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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위탕을 다시 읽다

"물론 이 사회에 탐험가·발명가·위대한 대통령 또는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영웅 따위와 같은 몇 사람의 초인이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더라도 가장 행복한 사람은 겨우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되어 인류를 위해 대단한 일은 못 했지만 그래도 약간의 일을 한 사람. 세상에 다소 이름은 알려져 있지만 그다지 높이 이름을 날린 건 아닐 정도의 중간 계급에 속해있는 사람들이다. 개인이 가장 행복을 느끼고 가장 처세를 잘 해나가려면 먼저 생활에 걱정이 없고 그렇다고 해서 전혀 걱정이 없는 건 아니고 알맞을 정도로 걱정이 있는 게 좋다."

  • 정경아
  • 입력 2015.05.15 10:18
  • 수정 2016.05.15 14:12
ⓒwikipedia

일박이일, 눈썹을 휘날리며 남녘 진도를 다녀오니 감기가 왔다. 오랜 친구처럼 연락도 없이 왔다. 그렇다면 나 역시 친한 친구 대접하듯 감기랑 놀며 지내면 되겠지. 종합감기약을 하루 세 번 챙겨먹는다. 몸이 무거우니 평소보다 더 게으르게 하루 이틀을 보낼 참이다. 하루 일과 중 빼놓지 않는 양재천 걷기를 미루고 소파에 길게 눕는다. 오랜만에 <생활의 발견>을 읽어볼까. 린위탕의 스테디셀러. 원제목은 이다.

19세기 말에 중국 푸젠성에서 태어나 서구 교육을 받았던 작가이자 문명비평가인 임선생의 이 책은 어느덧 젊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듯. 술술 읽히면서도 시종일관 유쾌한 글의 흐름이 매력이다. 길어야 백년인 한 생애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공자부터 노자 장자뿐 아니라 도연명, 이백과 소동파까지 종횡무진 인용해가며 이야기를 이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중국 사상의 최고 이상은 자기가 타고난 명랑한 천성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인간사회와 인간 생활로부터 도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간관이다. 도시에서 도피해 산중에 홀로 사는 은자(隱者)는 아직도 환경에 좌우되는 인간형의 은자에 지나지 않는다. 참된 은자는 시중에 숨는다. 유유자적, 독립안주의 힘을 갖추고 있는지라 환경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사회로 돌아와 돼지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고 여자와 사귀고 그러면서도 자기 마음을 더럽히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고승이다."

임선생은 더 나아가 중용 생활을 최선으로 꼽는다.

"반현반은(半顯半隱)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의 이상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동(動)과 부동(不動) 사이의 완전한 균형에 도달한 조화롭고 오묘한 중용정신이다. 즉, 반은 쉬고 반은 활동하고, 반은 일하고 반은 노는 정도. 집세를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일할 필요가 전혀 없거나 친구들을 돕기 위해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돈을 좀 더 가졌으면 좋겠다고 바라지 않을 만큼의 부자는 아니다. 독서는 하되 도를 넘지 않고, 학문은 상당하되 전문가는 되지 않는다. 글은 쓰되 신문에 보내는 원고가 때로는 떨어지고 때로는 실리게 되는 정도. 한마디로 줄이면 중국인에게 발견된 가장 건전한 생활의 이상이라고 내가 믿는 것은 중산계급의 생활 이상이다."

그는 명나라 말기 시인 이밀암(李密菴의 <중용가>를 소개한다.

세상사 모든 일은 중용이 제일.

뜬구름 같은 인생을 통해

그 맛을 보니 참 이상도 하다.

....

도시와 시골 중간에 살며

산과 내 사이에 농토를 갖네.

일 절반, 놀음 절반

아랫사람에게도 알맞게 대하네.

집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장식도 절반, 있는 그대로도 절반.

헌 옷도 아니고 새 옷도 아니고

음식도 적당히 알맞게

하인은 바보와 꾀쟁이의 중간.

아내의 머리도 알맞을 정도.

그러고 보면 나는 반 부처며

반 노자라는 정도.

....

술도 알맞게 취하고

꽃도 볼품은 반쯤 핀 게 제일.

빈 돛의 돛단배 제일 안전하고

반쯤 느리고 반쯤 급한 말고삐의 말이 제일 빠르네.

재물이 지나치면 근심이 생기고

가난하면 물욕이 생기는 것은 세상의 이치.

인생을 단만 쓴맛 합쳐진 것이라고 알면

반 맛이 그 중 제일이라네.

절로 웃음이 나온다. 임선생의 행복론이 계속된다.

"물론 이 사회에 탐험가·발명가·위대한 대통령 또는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영웅 따위와 같은 몇 사람의 초인이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더라도 가장 행복한 사람은 겨우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되어 인류를 위해 대단한 일은 못 했지만 그래도 약간의 일을 한 사람. 세상에 다소 이름은 알려져 있지만 그다지 높이 이름을 날린 건 아닐 정도의 중간 계급에 속해있는 사람들이다. 개인이 가장 행복을 느끼고 가장 처세를 잘 해나가려면 먼저 생활에 걱정이 없고 그렇다고 해서 전혀 걱정이 없는 건 아니고 알맞을 정도로 걱정이 있는 게 좋다."

임선생은 "인생의 적극적 견해와 소극적 견해를 적당히 융합시키는 중용주의 현실 생활"을 끝없이 예찬해 마지않는다. "입신양명이니 성공이니 하는 길을 걷는 번거로움을 굳이 추구하지는 않지만 인생의 책임에서 완전히 도피하지도 않는 인간. 속세의 성공과 실패의 허망함을 알고 속세를 초월하여 달관하되 그것들을 적대시하지 않는 인간. 관직에서 퇴직했으나 인생 무대에서 언제나 현역이었던 도연명(365-427). 그가 바로 인생 애호가의 참된 전형이다. 그가 도피하려고 한 것은 정치였지 인생 그 자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임선생의 글은 몇 쪽만 읽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돈이 적게 드는 행복론이라 더욱 맘에 든다. 그다지 훌륭해 본 적 없는 중·노년에게 상당한 위로가 되는 글이기도 하다. 지구에 태어난 인간으로 새삼 결의를 다진다. 그래, 지상의 하루하루가 즐거운 소풍임을 잊지 않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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