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현직판사 "아동 성범죄 합의했다고 감형 안 된다"

ⓒShutterstock / Lisa S.

50대 남성 A씨는 2년 전 인적이 드문 길을 지나다 심부름 가던 중학생인 B양을 발견했다.

A씨는 B양의 뒤로 다가가 목을 조르고 입을 막은 뒤 근처 빈집으로 데리고 가 성폭행했다.

아동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A씨가 B양 측과 합의해 B양 측에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했고, 상당한 돈을 공탁금으로 냈다면 감형요인으로 고려해야 할까.

법원 내 아동 및 소수자 권익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젠더법연구회가 형사합의사건을 담당했던 판사 50명에게 물어본 결과 처벌불원 의사는 50명 모두, 공탁금은 36명이 감형요소로 삼아야 한다고 답했다.

현행법 체계에서는 범죄피해자가 민사 배상을 받기 어려운데 상당한 금액이 공탁됐다면 금전적으로나마 피해가 위자 됐다고 봐야 한다거나, 성폭력범죄 처벌은 피해자 의사가 존중돼야 한다는 게 근거였다.

이처럼 재판은 물론 대법원 양형 기준에서도 합의나 공탁을 감형요소로 삼고 있지만,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서 이를 곧바로 감형요소로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현직 판사의 논문이 나와 관심을 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진화 대전지법 천안지원 부장판사는 '합의와 공탁이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의 양형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최근 논문에서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에서는 합의했으니 감형돼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 부장판사는 젠더법연구회 조사 결과를 두고 "근본적으로 합의나 공탁으로 성폭력 범죄가 전부 또는 일부라도 회복됐다는 판단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성인과 같이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 부장판사는 "성폭력 범죄를 당한 아동·청소년의 피해는 계량할 수 없는 정도에 그치지 않으며, 회복될 수 없는 성질의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혼 살인' 혹은 '인격 살인'으로 표현될 만큼 심각한 정서적 충격을 남기며, 아동·청소년이 성장하면서 신체적·정신적 고통이 더 심각해지거나 성인이 되어서야 피해의 심각성을 깨닫는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 부장판사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지위가 불균등해 합의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 만큼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하고 합의에 이르게 된 시기와 경위, 피해자가 이에 응하게 된 과정 전반을 심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공탁도 합의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는가에 대한 심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