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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외국인 노숙자의 쓸쓸한 죽음

  • 김병철
  • 입력 2015.05.20 05:58
  • 수정 2015.05.20 05:59
ⓒGetty Images/Flickr RF

서울역 지하보도에서 노숙인들이 잠을 청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저녁 서울 지하철 1호선 서울역 2번 출구. 근처 화단에 홀로 앉아 시간을 보내던 한 노숙인이 다른 노숙인들이 남기고 간 막걸리통을 입에 대고 털었다. 그리고 몇시간 뒤 이 노숙인은 숨진 채 발견됐다. 주머니에서는 카자흐스탄 여권과 국제전화 수신기록만 남은 휴대전화가 발견됐다.

이 노숙인은 카자흐스탄 국적의 고려인 3세 염아무개(53)씨로 확인됐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19일 “부검 결과 만성 알코올중독에 따른 간경화로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은 카자흐스탄 영사관을 통해 염씨 가족을 수소문했다. 보름 뒤인 지난 7일 염씨의 딸(29)이 작은 유골함을 들고 한국 땅을 밟았다.

경찰의 요청을 받은 노숙인 지원단체 한사랑공동체와 홈리스행동, 무연고자 장례를 대신 치러주는 ‘나눔과 나눔’이 지난 10일 장례를 도왔다. 강제이주 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삶터를 옮긴 한국인의 후손은 조상의 땅과 그렇게 쓸쓸히 작별해야 했다.

염씨는 어쩌다 노숙인이 됐을까. 염씨의 딸은 ‘나눔과 나눔’ 쪽에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카자흐스탄에서 역사 교사로 일했다”고 전했다. 염씨는 2010년 5년짜리 비자를 받아 한국에 입국했다. 그가 외국인 거소등록을 한 곳은 서울 성동구의 한 모텔이다.

의료기기 제조업체에서 일했던 그는 2년 전쯤 카자흐스탄으로 잠시 돌아갔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다. 성치 않은 몸으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후유증 탓에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0일 염씨는 서울 대방동에서 노숙을 하다 경찰에 발견됐다. 당시 서울역 다시서기센터에서 상담을 받았지만, 염씨는 센터가 제공하는 의료·피복 지원 등을 거부했다고 한다.

외국인 노숙인 지원 단체를 소개해주려고 했지만, 염씨는 이마저도 “괜찮다”고 한 뒤 센터를 나섰다. 숨지기 닷새 전 염씨를 만난 사회복지사가 “밥은 먹었느냐”고 묻자, 염씨는 “밥을 목으로 넘기지 못해 밥 대신 막걸리를 마신다”고 했다고 한다.

서울시는 지난 3월 외국인 노숙자들에 대한 대략적인 실태조사를 벌였다. 파악된 외국인 노숙자 20명 가운데 절반이 중국동포였다. ‘백인’ 노숙인 3명의 존재도 확인됐다.

서울시는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외모가 한국인과 비슷한 경우 내국인 노숙인과 동일하게 일시보호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응급 쪽방’ 등에서 기거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당사자가 원할 경우 대사관 등을 통해 출국 절차를 돕는다는 방침도 세웠다.

노숙인·이주민 지원단체들은 실제 외국인 노숙인 수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거리 상담활동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종만 다시서기센터 실장은 “외국인의 경우 의사소통 문제로 상담이 이뤄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나마 파악된 외국인 노숙인의 90% 정도는 한국에 일하러 왔다가 신체적 어려움 등으로 노숙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때문에 지원단체들은 민간 차원의 도움 외에 정부의 관심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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