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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22일 11시 2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5월 22일 14시 12분 KST

여민지의 아픔은 어른들 때문이다

여자 대표팀 연습 경기 도중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져 6월 열리는 2015 캐나다 월드컵에 출전할 수 없게 된 여민지(22)의 불행은 어른들의 욕심 때문이라고 봅니다. 여자축구에 열정을 기울여왔던 김대길 축구해설위원도 비슷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는 "여민지가 2010년 트리니다드 토바고 17살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돌아온 시점이 9월 말이었다. 당시 여민지는 경기장에서 절뚝거릴 때도 있을 정도로 몸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이런 저런 행사에 다녀야했고, 보름도 안 돼 10월 전국체전에 나가야 했다. 한참 몸을 관리하고 쉬어야 할 시점에 그게 말이 되느냐"라며 격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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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가을 경남 진주가 생각납니다. 당시 진주 등 경남 도내 일대에서 전국체전이 열렸는데, 해외동포 축구단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에 갔던 일이 생각납니다. 전국체전이라는 것이 기록경기라기보다는 지자체끼리의 순위 경쟁이어서 단체장의 입김이 많이 작용합니다. 당시 17살 이하 여자축구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던 여민지 선수가 함안대산고 선수로 출전했는데, 저는 직접 취재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전국체전이라니까 경남을 대표해 출전을 했겠다고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옛 기사를 검색해보니 '대산고 여민지의 골로 현대정보고를 1-0으로 누르고 여고부 결승 진출'이라는 기사와 사진이 있네요. 사진을 보면 오른쪽 무릎 언저리에 압박용 테이프를 감고 있는 게 보입니다.

여민지가 2010년 10월 함안스포츠타운에서 열린 제91회 전국체전 축구 여고부 결승전에서 뛰고 있다.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스스로 반성의 마음이 들고 미안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민지가 테이프 감고 뛰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지만 저는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마 지도자들이나 축구인들, 교장 선생님이나 지자체 단체장, 심지어 정부 체육관계자도 마찬가지였겠죠. 선수들의 몸 상태가 어떻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힘들게 훈련하든 관심이 없습니다. 부상을 입어도 선수니까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여자 대표팀 연습 경기 도중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져 6월 열리는 2015 캐나다 월드컵에 출전할 수 없게 된 여민지(22)의 불행은 어른들의 욕심 때문이라고 봅니다. 여자축구에 열정을 기울여왔던 김대길 축구해설위원도 비슷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는 "여민지가 2010년 트리니다드 토바고 17살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돌아온 시점이 9월 말이었다. 당시 여민지는 경기장에서 절뚝거릴 때도 있을 정도로 몸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이런 저런 행사에 다녀야했고, 보름도 안 돼 10월 전국체전에 나가야 했다. 한참 몸을 관리하고 쉬어야 할 시점에 그게 말이 되느냐"라며 격앙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여민지가 등장하니까 좋았겠죠. 흥행이 된 것이죠. 그런데 그것이 "세계가 두려워할 선수"를 정작 전성기 나이에 부상의 고통에 시달리게 만든 원인이 된 것은 아닐까요.

여자 축구 선수들은 남자보다 근육이 약하다고 합니다. 축구는 운동 특성상 갑자기 멈춰서거나 순간적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그때 발목과 무릎에 큰 부담이 갑니다. 과거 맨땅이나 콘크리트와 비슷할 정도로 솔이 닳아빠진 인조잔디 경기장에서 뛰던 여자 선수들이 부상으로 실려 나가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적 압박을 받는 지도자들이 아이들을 몰아붙이던 시절의 풍경입니다.

그런 것들은 장기적으로 선수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수원시설관리공단의 이장미(30)나 대교의 차연희(29) 등은 지금이라도 대표팀의 중추가 돼 공격력을 배가시킬 수 있는 노련한 자원이지만 고질적인 부상으로 발탁되지도 못했습니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우리나라 학원 운동부의 승부 지상주의가 문제다. 학교 때부터 너무 승부욕에 치우쳐 있다보니 선수를 혹사하게 되고, 결국 중요한 순간에 활약해야 할 인재가 뛰지를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민지가 소속돼 있는 대전스포츠토토에는 손종석 감독이 있습니다. 남자 대학팀 등에서 지도력을 인정받은 지장 스타일입니다. 손 감독은 2013년말 울산과학대를 졸업하게 된 여민지를 선발합니다. 대학 2년 동안 여민지는 부상을 몸에 달고 살았기 때문에 경기에 많이 나가지 못했습니다. 한 동안 여민지 소식이 뜸했던 이유입니다.

손 감독이 발탁할 당시에도 몸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가능성과 잠재력을 알기에 여민지를 데려와 지난해 내내 몸을 만들도록 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손종석 감독은 "민지가 자꾸 경기에 나가서 몸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최대한 자제 시키면서 몸을 추슬렀다. 몸상태가 많이 올라와 올해는 대표팀에도 뽑혔는데 또 부상을 당했다"며 망연자실했습니다. 만약 대표팀에 뽑히지 않고 몸을 더 추슬렀다면.... 이런 부질없는 생각도 해봅니다.

5월 27~28일께 수술을 받는 여민지는 치료와 재활 기간을 고려할 때 사실상 올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2010년 17살 아시아여자축구대회 최우수 선수, 17살 여자월드컵 최우수 선수가 됐던 여민지는 6월 열리는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을 재활하면서 봐야 합니다. 그게 모두 여민지 선수의 잘못일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철저하게 회복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시점에 무리하게 경기에 나가도록 하면서 완전히 망가뜨렸다. 그때의 후유증이 결정적이다. 지소연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선수를 우리가 망쳤다. 지도자들이 반성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습니다. 손종석 스포츠토토 감독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과거엔 어린 선수들을 체계적인 훈련보다는 일주일 내내 경기에 내보내는 식으로 혹사한 측면이 있다.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이 이제는 이기는 선수가 아니라 오래 뛸 수 있는 선수를 키우기 위해 과학적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지도자뿐만 아니라 선수 희생의 과실만을 누려온 모든 어른들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민지는 2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에서 "오뚝이처럼 일어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영리하고 공 잘 차는 그가 성공적인 재활로 내년에는 펄펄 날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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