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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여성의 삶

결국 가정의 모든 경제적 부담이 여성에게 씌워지면서 여성은 생활전선으로 나서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직 공무원들은 남성이다 보니 여성들은 일상적으로 성희롱과 성폭력에 노출된다. 예를 들어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시장을 담당하는 보안서(경찰서) 담당 보안관(경찰관)이나 시장 담당 당일꾼에게 잘 보여야 쉽게 자리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들에게 잘 보여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돈으로 그들을 매수하는 것, 둘째 돈이 없으면 감정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하지만 첫번째 방법을 택할 정도로 경제적인 여력이 있다면 굳이 장사를 할 필요가 없다.

  • 이제선
  • 입력 2015.05.14 06:50
  • 수정 2016.05.14 14:12
ⓒASSOCIATED PRESS

북한은 아직까지 가부장제가 철저히 남아 있다. 예를 들어 1월 1일에는 여자들이 남의 집을 함부로 가지 않는다든가, 아침부터 여자가 손님으로 오면 재수가 없다든가 하는 인식이 아직까지 뿌리 깊이 남아 있다. 최근에는 좀 덜하지만 과거에는 남자들이 부엌에 서있기만 해도 어떻게 남자를 부엌에 세우냐는 등 온갖 욕설을 다 퍼부었다. 물론 욕을 먹어야 하는 대상은 여자다. 북한에서 아빠, 남자의 바람직한 이미지는 월급이 없더라도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하고, 내일 당장 먹을 것이 없더라도 출근해 당의 부름을 따르는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막상 북한에서는 대부분 통용되고 있는 사고다.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어려움은 가장인 아버지의 역할이 아니라 집안일을 담당하는 여자의 몫이다. 남자가 가정에서 하는 역할은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더라도 당의 사상과 어긋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가족 구성원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당에서 하지 말라는 일은 절대 할 수 없도록 아내와 자식들을 사상적으로 교육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버지의 역할이다. 이는 북한의 이혼사유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만일 남편이나 아내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법(당)에 어긋나는 일을 했을 때, 남편이나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면 무조건 사유가 된다.

또한 북한에서 당증은 아무리 남편과 아내라도 서로에게 보여줄 수 없을 만큼 부부간의 애정보다 당의 사상이 더 중요하다. 즉 남자들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에 대한 사리분별이 정확해야 하며, 남편의 공적인 영역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아내는 알려고 하지도 말며 알아서도 안될 만큼 여자들의 영역은 사적인 부분으로 제한된다. 더욱이 북한 같은 경우에는 관료주의가 심하다 보니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대부분의 남자들은 집에 들어와 아내에게 푸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게 되고, 이는 곧 가정폭력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부의 개입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가정폭력 피해는 전부 여성들이 떠안게 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우리 동네 같은 경우에도 10세대 중 3세대는 매일 같이 가정폭력이 일어났고, 3~4세대는 일주일에 2~3번은 가정폭력이 벌어졌다. 1년 가야 한 번 정도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집은 1~2세대에 불과할 정도로 가정폭력이 일상화 돼 있었다. 사회적으로 가정폭력의 횟수가 늘어나는 것은 여성들이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가정폭력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은 남자들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인식을 갖게 된다. 결과적으로도 1990년대까지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일찍(21~23) 결혼을 했다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동네에 30이 넘는 노처녀들이 생기기도 했다.

남자들이 가정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불만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가족이 굶주리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으로서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이 없다는 것,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정부에서 월급은 고사하고 오히려 갚아야 할 빚(공장에서 생산이 이루어져야 자금이 생기고, 자금이 있어야 기계설비나 시설물들을 개조하고 수리할 수 있지만 생산이 되지 않아 자금이 부족하다 보니 부득이하게 노동자들이 비용을 떠맡게 됨)만 늘어난다. 매일 출근은 해야 하고 별다른 돈벌이 수단이 없다 보니 아내에게 그 부담을 떠넘기게 된다.

결국 가정의 모든 경제적 부담이 여성에게 씌워지면서 여성은 생활전선으로 나서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직 공무원들은 남성이다 보니 여성들은 일상적으로 성희롱과 성폭력에 노출된다. 예를 들어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시장을 담당하는 보안서(경찰서) 담당 보안관(경찰관)이나 시장 담당 당일꾼에게 잘 보여야 쉽게 자리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들에게 잘 보여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돈으로 그들을 매수하는 것, 둘째 돈이 없으면 감정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하지만 첫번째 방법을 택할 정도로 경제적인 여력이 있다면 굳이 장사를 할 필요가 없다.

장사를 원하는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감정적 접근을 택한다. 물론 보안원이나 당일꾼의 인성, 사람 됨됨이에 따라 성폭행이나, 성희롱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인간적은 관계를 지속하는 어려운 일이 많다. 성폭력이나 성희롱은 장사를 하는 여성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직장에 출근하는 여성은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장의 성비는 거의 9대 1 정도로 남자가 많다. 그러다 보니 여성은 꽃이라는 식으로 대하거나, 여성들에게 청소나, 요리 등을 떠넘기게 되는데 이러한 행동은 직접적인 폭력은 아니더라도 간접적인 성폭력/성희롱이다.

남녀평등 문제는 남한보다 북한이 더 일찍 공식화했지만 이는 여성들의 평등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중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북한 정부가 남녀평등을 주장한 이유는 여성들을 존중하기 위해서나 가부장제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해방과 6.25 이후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여성들을 경제 건설에 동원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전후 복구 건설시기에 북한에서 여성의 역할은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기회를 이용해 북한정부는 혁신적(열심히)으로 일하는 여성들에 한해 상장, 노력영웅 등의 호칭을 수여하고 이들을 모델로 제시해 여성들에게 제 2,3의 노력영웅이 되기 위한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도 대부분의 성과는 남성들이 차지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부에서는 여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남성들에 비해 성과를 좀 더 내세워줬다. 하지만 그렇게 터전이 마련되고 50년대 60년대 북한이 남한보다 더 잘 살게 되면서 경제 기반이 마련되자 더 이상 여성이 필요하지 않게 되면서 여성들은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결국 자기들이 필요할 때는 사회에서 여성들의 역할과 남녀평등을 중요시하다가 필요가 사라지자 일순간에 여성들은 찬밥신세가 됐다. 북한 사회 내부에서 여성들이 시장에서 돈을 많이 벌어오거나, 집안일을 잘하는데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지만,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거나 당일꾼으로 활동하는데 대해서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동원해 여성을 비하한다. 결국 북한에서 여성의 역할은 남성들에게 도움이 되느냐, 마느냐에 관한 문제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북한에서는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라는 무거운 짐에 억눌려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하다. 북한에도 인권이 존중받는 그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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