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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과 2013년 제주 강정 앞바다 모습(사진, 동영상)

ⓒ녹색연합

▶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구럼비바위’를 발파하고 본격적인 해상공사를 시작한 뒤 3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아름다웠던 강정 앞바다 한가운데를 방파제가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강정 앞바다는 한국의 대표적인 연산호 군락지역입니다. 바닷속 연산호 건강 상태가 궁금했습니다. 연산호 군락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녹색연합’ 조사단을 따라 바닷속에 직접 들어가 보았습니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했다. 한라산은 손에 잡힐 정도로 가깝고 낮은 파도가 출렁였다. 이렇게 잔잔한 바다를 다이버들은 ‘장판’이라고 부른다. 지난 7일 오전, 배는 장판 위에서 미끄러지듯 제주도 서귀포시 법환포구를 빠져나왔다. 강정 앞바다에는 크레인들이 삐죽삐죽 올라와 있고, 해변에는 거대한 테트라포드가 산을 이뤘다.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를 제주해군기지 공사로 만들어진 방파제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주변 바지선에는 방파제를 구성하는 케이슨(상자 모양의 철근콘크리트물)을 채울 골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차곡차곡 들어선 괴물 같은 구조물로 이제 강정 앞바다는 자연미를 잃었다. 바닷속은 예전부터 빼어난 연산호 군락으로 다이버들의 발길을 모으는 곳이었다. 산호들의 꽃밭이 펼쳐진 바닷속은 안녕할까.

김명진 기자가 직접 제주 강정 앞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91447.html

Posted by 한겨레 on 2015년 5월 15일 금요일

조류, 산호 꽃밭에 부는 바람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인한 연산호 군락의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2007년부터 생태조사를 벌이고 있는 환경단체 녹색연합의 조사에 동행했다. 지난해부터는 방파제 건설로 직접적인 영향이 예상되는 강정등대, 서건도 주변 바다를 모니터링하면서, 대조군으로 공사 영향이 비교적 미미할 것으로 보이는 기차바위, 범섬도 조사하고 있다.

서귀포시 강정의 제주해군기지 공사 현장 주변에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연산호 군락이 펼쳐져 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호지역(2002년 12월), 천연기념물 제421호 문섬·범섬 천연보호구역(2000년 7월), 천연기념물 제422호 제주 연안 연산호 군락(2004년 12월) 등 7개 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2009년 송준임 이화여대 교수팀은 서귀포시의 의뢰로 서귀포 연안 연산호 실태를 조사했다. 송준임 교수팀은 ‘천연기념물 제422호 제주 연안 연산호 군락 산호 분포 조사 통합보고서’에서 섶섬, 문섬, 범섬으로 이어지는 연산호 군락은 서귀포 강정마을과 법환마을 그리고 범섬 사이의 ‘산호정원’에서 정점을 이룬다고 밝혔다. 연산호 군락은 산호정원에서 다시 서건도, 강정등대를 거쳐 서쪽 안덕면 화순리와 송악산 일대 앞바다로 펼쳐진다. 그러나 기차처럼 이어진 연산호의 꽃밭은 강정에서 끊긴다. 서건도와 강정등대 사이에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방파제가 생기면서부터다.

지난 8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 강정 앞바다에서 제주해군기지 방파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녹색연합 조사팀의 첫 번째 다이빙 장소는 제주해군기지 서방파제에서 180여m 떨어진 강정등대 주변 바다다. 연산호가 바닷속 수직벽에 꽃밭처럼 퍼진 지역이다. 해양조사팀을 책임진 김진수 제주해마다이빙 대표의 신호에 따라 한 사람씩 바다에 입수했다. 네 명이 한 조다. 유일한 여성 다이버인 강정지킴이 쵱혱영(별명)씨는 가로세로 50㎝ 사각형 모양의 방형구(동식물 분포 조사용으로 쓰는 네모꼴 표지)를 가져왔다. 연산호 군락에 대고 일정한 면적으로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서다. 기자도 바다에 뛰어들었다.

배 위에선 깨끗해 보였지만, 막상 입수하니 물이 탁해 바닥이 안 보인다. 부력조절기(BCD)의 공기를 빼고 하강을 시작한다. 10여m를 내려가 바닥에 닿았다. 김진수 대표가 지난해 연산호를 조사한 지점을 익숙하게 찾아간다.

지난 조사에서 쇠말뚝으로 표시한 장소에 도착하자, 강정지킴이 하쿠(별명)씨가 양쪽 쇠말뚝을 길이 10m의 줄로 연결한다. 쵱혱영씨가 방형구를 줄 위에 대면, 김 대표가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10m 줄을 따라 20여장의 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해마다 같은 장소에서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을 남긴다. 일정한 면적을 덮고 있는 연산호의 피복도(특정 공간을 덮은 면적)의 증감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제주해군기지로 인한 연산호 서식 실태 변화 조사팀이 지난 8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 강정 앞바다 서건도에서 연산호 군락 조사를 하고 있다. 부유물로 시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가까운 벽의 표면도 확인하기 힘들다.

탁한 물 때문에 시야는 5m 안팎. 바닷속은 고요하다. 조류도 느껴지지 않는다. 입수하기 전까지만 해도 2년 전 서귀포시 앞바다 문섬에서 다이빙을 배울 때 마주한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등 다양한 색깔의 연산호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연산호는 없었다. 절벽에 몸을 가까이 붙이자 그제야 작은 연산호만 듬성듬성 눈에 띄었을 뿐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잔뜩 몸을 움츠린 동물 같았다.

연산호는 부드러운 겉면과 유연한 줄기 구조를 갖춘 산호를 통틀어 말한다. 바닷속을 떠다니는 입자성 유기물이나 플랑크톤을 폴립(촉수)으로 잡아먹는다. 이 때문에 물의 흐름이 막힌 곳에서는 연산호가 살 수 없다.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진행된 뒤의 강정등대가 대표적인 경우다. 연산호 군락이 있는 수직벽에서 물의 흐름을 느낄 수 없었다. 김진수 대표는 “방파제 공사로 물 흐름이 막힌 강정등대 밑 산호 개체수는 50% 이상 줄었다. 고인 물에서 연산호가 점점 고사하고 있고, 아직 살아 있는 연산호도 배불리 먹지 못하니 성장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조사팀을 따라다니는데 몸이 갑자기 떠올랐다. 부력 조절 실패였다. 부력조절기의 공기를 빼려고 시도했지만 빠지지 않았다. 몸이 뜰수록 상승 속도도 빨라졌다. 다이빙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이다. 어떻게든 다시 하강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속절없이 떠올랐다. 일정 높이까지 올라오자 갑자기 몸이 한쪽 방향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빠른 조류가 몸을 잡아챘다. 상승하면서 한쪽 벽을 막고 있는 절벽이 없어지자 조류의 흐름이 강력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제주해군기지 인근 서건도 바닷속 수직벽에 가로세로 50㎝ 사각형 모양의 방형구를 대고 기록한 사진.

배에 돌아가기 위해 핀(오리발)을 차도 쉽게 가까워지지 않았다. 조류에 허우적거리는 기자를 보고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에 오를 땐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김 대표가 말했다.

“김 기자가 경험한 것이 현재 강정등대 밑 바다의 상황이야. 연산호가 서식하는 깊이 9m 이하 바닷속에 원래 있던 해저절벽과 새로 생긴 해군기지 방파제가 양쪽으로 막아서 조류의 흐름이 완전히 차단됐어. 죽은 바다가 돼버린 거지. 하지만 몸이 수면 위로 떠오르니까 조류의 흐름이 느껴졌지? 원래 있던 강정등대 밑 바위가 막고 있던 부분 위로 올라오니까 수면에서는 조류의 흐름이 나타난 거야.”

해군기지 공사로 표변한 조류의 흐름을 ‘죽음을 걸고’ 체험한 순간이었다.

“마스크 없이 황사에 입 벌리는 것” 

이튿날 오전에는 서건도 조사를 나갔다. 제주해군기지 동방파제에서 600여m 떨어져 있다. 조사는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닻을 내린 줄을 잡고 수심 10여m 깊이로 들어갔다. 바닷속 시야는 많은 부유물로 강정등대보다 더욱 좋지 않았다.

제주해군기지 인근 서건도에서 촬영한 분홍바다맨드라미 군락의 해군기지 공사 전인 2008년도 모습.

서건도의 대표적인 연산호 군락인 동굴에 이르렀다. 과거 동굴 주위를 가득 덮은 연산호는 상당수 사라지거나 매우 작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조사를 위해 다가간 수직벽에서 2~3m만 떨어져도 부유물 때문에 다이버들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모랫바닥에는 쇳가루, 시멘트 부유물로 추정되는 물질들이 쌓여 있었다. 2012년 녹색연합과 함께 강정 앞바다를 조사한 마이크로네시아 폰페이 해양연구소의 사이먼 엘리스 대표는 “침전물의 확산과 증가로 부유물이 연산호 위로 퇴적되고 있다. 산호초의 먹이활동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독성으로 인한 위협 요인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도 “연산호는 독성물질에 민감하다. 지금 상태는 황사가 심한 날씨에 사람이 마스크 없이 입을 벌리고 달리는 것과 같다. 플랑크톤이 입속에 들어와야 하는데 분진이 들어가고 있다”고 비유했다.

기차바위에 가서 추가조사를 마치고 법환포구로 들어왔다. 항구 한편에서 고깃배가 자리돔을 내리고 있다. 조사팀을 바다에 태우고 간 강용옥 선장이 말했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자리돔 떼가 어디로 지나가는지 다 알고 있었어. 근데 지금은 물 흐름이 다 바뀌어서 물고기 떼를 찾기가 힘들어졌지. 지금 자리돔이 한창때인데 잡는 게 예전 같지가 않아.”

본격적인 해상공사가 시작되고 2년이 지난 2014년도 모습. 동굴 입구를 가득 덮고 있던 연산호 개체수가 줄어든 게 육안으로도 확연하게 구분된다.

제주해군기지가 본격적인 해상공사에 들어간 지 3년이 지났다. 공사는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바다의 많은 것을 바꿔놓고 있다. 올해 말 기지가 완공되면 수만톤급의 배들이 기지를 드나들게 된다. 항로 주변 수백미터 안에는 연산호가 군락을 이룬 산호정원과 기차바위, 서건도, 범섬, 강정등대가 있다. 바다는 더 변할 것이다. 바닷속의 변화가 바다 위로 터져나올 때쯤에는 연산호 군락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을지도 모른다. 조사팀과 일정을 함께한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제주해군기지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 없지만, 공사 추진의 절차적 문제, 주민들과의 갈등, 해군이 일으킨 해양오염에 대한 백서라도 남겨야 한다.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책임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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