지 합법적인 수단만 사용해서 열심히 일해서 벌던) 변호사가 1980년대 폭압적인 전두환 군사독재가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일상마저 무참히 유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가진 전문성과 성실함으로 이에 맞서 싸우면서 '번신'하는 과정을 그렸다. 또한 이 영화 [변호인]은 그러한 주인공 변호사가 변해가고 깨달아 가는 과정이 무감각하고 편견으로 가득차 있던 주변 사람들마저 '번신'하게끔 하여 그것이 거대하고 거센 물살이 되어 그러한 독재정권의 폭압성을 이겨냈던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 준다.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가 상고(商高)만 나오고 판사도 1년만에 그만두었지만, 부산으로 내려와서 다른 변호사들이 손조차 대지 않았던, 당시에는 사법서사나 하던 것으로 알려진 부동산등기 업무에 손을 대서 돈을 갈퀴로 긁어 모으듯이(쿨럭;) 버는 장면들은 그리고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가, 부동산등기업무가 다른 변호사들의 시장 진입으로 레드 오션이 되자 말자 재빨리 세무전문 변호사로 간판을 바꿔 달고서 다시 성공하는 장면들은, 역설적으로 박정희 독재와 전두환 군사정권 당시에 남한이 달성하였던 고도성장의 혜택을, 아울러 성실하기만 하면 개천서도 용이 나올 수 있던 시절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저성장의 늪에 빠져 사회구조가 점점 고착되어 가는 남한 경제의 현 상태에서는 그런 성공담 자체가 점점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어 영화 보는 내내 비감하였었다.

아울러 수꼴(쿨럭;)로서, 영화 중 중요하게 다뤄지는, 에드워드 핼릿 카(이하 E. 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몇 마디 안 할 수는 없을 것 같다ㅋ 그가 영화에 나왔던 것처럼 영국 외교관이었고 역사학의 입문서로 여겨지는 위 책을 비롯해서 역사학국제정치학에 관한 훌륭한 저서들을 남긴 빼어난 학자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E. H. Carr는 친소(親蘇)적 시각에서 볼셰비키 혁명과 소련을 바라 본 학자인 것도 분명하다. 일견 무색무취해 보이는 그의 강연록인 [역사란 무엇인가?]에서조차 그는 분명히 미국과 서구의 자유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칼 포퍼가 매섭게 비판했던, 이른바 역사주의라는 입장을 고집하면서 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의 주장에 분명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영화 [변호인] 속에서 '순수한 대학생들의 독서모임'에서 읽혀진 것으로 나온 리영희 교수나 강만길 교수의 책들 역시, 리영희 교수의 책들은 중국의 공산독재자 모택동의 미치광이 행태였던 '문화대혁명'을 옹호한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강만길 교수의 책들 역시 대한민국을 부정적이고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았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만은 않은 책이다.

영화 [변호인]은 선악구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그런 스탠스를 취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80년대 운동권들이 북한의 주체사상과 마르크시즘에 경도되었음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며, 결국 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판단을 내린 통진당 사태가 보여주듯이 순수하고 도덕적 운동권/깨어 있는 시민과 오로지 악으로만 이루어진 정권이라는 이분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복합적인 세상이기도 하다. 이는 이미 80년대 당시에도 그랬으며 민주화가 된 후 4반세기가 넘은 지금은 더욱 강화된 경향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수꼴스런 시각이 80년대 운동권이나 영화 [변호인]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알려진 구체적 부림사건에서 저질러진, 그 어떤 기준으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적나라한 '고문과 용공 조작의 기술자들'의 죄상들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고.

영화 캐릭터들 중에서 배우 송강호님이나 김영애님이 연기한 역들에 대해서는 너무 압도되었는지라 사실 이런 인터넷 구석의 익명 계정 따위가 감히 언급할 주제는 아닐 것 같고, 주인공의 선배 변호사역으로 나온 분에 대해서 우선 몇 마디 끄적거리기로 한다.

아마도 이 변호사님의 캐릭터는 당시 부산 지역 인권 변호사들의 좌장격이었던 김광일 변호사님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싶다. 실제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말은 안 해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분을 인권변호의 세계로, 그리고 나중에는 정계 입문으로까지 이끈 이 김광일 변호사님은 나중에 김영삼 정부 말기에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기도 했다. 사실 무죄를 받아낼 수 없었던 어려운 싸움을 계속 이끌며,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 같은, 어찌 보면 조악한 정의감으로만 가득 찼었던 소장파 변호사들을 잘 인도하신 분이 아닐까 싶다.

꼭 나왔어야 하나 나오지 않은(응?) 제일 아쉬운 캐릭터(뭐래니?)는 실제 사건에서 주인공과 같이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했던 다른 변호사님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가 영화에도 나오듯이 다혈질 성향인 것에 비해서 이분은(웃음) 김광일 변호사님의 회고에 의하더라도 훨씬 진중했고 주인공보다 훨씬 치밀한 법률이론으로 잘 무장했으며 성실성도 남달랐다고 한다. 특히나 영화 마지막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의 경우에는 실제 사건에서 주인공과 같이 법률사무소에서 일했던 이분이 주변 분들을 열심히 설득하고 발벗고 뛰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불가능했었을 일로 알고 있다.

역덕 워너비로서 말하자면 [초한지]에서 황제 유방 옆에서 관중을 튼튼히 지키며 든든한 보급을 해 주었고, 나중에 400년을 간 한(漢)나라 승상이 된 소하, 아니면 [삼국지 연의]에서 조조가 그의 기반인 연주를 송두리째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을 때 3개성을 지켜낼 무렵의 순욱 같은 분이셨다고 할 수 있지 않을지(그런데 왜 지금 당은 그렇게 운영하셔서, 쿨럭;). 영화적 재미를 위한 구성의 단순화, 그리고 어쩌면 복잡한 정치적 상황(응?) 때문에 송우석 변호사님 말고 또 한 분의 변호사님이 실제와는 달리 영화에 못나온 게 이해가 되면서도 이 영화 [변호인]에서 빠진 캐릭터가 못내 아쉬웠던 느낌적 느낌이다.

변호인 송우석과 그를 낳은 분명했던 시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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