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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관계 학습

언젠가 5살 정도 된 꼬마 친구들의 장애, 비장애 통합수업을 몇 주간 참관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친구들의 낯선 특징들을 궁금해하고 최대한의 호기심 어린 반응들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놀림이나 상처라고 교육 받지 않은 장애학생들은 울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호기심을 보이던 대부분의 아이들도 몇 주가 지나면서 조금 다른 특징들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는 듯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함께 간 소풍날 다른 유치원의 아이들에게 친구의 시각장애에 대해 대변하고 설명해 주는 비장애친구들의 모습이었다.

  • 안승준
  • 입력 2015.05.15 10:49
  • 수정 2016.05.15 14:12
ⓒShutterstock / STILLFX

최근 교육계에서 새로운 교육모델로 관심을 받고 있는 '거꾸로 교실' 세미나를 다녀왔다.

이 특이한 이름의 교실이 기존의 교실과 가장 다른 점은 교사가 주도해서 뭔가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교사가 그날 그날의 수업과 관련된 5분 남짓의 짧은 동영상을 제시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제시된 과제를 풀어나가면서 학습이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교사의 역할은 과제를 제시하고 동기를 유발하는 것과 학습상황에서 약간의 도움을 주는 조력자 정도로 축소된 듯 보였다. 교사 주도의 강의식 수업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보기에는 시도 자체가 위태롭고 모든 상황이 불안해 보이기도 했지만 의외로 학생들은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며 주어진 학습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새로운 시도인지라 아직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겠지만 내가 새삼 주목한 부분은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는 부분이었다.

나는 학교의 제자들에게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 편이다.

제도적 또는 환경적인 문제로 작은 특수학교에 있는 아이들은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매우 적지만 대학에 가고 직업을 얻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다양한 관계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친구도 만나야 하고 직장동료도 만나야 하고 연인을 사귀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학교 학생들 중에는 비장애인들과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아이들이 꽤 많다.

설명도 해 주고 경험도 나눠보지만 큰 공감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나는 이것이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즘 학교에서는 일 년에 몇 차례씩 장애인식과 관련된 교육을 하고 의무적인 봉사활동 시간을 정해주고 이를 점수로 환산해 준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동영상을 보고 의례적인 봉사활동을 사명으로 여기라는 암묵적인 교육 속에서 특수학교의 아이들은 이해해야 할 뭔가 다른 아이들, 또는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어가는 것 같다.

도움을 받는 아이들도 봉사자라는 이름의 틀 속에서 또래로서 관계를 맺기 보다는 특별한 또래 도우미라는 인식을 가지기도 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왜곡되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어른들의 장애인식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대물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5살 정도 된 꼬마 친구들의 장애, 비장애 통합수업을 몇 주간 참관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친구들의 낯선 특징들을 궁금해하고 최대한의 호기심 어린 반응들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들의 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기도 하고 불편한 자세를 흉내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놀림이나 상처라고 교육 받지 않은 장애학생들은 울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호기심을 보이던 대부분의 아이들도 몇 주가 지나면서 조금 다른 특징들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는 듯했다.

교사들은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와 동작들을 제시해주고 그 안에서 꼬마 친구들은 역할을 정하고 서로를 보완해주고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함께 간 소풍날 다른 유치원의 아이들에게 친구의 시각장애에 대해 대변하고 설명해 주는 비장애친구들의 모습이었다.

꼬마 녀석들은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스스로의 생각으로 관계를 맺고 친구를 사귀고 있었던 것이다.

교사들의 역할은 함께 놀 수 있는 놀거리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면 충분했다.

우리는 장애를 가르치려 하고 이해시키려 하고 도와주려고 한다. 우리가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무의식적으로 대물림하는 것이다.

'거꾸로 교실'에서 보았듯 아이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있다.

어쩌면 잘못된 교육이 순수한 많은 관계들을 망쳐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거만한 생각으로 만들어진 '장애인식 교육'들과 어색한 '함께 사는 세상' 대신 거꾸로 아이들의 순수한 관계들을 배워가는 것은 어떨까?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인위적인 교육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장벽을 걷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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