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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틀'에 갇힌 돼지 ‘수복이'와 닭 ‘진탁이'의 하소연

  • 박세회
  • 입력 2015.05.13 17:03
  • 수정 2015.05.15 09:42

# ‘스톨’에 갇힌 돼지와 ‘배터리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닭의 일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국내에서 소비량이 가장 높은 육류인 돼지 ‘수복’이에요.

돼지는 사람과 가장 밀접한 동물인데, 제가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알려드리려고 해요. 저는 공장식 축산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스톨(Stall)에 갇혀 사육되고 있어요. 스톨은 폭 60㎝, 길이 200㎝의 쇠로 만들어진 감금틀이죠. 어른 돼지는 보통 몸집이 가로 65~70㎝ ,세로 205~220㎝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몸집보다 비좁은 공간에서 몸을 웅크린 채 겨우 앉았다 일어서기만 할 수 있어요.

오물과 뒤섞여 사는 돼지를 더럽다고 생각하시죠? 그런 편견과 달리, 돼지는 공간이 허용되면 배변과 잠자리를 구분해 생활하는 청결한 동물이에요. 땀샘이 없어서 더울 때는 물이나 진흙에서 뒹굴기를 좋아하고요. 수복이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꼬리는 기분이 좋으면 엉덩이 위로 말려 올라가는데요. 언제부턴가 제 꼬리는 엉덩이 아래로 축 처져있어요.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에요.

번식용 암퇘지는 생후 210일부터 인공수정을 시작해서 평생 스톨에 갇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요. 임신 기간에도 출산 뒤에도 엄마 돼지들은 스톨에 갇혀 새끼들에게 젖을 주고 있어요. 암퇘지는 1년에 최소 2번 이상 강제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데요. 번식 기능이 퇴화되는 3~4년 뒤에는 도축장으로 가게 돼요. 

여러분 안녕? 저는 달걀을 낳고 돼지고기 못지않게 국내 소비량이 높은 닭 ‘진탁’이에요. 저는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에서 지내고 있어요. 제가 사는 곳은 가로 50㎝, 세로 50㎝ 크기의 철창인데, 암탉 5마리와 함께 살고 있어요. 그렇다보니, 닭 한 마리가 쓰는 공간은 416㎠로 A4 사이즈 종이 한 장의 2/3 크기에요. 이 좁은 공간에서 날개 한 번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평생 알을 낳다가 도축되고 있죠.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돼지고기와 달걀·닭고기의 99% 이상이 공장식 축산으로 꼽히는 돼지스톨과 배터리 케이지에 갇혀 고통을 받다 여러분의 식탁에 오르고 있어요.

 

# 정부 지원으로 만들어진 공장식 축산 시스템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갇혀 살게 됐을까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 정부의 축산정책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요. 농산물 시장 개방이 본격화된 1994년, 농림수산부(현재 농림축산식품부)는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축산 농가를 대규모화 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쉽게 말해, 공장의 규모를 늘려 생산량은 최대화하고 생산비를 절감하겠다는 전략이죠. 그래서 정부는 일정 수 이상의 가축을 키우는 농가에만 자동화 설비를 위한 예산을 지원했어요.

돼지 스톨.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제공

2009년부터 시작된 ‘축사시설 현대화 사업’ 역시 축산시설 대규모화를 유도하는 정책이었는데요.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보조금이나 융자금 형태로 축산 농가에 지원된 예산만 1조1971억원에 달해요. 이런 정부의 지원 방식은 자연스럽게 축산 농가가 대규모화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공장식 축산시설에 갇힌 가축들은 짧은 시간 안에 몸무게를 늘려야 했어요.

이 과정에서 우리들은 항생제, 성장호르몬, 동물의 사체 등을 먹었어요. 축산업자들은 성장 촉진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먹였어요. 하루가 다르게 건강을 잃은 소는 2~3년, 돼지는 5~6개월, 닭은 30~35일 정도 만에 도축장으로 갔어요.

 

# 축산시설 현대화에도 구제역과 조류독감 발생

‘축산시설 현대화’라고 하면 위생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을 피해갈 수 없어요. 우리처럼 비좁은 공간에서 사육되는 공장식 축사는 신종 전염병의 용광로 역할을 해요.

2009년 전세계로 퍼진 ‘신종 인플루엔자’는 고병원성 돼지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킨 사례로 꼽히죠. 공장식 축사는 특성상 한 곳에 많은 가축을 사육하기 때문에 돌연변이 바이러스의 발생 가능성을 증가시키고 있어요. 이렇듯 밀집 사육으로 인해 우리들의 면역체계가 약화됐어요. 또 가축들의 분뇨더미에서 발생하는 암모니아 가스로 우리들의 호흡기가 손상됐기 때문에 감염에 취약하죠.

배터리 케이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제공

돼지 스톨이나 베터리 케이지에서 살다보면 따뜻한 햇볕을 볼 일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자외선 바이러스의 살균 효과마저 차단돼 바이러스 생존기간이 늘어났어요. 병든 우리들은 먼 거리로 이동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질병이 확산되기도 해요. 공장식 축산이 지속되는 한 전세계는 이런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에요.

김정훈 새누리당 의원이 2014년 국정감사에서 밝힌 자료가 있어요. “2010년부터 2014년 7월까지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농가의 7%(248곳 중 17곳)가 축사시설 현대화사업을 지원받은 축산 농가”였다는 거죠. “같은 기간 동안 구제역 발생 농가의 10.2%(176곳 중 18곳)도 역시 지원을 받은 농가였다”고 해요.

농림축산식품부의 ‘축사시설 현대화사업 시행지침’을 보면, 사업 지원을 받은 농가는 의무적으로 방역 소독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는데요.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을 위생 강화로 예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에요. 녹색당은 “결국 정부가 공장식 축산이라는 재앙을 키워왔다”고 말하고 있어요. “정부가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의 근본 원인인 공장식 축산을 줄이기보다는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명목으로 동물 사체를 매몰하고 있다”는 거에요. 그 결과 2011년부터 2014년까지 1조8418억원의 살처분 보상금이 여러분의 세금으로 쓰였어요. 그 밖에도 매몰지 주변의 지하수와 토양 오염이 심각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필요할 거에요.

 

# 건강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올해 ‘축사시설 현대화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1543억8000만원으로 2015년 축산 분야 전체 예산의 10% 수준이에요. 정부가 이런 축산 정책에 매달릴수록 공장식 축산은 무서운 속도로 확대될 수밖에 없어요. 정부의 먹거리 정책은 국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해요. 그래서 ‘규칙’을 마련할 필요가 있는거죠.

우리들은 과도하게 밀집된 공간에서 사육되면서 병들지 않기 위해서 적절한 수준의 사육 공간을 제공받고 싶어해요. 또 우리를 빨리 살 찌우기 위해 인위적으로 성장을 촉진시키는 화학 물질을 사용하지 않길 바라고 있어요.

마침, 지난 12일부터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와 녹색당 등에서 공장식 축산의 상징인 배터리 케이지와 스톨 추방을 위한 백만인 서명 운동을 시작했어요. 정부의 정책 방향 전환과 더불어 안전한 먹거리 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저희, 수복이와 진탁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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