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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롤링스톤' 오보 사태가 탐사보도에 주는 교훈

어떻게 해서 롤링스톤은 대형 오보를 내게 됐을까? 보고서는 이번 오보를 "예방할 수 있었던 저널리즘 실패"로 규정하면서, 취재, 편집, 사실 확인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문제점들을 언론인들이 정면으로 부딪히고 조심스럽게 다루지 못한데 있다고 지적한다. 즉, 보고서는 이번 오보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탐사보도에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사건임을 암시한다. 롤링스톤 오보의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 김선호
  • 입력 2015.05.14 12:32
  • 수정 2016.05.14 14:12
ⓒROLLINGSTONE

"권력을 감시하고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어라!"1) 오늘날 최고 수준의 저널리즘으로 간주되는 탐사보도의 슬로건이다. '제4부' 혹은 '감시견'으로서 언론은 암흑 속에 감추어져 있던 권력 남용이나 부조리한 사회 현상에 조명을 비추고, 억울한 피해자나 소외 집단의 억눌린 목소리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탐사보도는 직업적 소명의식이 투철한 저널리즘이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상징되는 공직자의 범죄, 대기업의 뇌물 공여, 어린이 노동 착취, 불법 도청, 인종 불평등 등의 문제에 대해 장기간에 걸친 취재를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고 문제를 공론화시키기 위해서는 언론인의 존재이유가 언론사의 영업이익이 아니라 공익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신념이 필요하다. 그러나 탐사보도에 대한 우려 섞인 지적도 있다. 공익에 대한 사명감이 앞선 나머지, 확증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철저한 사실 확인 없이 보도를 진행하거나, 반대의 목소리에 충분히 귀 기울이지 않고 언론인 자신의 주의 주장을 대변하는 목소리만 전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 발생했던 대형 오보는 탐사보도의 그런 어려움을 잘 드러내준다.

예방할 수 있었던 실패

오보 사태는 이렇게 진행됐다. 지난해 11월 대중음악 잡지 롤링스톤은 '캠퍼스 성폭행'이란 제호의 특종기사를 내보냈다. 기사 내용은 명문 사립 버지니아대 캠퍼스 내 사교클럽인 '파이 카파 사이'에서 집단 성폭행이 있었다는 증언을 담고 있었다. 이 기사는 온라인에서 27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당시 상당수의 한국 언론도 한국 대학의 성폭력 문제를 연상시키는 이 기사를 인용보도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워싱턴포스트가 버지니아대 성폭행 사건이 실제로는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롤링스톤 보도의 진실성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급기야 기사 게재 2주 뒤인 12월 5일 롤링스톤은 대형 오보임을 시인하고 기사를 철회했고, 버지니아 경찰은 롤링스톤 기사의 진실성을 뒷받침할 만한 실체적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오보 사태의 진상을 밝히기로 결정한 롤링스톤은 컬럼비아 언론전문대학원 학장인 스티브 콜에게 의뢰하여 보도, 편집, 사실 확인 과정 등에서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 조사해달라고 요청했고, 컬럼비아 언론전문대학원은 지난 4월 5일 보고서2)를 발표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롤링스톤은 대형 오보를 내게 됐을까? 보고서는 이번 오보를 "예방할 수 있었던 저널리즘 실패"로 규정하면서, 취재, 편집, 사실 확인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문제점들을 언론인들이 정면으로 부딪히고 조심스럽게 다루지 못한데 있다고 지적한다. 즉, 보고서는 이번 오보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탐사보도에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사건임을 암시한다. 롤링스톤 오보의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먼저, 기사 작성자였던 사브리나 어들리 기자의 취재원 선정 과정이다. 어들리는 범죄 관련 탐사보도 전문 기자로서 성직자의 아동 성학대, 군대내 성희롱 문제 등과, 마약 운반죄로 기소됐으며 삼성가의 상속녀를 자칭한 한인 여성을 취재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기자는 지난해 여름 버지니아대의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대학 캠퍼스 성폭력 및 성희롱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는지 물었고, 교직원은 재키라는 이름의 여대생이 집단 성폭행을 당했음을 주장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교직원으로부터 소개받았기 때문에, 이 여대생의 "신빙성이 보증됐다"고 생각했다. 어들리는 대학 내부의 성폭력에 대한 정당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취재원인 재키가 그 문제의식을 다루기에 적합한 사례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았다.

총체적 오류의 결과물

어들리는 취재 과정에서도 많은 문제를 노출했다. 재키는 신입생 시절이었던 2012년 대학 수영장 안전요원이 그녀를 어두운 침실로 유혹한 후 집단 성폭행을 주도했다고 진술하면서, 처음에는 그 안전요원의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나중에 재키는 어들리 기자에게 안전요원의 이름(first name)을 알려줬다. 그러나 재키는 성(last name)에 대해서는 대충 얼버무렸고, 기자는 재키가 어떻게 성을 제대로 모르는지 수상쩍게 생각했지만 더 이상 사실 확인을 진행하지 않고 넘겨버렸다. 기사가 나간 후 경찰 조사 결과, 안전요원 중 재키가 언급한 이름의 안전요원은 존재했지만, 그는 사교클럽 회원도 아니었고, 성폭행 관련 혐의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기자가 안전요원을 찾아서 사실 확인을 시도했더라면, 오보를 예방할 수 있었던 부분이다.

그리고 재키는 성폭행 이후 세 명의 친구(라이언, 알렉스, 캐서린)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고 기자에게 진술했다. 그녀에 따르면, 라이언이 대학 여성센터에 신고할 것을 권하자 캐서린이 "재키는 '강간' 당했다고 징징거리는 여자애가 될 거고, 우리는 다시는 사교파티에 낄 수 없게 된다"며 만류했다고 말했다. 재키의 진술은 캐서린을 매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자 입장에서는 공정 보도를 위해 캐서린을 인터뷰할 필요가 있었지만 어들리 기자는 캐서린을 인터뷰하지 않았다. 대신, 기자가 재키에게 라이언을 만나게 해줄 것을 요청하자, 재키는 라이언이 "네가 연출하는 미친 쇼에 끼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다"며 취재를 거절했다고 기자에게 전했다. 그러자 기자는 재키의 말만 믿고 세 명의 친구에 대한 취재를 포기했다. 롤링스톤 편집진은 기자가 세 명의 친구를 취재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지 않았고, 게다가 친구들의 이름을 가명(랜달, 신디, 앤드류)을 사용하여 보도하도록 했다. 재키가 주장한 라이언의 "미친 쇼"관련 진술은 랜달이라는 가명의 인물이 한 것으로 보도했고, 이마저도 재키의 진술을 인용한 것임을 명시하지 않았다.

사교클럽 및 대학당국 취재도 부실했다. 기자는 사교클럽 회장에게 "파이 카파 사이의 버지니아대 지부에서 집단 성폭행이 있었다는 고발을 알게 됐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 고발에 대해 코멘트할 것이 있습니까"라고 모호하게 물었을 뿐, 재키가 주장한 집단 성폭행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클럽 회장은 "익명의 개인이 파티가 열리는 동안 성폭력이 있었다고 대학 당국에 보고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답했다. 보도 직후, 사교클럽은 자체 조사를 통해 재키가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한 날 파티가 열리지 않았음을 밝혀냈다. 대학 당국에 대한 취재도 마찬가지였다. 재키는 2013년 대학의 부학장을 만나 자신이 성폭행 당했다고 진술한 적이 있지만, 가해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공식적인 조치도 요청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학은 성폭력 경계령 발령과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들리 기자는 성폭행 신고에 대해 대학 당국이 쉬쉬하며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다고 해석했다. 2014년 기자가 버지니아대학을 방문했을 당시, 대학은 살인 사건과 성폭력 사건으로 시끄러웠기 때문에 뭔가 숨기려들 것이라고 가정했고, 2014년의 상황을 바탕으로 한 가정을 2013년에도 회고적으로 적용시켰다. 어들리 기자의 취재 문제 이외에도, 컬럼비아 언론전문대학원 보고서는 롤링스톤 잡지의 편집과정, 편집국 내부의 사실 확인 절차, 기사 작성 과정에서 오류들을 총체적으로 지적했다.

사실 확인과 확증편향

롤링스톤의 오보는 탐사보도에서 사실 확인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탐사보도 기자로서 어들리와 롤링스톤 편집진은 고귀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대학 캠퍼스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대학 당국이 성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해 올바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은 피해자들이 성폭력 사건을 공개적으로 밝히기 꺼려함에 공감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를 공론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보고서의 지적처럼, "어렵고 감정적이며 논쟁적인 이야기를 다루다보면 탐사보도 기자들은 맹점을 갖게된다." 그 맹점은 보도의 사실성이다. 보도의 사실성은 단순히 사실을 날조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 확인의 결핍이나 부족, 사실 확인 방법의 부적절성 등도 때로는 날조나 왜곡 못지않게 큰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롤링스톤 오보와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 조언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일반적 사실과 구체적 사실은 엄격하게 구분해야 하며 언론인은 구체적 사실을 더욱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 성폭력이 만연하다"는 문장은 일반적 사실을 나타내는 진술문이며, 이는 기본적으로 사회과학의 언어이다. 반면, 언론은 사회과학과 달리 구체적 사실을 진술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언론인은 일반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개별적 사례를 선택할 수 있지만, 6하 원칙에 따라 개별 사례와 관련된 구체적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구체적 사실 확인의 실패가 낳는 부정적 결과는 다양하다. 이번 오보는 한편으로 사교클럽과 버지니아 대학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다른 한편으로 성폭력 피해자들의 증언은 믿을 수 없다는 반여성주의자들의 물타기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

둘째, 구체적 사실을 다루는 과정에서 언론인들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을 경계해야 한다. 확증편향이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나 신념을 지지하는 정보에 대해서는 더 주목하고 배치되는 정보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인지부조화 경향을 뜻한다. 어들리는 성폭력 피해자라고 주장한 재키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여 취재했고, 안전요원이나 재키 친구들의 반론을 듣는 데는 실패했다. 대학 당국의 조치에 대해서도 어들리는 대학 당국은 사건을 은폐하려 들기 마련이라는 자신의 편향적 믿음을 적용했다. 확증편향을 극복하는데 철학자 칼 포퍼의 반증주의가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 모든 백조는 흰색이라는 믿음이 단 한 마리의 검은 백조를 발견함으로써 반증될 수 있는 것처럼, 일반적 사실에 대한 믿음이나 스테레오타입이 개별 사례에 기계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 정치인들이 비리를 많이 저지른다고 해서 취재 대상이 되는 특정 정치인도 비리를 저질렀을 것으로 예단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억울한 사람이 많다고 해서,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는 한 사람의 인터뷰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사실 확인에 타협은 없다

탐사보도가 제대로 권력을 감시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려주기 위해서 언론인은 무엇보다도 구체적 사실을 확인하고 자신의 신념을 반증해보려는 노력에 타협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오보 사태 이후 어들리 기자의 고백은 새겨들을 여지가 많다. "지난 20년 동안 탐사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 나는 종종 민감한 토픽과 소스를 다루었다. 각각의 스토리를 쓰면서 나는 (피해자에 대한) 나의 동정심과 진실을 찾기 위한 언론인의 의무를 저울질해야 했다. 그러나 재키의 충격적인 성폭행 이야기의 경우, 나는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의 진실을 충분히 검증하지 못했다. ... 이 이야기를 보도하는 데 있어 나의 실수 때문에 피해자의 목소리가 침묵되지 않기를 바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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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빌 코바치 & 톰 로젠스틸,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서울: 한국언론진흥재단.

2) Rolling Stone’s investigation: ‘A failure that was avoidable’

3) Sabrina Rubin Erdely, Writer of Rolling Stone Rape Article, Issues Statement

*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신문과 방송> 5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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