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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성, 17년만에 발굴조사한다(사진)

  • 박수진
  • 입력 2015.05.21 06:37
  • 수정 2015.05.21 06:38

*논란

책계왕 원년(286)에 백제가 고구려 침공에 대비해 고쳐 쌓았으며, 백제 개로왕 21년(475)에는 장수왕이 이끄는 고구려 3만 대군에 포로가 된 백제 개로왕이 그 아래서 무참히 참수된 곳은 모두 아차성(阿且城)이다.

이 아차성이 지금의 어디인지 논란이 없지는 않으나 서울 광진구 아차산성이라는 데는 학계가 대체로 일치한다.

하지만 아차산성은 간헐적인 발굴조사 결과 적어도 현재까지는 신라가 쌓은 흔적만 농후하게 관찰된다. 그런 간헐적인 발굴조사에 관여한 고고학자들은 아차산성을 처음으로 쌓은 정치세력은 물론 신라라고 확신한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의문의 시각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당시까지 발굴조사 수준을 믿지 못하는 분위기 역시 만만찮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을 풀어줄지도 모르는 발굴조사가 착수된다.

광진구(구청장 김기동)는 국비 70%, 구비 30%로 구성되는 예산 2억9천281만원을 들여 아차산성 발굴조사에 조만간 착수키로 하고 21일 현재 조사단 선정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최근 3년 내 성곽 발굴조사 경험이 있는 발굴조사기관은 응찰이 가능하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한강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한 '아차산성 종합정비 기본계획' 용역 결과에 바탕을 둔 조치다. 이에 의거해 광진구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이미 성벽 내·외부에 대한 수목 정비를 진행하고, 다음달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우선 올해 조사할 대상지는 광장동 5-11 일대 1천600㎡ 면적으로, 이곳은 SK네트웍스 ㈜워커힐 소유 사유지다. 이곳은 아차산성 남문(南門)과 성벽 안에서 흘러내린 물을 밖으로 빼내는 시설인 배수구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광진구 관계자는 "1960~70년대 워커힐호텔과 아파트 급수시설을 만들면서 이 일대 성벽이 많이 훼손된 데다 원래의 성벽 배수구 내·외부가 호텔 공사 이전에 이미 흙으로 덮여 내부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는 곳"이라며 "따라서 올해 조사에서는 무엇보다 이곳을 발굴해 이 일대에 매몰된 성벽과 구조물을 확인하고 그에 따라 배수구 공사를 위한 실시설계 및 공사를 연차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올해 발굴조사는 조사비와 조사대상지 규모가 적기는 하지만 아차산성이 한국고대사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워낙 큰 데다 연차사업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산성 발굴 경험이 있는 발굴 조사기관들은 어디나 욕심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차산성은 1973년 사적 234호로 지정됐다. 아차산이 한강을 향해 동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을 감싼 이른바 포곡식(抱谷式) 산성인 아차성은 성벽 총둘레가 1천43m다. 이곳이 바로 삼국시대 아차성, 혹은 그것과 글자가 비슷한 아단성(阿旦城)이라면 삼국사기에 의해 이미 책계왕 이전에 백제가 쌓은 셈이 되지만 현재까지 이곳에서 백제의 흔적이 제대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서북측 성벽에 대한 복원공사를 앞두고 1997년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명지대 한국건축문화연구소가 시굴조사를 하고 1999년에는 서울대박물관이 성벽과 성 내부 주요지점에 대한 시굴조사를 벌인 결과 전형적인 백제 토기인 삼족기(三足器) 한 점을 수습하기는 했지만 신라가 처음 쌓은 성벽과 관련 유물만 확인됐다. 따라서 올해 시작하는 발굴조사가 어떠한 성과를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아차산성 건너편에는 한성도읍기 백제 왕성임이 확실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그리고 이 시대 백제 왕가의 공동묘지임이 분명한 석촌동 고분군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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