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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그날마다 온다.

때때로 '폭도'란 식의 무지한 언변을 뱉어내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건 그들을 탓해봤자 무력해지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건 내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그 이야기가 서울에선 손쉽게 생소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끔찍한 역사를 안고 사는 사람들의 영토가 있다는 것, 억울했다. 화가 났다. 슬펐다. 달랠 길이 없었다. <소년이 온다>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을 보고 목격해주길 바란다. 그 벽 앞에 서주길 바란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5월18일이 통감할 수 역사가 되길 바란다.

  • 민용준
  • 입력 2015.05.19 14:35
  • 수정 2016.05.19 14:12

<소년이 온다>를 이제야 읽었다. 읽어 내려가며 속도가 붙으니 멈출 수가 없었다. 마음 속에 앉았던 서리가 천불이 나서 죄다 녹고 증발하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 나서 책장의 끝에 다다르니 마음 아래 수북하게 재 같은 감상이 쌓여서 날렸다. 마음 한 구석에 시리게 얼어붙던 서러움과 억울함의 결정이 끝내 뜨겁게 타버린 재의 형상으로 흩날려버릴 것 같아 무엇이라도 써서 기록하고 싶었다.

5월 18일은 문득 잊고 살다가도 그 날이 오면 되새길 수밖에 없는 그런 날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유년시절 부모님을 따라 내려간 광주에서 초, 중, 고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에 처음 들었던 전라도 사투리는 지금도 선명하다. "아따, 너 말 이상하게 한다잉." 나는 표준어를 쓰는 이방인이었다. 어쨌든 그 친구들은 나와 함께 자랐고, 나 역시 조금씩 사투리가 점차 자연스러워졌을 무렵이 된 중학교 1학년 시절, 5.18을 보게 됐다. 유치원, 여중, 남중, 여고, 남고, 전문대까지,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꽤나 커다란 학원에 속해 있었고 우리는 종종 350원짜리 육개장 컵라면과 150원짜리 자판기 음료수를 사먹기 위해서 대학교 매점을 드나들었다. 그날도 어느 날과 같이 대학교 매점에 들어섰다. 그리고 벽을 봤다. 그날은 5월 18일이었다.

어쩌면 얼굴이었으리라. 그러니까 그건 얼굴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는 폭력의 흔적들이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벽을 메우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검지를 엄지손가락에 대고 둥글게 말았을 때만큼의 크기의 사진들이었는데 내 키만큼 높고, 열 걸음쯤 옮겼을 때 끝에 닿을 만큼 넓게 상하좌우로 쭉 나열돼 있었다. 일그러지고 뭉개진 형상들마다 한때 누군가의 체온이 돌고 감정을 담았을 얼굴의 잔상이 미세하게 남아있었다. 그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살벌한 예감에 뒷골이 서늘해진다는 말을 체감했다. "아, 글쎄. 사람을 탱크로 밀어버렸당께!" 이미 귓바퀴를 돌아 들어와 흩어졌던 어느 노인의 언성이 메아리처럼 가슴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들이 좀처럼 흩어지지 못하는 연기처럼 매캐하다고 느꼈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원망에는 굴뚝이 없었다. 그래서 아마 노인의 삶도 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에게도 아궁이가 생겼다. 5월 18일에 대해 뚜렷하게 자각하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겪어보지 못한 내게도 그것은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의문이 됐다. 대체 왜 그랬을까?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1980년 5월 29일 망월동에서 진행된 장례식. (5.18기념재단)

어린 시절 매년 5월 즈음이 되면 광주 곳곳에선 최루탄이 터졌다. 충장로나 금남로 시내에서 터진 최루탄 냄새가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두암동의 우리 아파트 창문까지 와 닿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 주변을 지나기라도 한다면 목을 켁켁거리기 일쑤였지만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연례행사 같은 것이라서 되레 그런 기억이 과거형으로 저물어 아득해졌음을 문득 체감했을 땐 그렇게 됐음이 되레 생소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20대가 되어 광주를 떠나 서울로 다시 올라왔을 무렵에 5.18에 관한 사회적 인식은 조금 변한 것도 같았지만 여전히 노인은 굴뚝을 찾지 못했을 것 같았다. 때때로 '폭도'란 식의 무지한 언변을 뱉어내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건 그들을 탓해봤자 무력해지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건 내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그 이야기가 서울에선 손쉽게 생소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끔찍한 역사를 안고 사는 사람들의 영토가 있다는 것, 억울했다. 화가 났다. 슬펐다. 달랠 길이 없었다. 굴뚝이 없는 아궁이처럼 타 들어가는 속을 안고 그 시절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는 이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내가 마주했던 중학교 1학년 시절의 그 벽을 떠올렸다. 누군가에겐 이 소설이 그 벽과 같은 체험이리라. 물론 누군가에게 이 소설은 그저 끔찍하고 과장된 비극적 허구이리라. 하지만 권력의 첨탑 아래 짓뭉개진 얼굴의 반석 위에서 우린 서있고, 살아있다. 살고 있다. 살아서 살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나는 나의 무력감과 비루함을 연신 체감하고 되삼켰다. 만약 내가 그 시절에 태어나 광주에 있었다면 과연 나는 총을 메고 누군가를 대신해 내 목숨을 바쳐 순수한 양심을 헌화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기꺼이 행동할 수 있었을까. 나의 양심은 과연 광주에 있었던 그 도청에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시대적 불의에 저항했다고 평가되는 누군가일 수 있었을까. 나는 대답할 수가 없다. 대답할 수 없어서 고통스러웠다. 여전히 끔찍한 역사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고, 뭉개진 얼굴들은 위로를 얻지 못한 채 그 벽 위에 서있다. 나는 여전히 그 벽 앞에 서있다. 5월 18일은 내년에도 올 것이다. 그리고 또 지나갈 것이다. 아마도 나는 그 벽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미안하고 불안하기만 한 양심으로 그 벽 앞을 맴돌다 다시 한번 뒤돌아 서서 모른 체 1년을 보낼 것이다. 벌써부터 무력해진 마음이 타 들어간다. 연기가 자욱하다.

<소년이 온다>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을 보고 목격해주길 바란다. 그 벽 앞에 서주길 바란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5월18일이 통감할 수 역사가 되길 바란다. 사람이 죽었다. 그날 사람을 죽였고, 사람이 죽었다. 그것을 함께 슬퍼하고 분노했으면 좋겠다. 왜 그랬을까?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그 벽 앞에서, 함께 묻고, 함께 화를 내줄,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어찌해도 그럴 순 없는 일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 어찌할 수 없는 물음을 던지며 살아가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산 자의 몫은 보다 확실하게 자리를 지키고, 산 자들의 삶은 더욱 살아갈 만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럼으로 하여금 각자의 눈과 입과 귀로서, 비단 5.18이 아니라 이 세계에 끼얹어지는 뜨거운 물 같은 폭력으로 남은 화상 같은 상처들을 보고, 말하고, 들을 수 있길, 그리해야 한다고 믿길 기도한다. 5.18은 우리를 위하는 그들의 몸이었으니 우리는 그것을 행하여 5.18을 기념해야 한다. 그것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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