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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본소득 체험기 | 선택의 기준이 바뀐다

나는 공모전에 입상하여 실제로 70만원의 기본소득을 받았다. 당연히 추가적인 임금 노동은 필요했다.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아 경제가 파탄 날 것이라고 걱정을 하는 이들이 있던데, 그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일을 '덜' 할 수 있고, '골라' 할 수 있다면 모를까. 기본소득을 받아 일단 월세와 기본적인 식비가 해결되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정말 하고 싶었으나 금액이 맞지 않아(혹은 금액이 없어) 포기했었던 작업도 기꺼이 받았고, 작업 방향이 달라 하기 싫었지만 억지로 했었던 업체의 의뢰는 과감히 거절할 수 있었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에서 [시대정신 기본소득] 칼럼을 연재합니다. 기본소득의 핵심 원칙은 '모두에게' '조건없이'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당사자로서 기본소득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칼럼 시리즈에서는 각자가 가진 고민들을 통해 동시대의 문제를 짚어보고, 이로써 기본소득 논의를 재구성해보려고 합니다. - BIYN 사무국 (sec@biyn.kr)

무슨 일 하세요?

얼마 전까지 이런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막막했었다. 질문자가 누구냐에 따라, 질문의 의도가 무엇이냐에 따라 내 답은 항상 달랐다.

"자발적인 백수입니다." ,"판매 일을 해요.", "제안서 작업을 받아서 해요.", "디자이너예요.", "홍보 분야 일을 하고 있어요.", "책 작업이요.", "그냥 이것저것 해요." ,"별 거 안 하는데요." ,"책도 읽고 낮잠도 자고 가끔 아르바이트를 해요." 이 답을 종합해 보면, 지난 몇 년간 나는 만능 엔터테이너이기도,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이기도 했다.

내가 무얼 하며 먹고 사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질문의 목적이 아닌 경우, 즉, 나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그 당시 하는 일을 직업이라 소개했고(대부분 이런 부류는 '노동의 신성함', '젊은 시절 노력과 편안한 노후의 상관관계',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의 설교를 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 반대의 경우는 딱 생활에 필요한 만큼 적당량의 노동만 하는 삶을 얘기하며, 왜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노동의 양과 삶의 질 변화 등을 함께 토론하며, 그와 동시에 내 머리 속 생각들을 정리하기도 했다.

만약 내 통장에 매달 70만원이 들어온다면?

작년에 녹색전환연구소에서 진행했던 '기본소득 상상 시나리오 공모전*'의 메인 카피이다. 듣기만 해도 엔도르핀이 마구 솟구치는 말 아닌가. (근데 기준점이 왜 70만원이었는가 하면, 스위스의 '월 2,500 스위스 프랑(약 300만원) 보장법'에 대한 국민투표 발의안을 한국의 물가 수준을 고려하여 책정한 금액이라고 한다. 물론 나는 기본소득 지급 금액이라는 세부사항에 대해 말할 것은 아니니 이에 대한 논의는 접어 두기로 하자.)

(* 관련기사 보러가기: 주간경향 1094호, 2014.09.30 , "그냥 조건 없이 매달 70만원을 받는다면?")

자, 모두 한번 '상상'이라도 해보자. 내 통장에 아무 조건 없이 매달 일정 금액이 들어오는 상상을. '그게 말이 돼?', '집어치워.', '예산은 어떻게 마련하고.'와 같은 걱정과 염려는 집어치우자. 일단 고정된 생활비(나는 이걸 '생존비'라고 부르고 싶다)가 들어온다면, 당장의 '먹고사니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혼자만의 기본소득으로 어림없다 싶으면 둘, 셋이 모여 함께 먹고 살면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하니 참고 일한다' 따위의 말은 진부한 옛 표현이 돼버리고 말 것이다. 70만원이 아니라도 좋다. 20만원, 30만원, 40만원이라도 '꾸준히' 들어온다고 '상상'을 해보자는 말아다. 상상은 기회비용도 없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얼마든 마음껏 상상해도 좋다.

경제를 위해 많이 낳으라고만 하면 뭐하나, 먹고 살 수 있게 해줘야지

요즘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삼둥이가 화제다. 4남매를 출산한 정혜영-션 부부는 애국자로 묘사되기도 한다. 기도 안 찰 노릇이다. 언제는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더니, 이제 둘도 모자라 셋, 넷을 낳는 게 애국이란다. 지금 국가가 할 일은 무작정 출산 증가를 외칠게 아니라, 출산율의 저하를 야기한 원인을 파악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출산 장려금, 다둥이 혜택, 양육보조금 등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평생을 살아가면서 드는 비용은 생각지도 않고, 아이 때만 잠깐 보조금을 지급해주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식의 정책이다. 게다가 사람이 살아가야 할 아주 기본적인 금액을 가지고 '선심 쓰듯 줬다 빼앗아 가버리는' 정책에는 도무지 동의할 수가 없다. 기본적인 생명 유지를 할 수 있는 금액은 평생 보장해주고 '경제 발전'을 얘기해야지, 출산율이 저하되면 경제에 악영향을 주니,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것은 국민을 단지 '노동력'으로만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기도 하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명을 유지할 최소한의 권리 보장, 그래서 나는 기본소득을 '생존비'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다.

쓸데없는 걱정일랑 집어치우고 조건 없이 기본소득

다시 '기본소득 상상 시나리오 공모전' 얘기로 돌아가자. 나는 이 공모전에 입상하여 실제로 70만원의 기본소득을 받았다. 물론 일시적인 것이기에 평가를 하기는 뭣하나, 그래도 '받아 본' 사람으로써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자 한다.

(한쏭님의 기본소득 시나리오)

내가 상상했던 기본소득 시나리오와 현실이 다른 게 단 한 가지가 있었다. 시나리오 속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였으나, 실제로는 '(가족 중)나 혼자만' 기본소득을 받았기에 상상을 그대로 현실에 옮기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은퇴하신 부모님께 들어간 돈 30만원을 제외하고, 40만원을 기본소득으로 받았다 가정하고 스스로 기본소득 있는 삶을 실험해보았다. 어차피 40만원으로 한 달 생활을 영위할 수는 없는 법, 당연히 추가적인 임금 노동은 필요했다.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아 경제가 파탄 날 것이라고 걱정을 하는 이들이 있던데, 그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일을 '덜' 할 수 있고, '골라' 할 수 있다면 모를까.

기본소득을 받아 일단 월세와 기본적인 식비가 해결되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정말 하고 싶었으나 금액이 맞지 않아(혹은 금액이 없어) 포기했었던 작업도 기꺼이 받았고, 작업 방향이 달라 하기 싫었지만 억지로 했었던 업체의 의뢰는 과감히 거절할 수 있었다. 아마 정기적으로 기본소득을 받게 된다면, 내 선택의 폭이 더 넓고 다양해짐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이 기본소득을 받아보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덮어놓고 '안 돼!'라고 말하거나 '뜬 구름 잡는 소리'라 하지 말고, 기본소득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깊은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한다. 지역 단위로 진행될 수 있는 '농민 기본소득'과 같은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만간 신문에서 TV에서 동네 어르신의 입에서, 그리고 동네 꼬마의 입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덧붙이는 말 - 나에게 기본소득이 필요한 현실적인 이유

아쉽게도 2015년 1월 5일부로 나는 '회사원'이 되었다. 나 혼자라면야 어떻게도 지금의 생활을 이어가고 싶지만, 소득이 없는 부모님이 계시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모두가 회사를 때려치우고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자고 말하는 건 아니다. 회사가 좋고 그 일에서 보람을 얻는 사람은 계속 그 생활을 하는 게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다만, 나처럼 다른 방도가 없어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까지 회사에 붙잡아 두는 건 회사나 개인 모두를 위해서도 좋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부모님이 만 65세가 되어서 기초연금(어쨌거나 '나이'라는 제한이 있지만 이것 역시 기본소득의 하나로 볼 수 있다.)을 받게 되면, 조금은 사정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글_ 한쏭 (녹색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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