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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평화헌법' 우리도 함께 지켜내자

오래전부터 '9조회'가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다.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일본 국민의 모임이다.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일본 문학의 두 간판스타가 주역이다. 모엔(莫言), 위화(余華), 첸리췬(錢理群) 등 중국 문학의 거성들도 지원에 나섰다. 모두 노벨 문학상 수상자와 후보자들이다. "위대한 작가는 하나의 대안 정부"라는 말이 새삼 실감 난다. 황석영·이문열·고은 우리 작가들도 동참한다는 소식이다. 실로 고마운 일이다. 고은은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한국 시단의 상징이다. 황석영과 이문열은 한국 소설의 양대 거목이다. 정치가 한동안 둘을 분리시켰지만 문학의 세계에서는 통합을 지향했다.

  • 안경환
  • 입력 2015.05.12 07:29
  • 수정 2016.05.12 14:12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의 외교력에 강한 의문이 일고 있다. 오바마 미국과 아베 일본의 밀월관계가 전면에 드러나면서 동아시아 정치 기상도가 복잡해졌다. 무엇보다 일본의 극우 국수주의 정치가 위험수위를 넘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전쟁 위안부 문제가 국제적 공분을 산 지 오래다. 그런데도 아베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평화헌법'마저 폐기하겠다며 국민 선동에 나선다.

1946년 11월 3일 인류에게 축복이 내렸다. 새로 제정된 일본헌법의 한 구절이 참혹한 전쟁에 넋을 잃은 세계인에게 안도와 희망을 선사한 것이다. 특히 일본 군국주의의 직접 피해자였던 아시아 인민들에게는 가히 복음이었다.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질서를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으로서의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한다.'(제9조 제1항)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기타의 전력은 보유하지 않고,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아니한다.'(제9조 제2항)

'대한민국은 국제 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헌법, 5조 1항) 지극히 표준적인 우리 헌법과 비교해 보면 일본 '평화헌법' 조항의 국제적 의미를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승자가 패자에게 채운 족쇄라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분해 하는 일본 국민도 있다. 그러나 통절한 과거 반성과 엄숙한 평화의 약속이라는 칭송이 더욱 높다. 그런데 69년 전에 이 조항의 입법을 주도한 미국이 은근히 개정을 부추기는 인상마저 풍긴다. 걱정이다. 만약 이 조항이 폐기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 공공연한 일본의 재무장, 상상만 해도 오싹하다.

오래전부터 '9조회'가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다.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일본 국민의 모임이다.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일본 문학의 두 간판스타가 주역이다. 모엔(莫言), 위화(余華), 첸리췬(錢理群) 등 중국 문학의 거성들도 지원에 나섰다. 모두 노벨 문학상 수상자와 후보자들이다. "위대한 작가는 하나의 대안 정부"라는 말이 새삼 실감 난다.

황석영·이문열·고은 우리 작가들도 동참한다는 소식이다. 실로 고마운 일이다. 고은은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한국 시단의 상징이다. 황석영과 이문열은 한국 소설의 양대 거목이다. 정치가 한동안 둘을 분리시켰지만 문학의 세계에서는 통합을 지향했다. 근래 황석영이 펴낸 〈한국명단편 101〉의 해제 101편을 읽으면서 새삼 거장의 균형 감각을 확인한다. 새파란 젊은이들의 '디지털 구라체' '소설 나부랭이'들을 성의 있게 읽고, 배우고, 기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우파 작가' 이문열에 대한 애틋한 사랑 고백도 가슴을 적신다. 당초부터 둘은 적이 아니라 다정한 도반이었다. 둘을 대척으로 삼은 것은 정치·언론 그리고 분별없는 독자였다.

'진보' 지식인의 좌장 백낙청 교수가 대담집을 냈다. '대전환의 길을 묻다'. 오랫동안 답만 하던 사람이 먼저 묻는 형식이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연상시킨다. 선거와 정치보다 일상의 삶, 각자의 분야에서 내공을 쌓아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이 맑아지고 밝아진다. 새삼 원로의 역할이 무엇인지 깨우쳐준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는 겉치레만 번드르르한 건설공화국, 대한민국의 민 얼굴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대로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였던 우리 사회 '적폐'의 전형이었다. 그런데 야당이 목전에 닥친 선거용으로 부각시키면서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고 의미가 축소되었다. 적폐의 해소는커녕 다수 국민에게는 서둘러 잊고 싶은 불행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성급한 정쟁이 불러들인 재앙이다.

'일본 헌법 9조'와 '9조회'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노벨상 중에서도 평화상과 문학상은 정치성이 짙다. 그만큼 발상과 기준이 유연하다. 정치인 윈스턴 처칠에게 문학상이 수여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수상자를 배출한 평화상은 단체에 수여되기도 했다. 국제적십자사, 국제노동기구, 국제사면기구, 국경 없는 의사회 등 다양하다. 그러나 '헌법'이라는 제도적 문서를 수상자로 추천하는 발상은 문학만큼 창의적이다. 일본 헌법 9조는 평화를 염원하는 전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그 유산을 재삼 확인하여 기리는 의식이 필요하다. 국제적 공인에 노벨상만큼 유익하고 효과적인 수단도 드물다. '평화헌법에 평화상을!' 우리 국민 모두가 운동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좌우, 진보·보수, 선거와 정쟁에 휘둘리지 말고 모두가 마음을 모으자. 그래서 인류 평화의 상징, 일본 헌법 9조를 함께 지켜내자.

* 이 글은 조선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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