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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최초 개설 주장' 모에명수, 나는 왜 우울증에 걸린 뒤 소송까지 했나

  • 박수진
  • 입력 2015.05.15 15:46
  • 수정 2015.05.15 15:50
ⓒ한겨레

[토요판/커버스토리] 첫 직접 인터뷰

일베를 다룬 어떤 논문은 일베의 역사를 다루며 “갑자기 운영진이 바뀌었다”고 표현했다. 그 표현대로, ‘모에명수’는 어느 날 갑자기 일베 저장소는 물론 인터넷에서 사라졌다. 이상한 일이다. 논문이 서술한 대로 ‘모에명수’가 최초 개설자라면 그는 니찬네루를 만든 니시무라 히로유키처럼 행동하는 게 자연스럽다. 자신의 상표권이나 저작권을 돈을 받고 팔거나 그도 아니면 권리를 갖고 있는 게 이익이다. ‘모에명수’는 돈 되는 사이트를 버리고 잠적한 특이한 사이트 개발자인 셈이다.

자신이 ‘모에명수’라고 밝힌 ㄱ(22)씨는 자기가 만든 최초의 일베 저장소를 허락 없이 모방해 현재의 일베 사이트를 만들었다며 현재 일베 사이트의 최초 운영진으로 알려진 의사 박아무개씨와 이아무개씨를 상대로 1억여원을 배상하라며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어 현재 소송이 진행중이다.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소도 냈지만, 올해 초 검찰이 무혐의 결정했다. 올해 22살이 된 그는 만 16살인 고등학생 때 일베 저장소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ㄱ씨를 지난 11일 오후 현재 자택이 있는 지방 도시에서 만나 1시간 넘게 인터뷰했다. ‘모에명수’가 기자와 직접 만난 것은 처음이다. 그는 인적사항 공개나 사진 게재는 거절했다.

- 초기에 디시인사이드의 서버를 빌려 쓰다 디시 쪽의 항의 때문에 나중에 서버를 독립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베의 탄생 과정에 대한 이런 내용들이 사실인가?

“(서버를) 빌려서 쓰지 않았다.”

- 잘못 알려진 건가?

“그렇다.”

- 당신이 언제, 어떻게, 왜 최초로 일베를 만들었는지 설명해달라.

“그 당시(2009년)는 야구갤러리(야갤)가 굉장히 협소하고 작은 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코미디갤러리(코갤)가 굉장히 활동적이었고 디시에서 제일 잘나가는 갤러리였다. 당시 디시 갤러리 화면 오른쪽에 하루 동안 가장 인기있었던 게시물이 ‘일간베스트 게시물’ 이름으로 올라왔다. 그중에 삭제된 것들을 보존하려는 커뮤니티 목적으로 2009년 7월쯤에 내가 만들었다. ‘일베 저장소’라는 이름으로. 지금 일베는 ‘일간베스트 저장소’라고 하던데 내가 처음 만들었을 때는 그냥 ‘일베 저장소’였다. 그러다가 트래픽이 넘쳐서 서버를 샀다.”

- 서버를 샀다고?

“그렇다. 내가 만든 일베 저장소의 서버는 (디시와) 완전히 다른 거였다, 처음부터.”

- 서버는 어떤 서비스를 썼으며 서버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나?

“당시 한국 법의 규제를 피하려고 미국 회사에서 제공하는 서버를 빌려 썼다. 한달 10만원 정도 됐다. 그 뒤 옮겨다녔다. 서버를 사 2010년까지 계속 운영하다 수익이 가능한지 생각하기도 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사이트 디자인이나 구조에 대해 고민도 많이 했다. 당시 커뮤니티 사이트의 흐름이라든가. 트래픽이 늘었다. 사이트를 개선하고 업그레이드하려고 2010년 4월 잠시 닫았다. 그런데 한달쯤 뒤 어느 날 내가 만든 것처럼, 디시인사이드 일간베스트 게시물을 모아놓은 다른 ‘일베저장소’(ilbegarage)사이트가 생겼다. 영어로 일베개라지, 한국어로 일베저장소로 표기했다. ilbegarage.er.ro라는 도메인이었다. 닉네임 ‘새드’가 개설했더라. 그 사람은 내가 만든 일베 저장소에 ‘새드’라는 이름으로 게시글을 열심히 올리던 사람이었다. 자기가 만든 일베개라지를 디시에 ‘일베저장소’로 홍보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미 거기에 다 몰려가 있더라.”

ilgarageorbh

‘모에명수’ ㄱ씨는 자신이 2009년에 최초로 일베 저장소를 만들었고, 현재의 일베 사이트는 자신의 사이트를 모방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재판이 진행중이다. 위 부터 차례대로 ‘모에명수’ ㄱ씨가 ‘한겨레’에 제공한 자신의 2009년 ‘일베 저장소’ 화면 갈무리(위), ㄱ씨에 뒤이어 만들어진 ‘일베개라지’(ilbegarage)의 2010년 화면 갈무리, 미국의 비영리기구 아카이브닷오아르지의 2010년 ‘일베개라지’ 과거 사이트 화면이다. ‘2009년 버전 일베 저장소’ 및 ‘일베개라지’ 두 사이트 모두 실존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모방 행위가 있었느냐’가 법적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왜 그 당시에 법적 대응을 하지 않았나?

“그 사람이 만든 일베개라지에 찾아가서 채팅으로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따졌다. 답이 없었다. 나중에 나를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법적인 조처를 취하려면 부모님한테 알려야 하는데 말씀을 못 드렸다. 당시 제 딴에는 학업도 포기하고 아이티로 직업을 택하려 했는데 인생의 목표를 빼앗겨 우울증에 걸렸다. 한동안 일베 사이트와 관련 내용은 하나도 안 봤다. 힘들게 지내던 중에 내 것을 모방한 현재 일베 사이트 운영권이 12억원에 팔렸다는 기사를 우연히 봤다. 그걸 보고 화가 나서 소송을 준비하게 됐다.”

ㄱ씨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이 2009년 7월께 ilbe.co.cc라는 도메인으로 ‘일베 저장소’를 만들었다. 금세 인기를 끌어 2010년 2월께 일평균 방문자수가 8500~1만4000명에 달했다. 업그레이드를 위해 잠시 닫았다. 2010년 하반기 갑자기 ‘일베개라지’가 만들어졌다. 일베개라지가 몇차례의 디자인 개선과 업그레이드를 거쳐 지금의 일베가 됐다.

증오든 즐거움이든, 트래픽은 돈이 된다. 2013년 일베가 유명해졌다. 노아무개씨가 그해 5월 ‘일간베스트 저장소’라는 이름을 상표출원 신청했으나 특허청은 심사 끝에 거절 결정했다. ㄱ씨도 노씨처럼 일베와 상관없으면서 저작권·상표권을 노리고 소송을 냈다고 의심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ㄱ씨가 <한겨레>에 제공한 자신의 일베 저장소와 일베개라지 캡처 화면은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두 사이트 모두 실존한 것으로 보인다. ㄱ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른 정황 증거도 있다. 인터넷 기록을 수집·정리하는 미국의 비영리기구 ‘아카이브닷오아르지’(archive.org)는 사이트의 과거 모습을 제공한다. 이 사이트에서 ‘일베개라지’ 과거 모습이 확인된다. 2010년에 활발했던 일베개라지는 2011년부터 활동 기록이 사라진다. 도메인 ilbe.com인 현재의 일베가 자리잡은 시점과 일베개라지의 활동이 정지한 시점이 대략 일치한다.

다만 ‘모방 여부’가 법리적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본인이 ‘모에명수’인지 어떻게 확인시켜줄 수 있냐는 <한겨레>의 질문에 ㄱ씨는 과거 자신의 활동과 관련한 다양한 자료를 제공했다. 서버도 복원해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진술도 구체적이며 일관성이 있었다.

- 당신이 만든 일베 저장소와 지금 일간베스트 저장소가 다른가?

“많이 다르다. 제가 있을 땐 정치적인 글들이 관리가 됐는데 지금 일베 운영자들이 (과하게 정치적인 글을) 이용하는 것 같다. 추천·비추천 버튼도 산업화·민주화로 (현재 운영진이) 바꾼 거다. 내가 만든 일베 저장소는 산업화·민주화 버튼이 아니었다.”

- 당신이 만든 일베에도 ‘홍어’ ‘전땅크’ ‘보슬아치’ 같은 지역·여성 비하 용어나 파시즘을 찬양하는 표현이 있었나?

“전혀 없었다. 좀 야한 것이나 일반적인 욕설들이 들어간 글이었다. 가끔 내가 볼 때 애매한 이유로 삭제된 것도 있었고. 지금과 같이 정치적인 문화는 없었다.”

- 디시인사이드의 코미디갤러리, 야구갤러리, 정치사회갤러리(정사갤) 이용자들로부터 일베가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야갤 정자와 코갤 난자가 만나 태어났다’는 우스개도 있다. 지역 비하는 야갤에서 여성 비하는 코갤에서 왔다는 의견이 있던데.

“당시 야갤이 중요한 갤러리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홍어’ 용어 등 정치적 영향은 야갤보다 정치사회갤러리의 영향이라 생각한다.”

- 상당히 어린 나이에 게시판을 만들었다. 언제부터 웹이나 컴퓨터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

“초등학생 때 컴퓨터를 처음 접했다. 컴퓨터학원을 다녔다. 시작은 평범했다. 테트리스나 땅따먹기 게임하고 그랬다. 2007년부터 디시인사이드를 보면서 ‘이런 점을 개선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일베 저장소까지 만들게 됐고.”

‘아카이브닷오아르지’에서 2008~2010년 디시인사이드의 ‘일간베스트 게시물’ 및 일베개라지, 2012년 현재의 일베 화면 등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남자 성기를 뜻하는 우리말 단어, ‘씨×’과 같은 욕설 등이 게시글 제목에 종종 사용된 점이 비슷했다. 그러나 현재 일베 사이트에 압도적으로 많이 발견되는 지역 비하 단어, 여성 성기 우리말 단어 등은 ㄱ씨가 만든 일베 저장소나 일베개라지 제목 목록에서 많이 발견되지 않았다. 연예인, 만화, 영화 등과 관련한 게시글이 많았다. 2008년 당시 디시인사이드의 삭제기준 공지를 보면, ‘비방, 욕설, 음란물’ 등 추상적으로 제시돼 있다. 반사회적인 막장 게시글은 현재 일베와 느낌이 비슷했으나, 극우성향,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 혐오 등 이념성·정치성은 적어 보였다. ㄱ씨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예율의 김상겸 변호사는 <한겨레>에 “ㄱ씨 부모님이 커뮤니티 활동을 좋아하지 않아 당시 나이 어린 ㄱ씨가 법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며 “박아무개씨와 ‘새드’ 이아무개씨를 상대로 ㄱ씨가 최초 개설자임을 입증할 것”이라고 15일 밝혔다.

<한겨레>는 지난달 현재의 일간베스트 저장소 웹마스터(운영자)에게 전자우편으로 서버 운영 등 경영현황, 운영진 등에 대해 묻고 운영진 또는 유비에이치 임원과의 인터뷰를 요청했다. 일베 웹마스터는 “사기업의 영업사항에 해당한다”며 답변을 거절했다. 추가로 일베의 탄생 과정과 ‘모에명수’ ㄱ씨의 주장과 소송에 대한 견해 등을 다시 물었으나 아예 답이 없었다. 이아무개씨의 전자우편 주소를 확보해 보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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