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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돌파구의 조건

지난 정부는 4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 같은 토목과 개발 사업을 돌파구로 삼았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들은 모두 과거 패러다임의 산물이었다. 인적자원과 자본을 끌어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 정부는 창조경제라는 방향을 잡았지만,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채우지 못하고 있다. 때에 따라 정부 입장이 달라지고 있고, 정부 당국자의 말도 바뀌고 있다. 대통령은 중동이나 남미 순방을 통해 특정 지역에 대한 수출과 투자, 청년 취업을 경제적 돌파구로 제시하고 있다. 결국, 창조경제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합의할 무렵이면 정권이 끝나 버리는 비운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 김방희
  • 입력 2015.05.22 07:16
  • 수정 2016.05.22 14:12
ⓒ연합뉴스

내년 미국 대통령선거를 둘러싼 쟁점 가운데 하나는 1990년대에 대한 미국민의 평가다. 90년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다수는 이 시기를 1960년대 이후 최장의 호황으로 여긴다. 이 시각은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아내로,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에게 유리하다. 그녀는 중산층 재건과 소득 증가를 통해 90년대를 재연하겠다는 의지와 계획을 선보이고 있다. 물론 공화당 지지자들 가운데 일부는 90년대를 좋았던 옛 시절로 인정하지 않는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남는다. 90년대 미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더 구체적으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어떤 경제정책이 미국 경제를 20세기 최장의 호황으로 이끌었던 것일까? 희한하게도 마땅한 정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을 포함해 몇몇 정책이 떠오르긴 하지만, 딱히 미국 경제를 살릴 만한 정책은 없었다. 1930년대의 뉴딜정책이나 1980년대의 레이거노믹스 같은 시대적 처방은 없었다.

1980년대 미국은 제조업 분야에서 일본에 추월당해 위기론이 팽배했었다. 하지만 정보기술( IT)과 벤처기업(start-ups) 붐과 금융산업 성장을 통해 다시 세계 경제를 주도할 수 있게 됐다. 말하자면, 일종의 경제적 돌파구(economic breakthrough)를 마련한 셈이었다. 경제적 돌파구란 어떤 시기 해당 경제의 인력자원과 자본이 집중돼 성장을 주도하는 분야를 말한다. 외환위기 이후 제조업 중심 성장의 한계에 직면해 돌파구가 필요한 우리로서는 미국의 90년대에서 배울 점이 많다.

그렇다면 한 나라 경제가 경제적 돌파구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국가가 어떤 의미에서건 경쟁력 우위를 가지는 새로운 분야가 있어야 한다. 제조업에서 일본에 밀린 미국으로서는 첨단산업과 서비스 산업에 주목해야 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이 새로운 분야가 시대정신과 경제활동인구의 주축인 청년들의 관심사와 맞아 떨어져야 한다. 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비록 위험이 좀 따르더라도 가능성을 믿고 자신의 미래를 맡길 수 있어야 한다. 미 서해안 실리콘밸리에는 IT 산업의 잠재력을 믿는 젊은이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의 창업 열기가 미국 경제의 돌파구였다.

마지막으로, 모든 경제적 돌파구는 후유증을 낳는다. 당대건 후대건 어떤 식으로든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사람과 돈에 더해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는 필연적으로 거품이 쌓이게 마련이다. 1990년대 미국 인터넷 혁명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IT 벤처기업의 산실이었던 미국의 나스닥 시장은 2000년대 이후 거품이 꺼지면서, 가격이 70% 가까이 떨어진 적도 있다. 따라서 경제적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후유증에 대한 사전 준비와 관리가 필수적이다.

우리의 경우 역대 정부의 경제적 돌파구 전략은 이 세가지 조건에 모두 부합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지난 정부는 4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 같은 토목과 개발 사업을 돌파구로 삼았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들은 모두 과거 패러다임의 산물이었다. 인적자원과 자본을 끌어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 정부는 창조경제라는 방향을 잡았지만,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채우지 못하고 있다. 때에 따라 정부 입장이 달라지고 있고, 정부 당국자의 말도 바뀌고 있다. 대통령은 중동이나 남미 순방을 통해 특정 지역에 대한 수출과 투자, 청년 취업을 경제적 돌파구로 제시하고 있다. 결국, 창조경제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합의할 무렵이면 정권이 끝나 버리는 비운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안타까운 것은 이미 우리 경제라는 텃밭에서 싹이 트고 있는 경제 돌파구를 보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뛰어들고 있는 K-팝, 대중문화, 게임, 애니메이션, 패션, 디자인 등이 좋은 예다. 이 분야는 주로 창의적 두뇌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의미에서 창의산업(creative industry)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잠재력 일부만 보여준 한류를 확대하는 것이 창의산업 육성 전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정부는 이미 튼 싹은 보지 못하고, 새 불모지만 부지런히 찾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 이 글은 경인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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