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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절대 보지 못할 블록버스터 시리즈, '아리아나 존스 : 멸종 동물 구조대'

이 글을 통해 내가 고등학교 시절 기획한 블록버스터 시리즈를 처음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그 시리즈의 제목은 '멸종 동물 구조대'다. 인디아나 존스 풍의 남자 주인공이 세상에 존재하는 멸종 위기 동물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의 이 시리즈는 매 시리즈당 하나의 동물이 등장한다. 처음으로 등장할 동물은 태즈매니아 늑대다.

  • 김도훈
  • 입력 2015.05.11 10:32
  • 수정 2016.05.11 14:12
ⓒwikimedia commons

쥬라기 공원

내가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환경 영화'로 꼽는 영화 중 하나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이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고? 일단 한번 들어보시라.

나에게 '쥬라기 공원'은 엄청난 가능성의 상상력을 열어준 영화였다. DNA로 멸종한 존재를 되살린다는 영화의 유사과학적 설정 덕분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멸종 동물에 대한 기묘한 로맨티시즘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 백과사전에 등장하는 멸종 동물들의 사진을 도려내어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어놓을 정도였으니, 이건 가히 '시체애호증'적인 관심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엔 '스무 살이 되면 할리우드로 건너가서 만들 새로운 블록버스터 시리즈'를 기획한 적도 있다. 물론 나는 할리우드로 건너가지 못했다. 아니, LA의 할리우드 간판을 직접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통해 내가 고등학교 시절 기획한 블록버스터 시리즈를 처음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이렇게라도 공개하면 멸종 동물에 대한 기묘한 관심을 가진 돈 많은 후원가가 갑자기 영화에 투자하겠다며 나설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각설하고, 그 시리즈의 제목은 '멸종 동물 구조대'다. 인디아나 존스 풍의 남자 주인공이 세상에 존재하는 멸종 위기 동물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의 이 시리즈는 매 시리즈당 하나의 동물이 등장한다. 처음으로 등장할 동물은 태즈매니아 늑대다.

학살로 멸종한 태즈매니아 늑대

잠깐. 태즈매니아 늑대는 이미 멸종하지 않았느냐고? 그렇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20세기 초를 무대로 한다. 내가 기획한 '멸종 동물 구조대' 역시 무대는 20세기 초다. 주인공인 인디아나 존스 풍의 남자(이름을 정해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는 그냥 아주 미국적인 이름의 '존 존스'라고 해두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모험가이자 군인인데, 어느 날 갑자기 멸종 위기 동물에 관한 기사를 읽고 그들을 구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1편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밑의 작은 섬 태즈매니아로 건너가 영국인 이민자들에 의해 학살당해 거의 씨가 말라버린 태즈매니아 늑대 한 쌍을 구조해서 미국으로 몰래 데려올 계획을 세운다.

존 존스는 거기서 태즈매니아 원주민인 아보리진과 영국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도움으로 잔인한 영국인 목장주들과 싸운 뒤 태즈매니아 늑대 한 쌍을 비행기에 태우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존 존스의 모험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면, 역사 속에서 태즈매니아 늑대는 이미 사라져버렸으니까.

사실 태즈매니아 늑대는 '쥬라기 공원'의 속편으로 더 좋은 소재이긴 하다. 일단의 과학자들이 이미 DNA를 이용해 이 멸종 동물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지난 십수년간 해왔기 때문이다. 태즈매니아 주머니 늑대, 혹은 태즈매니아 타이거로도 알려진 이 동물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 지역에 광범위하게 살았으나 기원전 5만년 경 지금은 '아보리진'이라 불리는 원주민이 오스트레일리아로 들어오면서 쫓기고 쫓기다가 태즈매니아 섬에 정착했다. 인류의 출현으로 숫자가 줄긴 했지만 작은 태즈매니아섬에서 이들은 나름 자신들만의 생태계를 지키며 살아갔다.

태즈매니아 늑대를 촬영한 드문 동영상 클립

2차 침공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백인들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를 식민지로 만든 영국인들은 당연히 태즈매니아 섬에도 정착을 했다. 이 섬은 영국인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목양업에 안성맞춤이었다. 물론 태즈매니아 늑대들도 양을 공격해서 잡아먹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야행성인 유대류(有袋類) 태즈매니아 늑대들은 야생개인 딩고에 비하면 숫기가 없고 덜 위협적인 성격이라 목양업에 주는 피해가 그렇게 막대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백인들은 태즈매니아 늑대를 모조리 잡아 죽이기로 했고, 19세기 초반부터 말까지 포상금을 걸어 태즈매니아 늑대를 있는 대로 학살했다.

20세기 초가 되자 수백만 마리가 살던 태즈매니아 늑대는 셀 수 있을 만큼 줄었다. 그리고 마지막 야생 태즈매니아 늑대는 1936년에 태즈매니아 동물원에서 죽었다. 그제서야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이성을 차리고 주머니 늑대를 보호종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태즈매니아 늑대는 이미 사라졌다.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다면 사라져버린 이 고귀한 유대류를 대체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과학자들은 알코올 속에 보존된 태즈매니아 늑대의 표본에서 DNA를 추출한 다음, 같은 유대류인 태즈매니아 데블을 이용해 되살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무리가 많다. 일단, 알코올에 보존된 표본은 손상이 지나치게 커서 제대로 된 DNA를 뽑아내어 활용하기가 힘들고, 같은 유대류라고는 하지만 태즈매니아 데블은 태즈매니아 늑대와는 지나치게 다르다. 멸종한 늑대를 살리기 위해 개를 이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소리다.

아마도 우리는 영원히 태즈매니아 늑대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기획한 영화 '멸종 동물 레인저'의 주인공인 존 존스도 태즈매니아 늑대를 되살리는 작전을 결국 실패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이 놀라운 기획이 금방 내 상상 속에서 사라져버릴 것 같지는 않다. 세상에는 여전히 존 존스가 구해내야 할 동물들이 많다. 이를테면 '사올라' 같은 동물 말이다.

살아있는 유니콘, 사올라

윌리엄 다부이가 지난 2011년에 쓴 책 '최후의 유니콘 : 지상에서 가장 희귀한 동물을 찾아서'(The Last Unicorn: A Search for One of Earth's Rarest Creatures)'의 주인공인 사올라는 1992년 처음으로 동물학자들에게 발견된 일종의 영양이다. 사올라는 그 이후로 1998년과 2010년 두 차례 다시 목격됐고, 그저 목격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전 세계의 매체들이 기사로 쓸 만큼 희귀한 동물이다. 2010년 발견된 수컷은 포획되자마자 이틀 만에 죽었다. 성격이 워낙 조심스럽고 예민해서 사육 자체가 불가능한 동물로 추측될 뿐이다.

사올라는 특이한 뿔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뿌리에서 두 개로 갈라지는 듯한 이 뿔과 놀라울 정도로 희귀하다는 사실 때문에 사올라는 '살아있는 유니콘'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 유니콘은 많아 봐야 백마리 정도, 적으면 12마리가 채 안되는 개체만이 라오스의 숲 속에 살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내 상상 속의 주인공인 존 존스는 태즈매니아 늑대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사올라는 충분히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멸종 동물 구조대' 시리즈는 아예 시대를 현재로 옮겨서 사올라를 첫 번째 소재로 시작하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하다. 야생동물보호기금으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래도 제작비가 모자란다면 인도적인 활동에 나선 안젤리나 졸리 같은 여배우를 조연으로 캐스팅해서 제작비를 할리우드로부터 얻어낼 수도 있다. 아, 사과한다. 나는 지금 모든 것을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사고했다. 여성 캐릭터가 조연이 되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예 주인공을 안젤리나 졸리로 하자. 그렇다면 주인공의 이름도 바뀌어야 한다. 레베카 존스, 앤지 존스, 아리아나 존스.....개인적으로는 아리아나 존스가 좀 더 당기기는 한다. 요즘 아리아나 그란데의 노래를 즐겨 들어서는 아니다만.

여하튼, 아리아나 존스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많다. 지난 4월 1일 암컷 한 마리가 죽음으로써 이 지구에 단 5마리만 남게 된 메콩강의 이라와디 돌고래, 지구 상에 단 5마리, 심지어 수컷은 단 한 마리만 남은 북부산 흰 코뿔소, 그리고 사올라 만큼이나 미스터리의 동물이었으나 지금은 콩고가 국가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멸종을 향해 서서히 걸어가고 있는 오카피, 지난 1983년에 처음으로 존재가 알려진 뒤 얼마 전 처음으로 사진이 찍힌 중국 텐샨산맥의 포유류 일리 피카.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 동물들의 이름과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이 동물들을 볼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먼 바로 내일 이 동물들은 멸종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아리아나 존스가 할 일은 정말이지 많이 남아 있다. 만약 내가 갑자기 할리우드로 건너가 '아리아나 존스 : 멸종 동물 구조대'라는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많은 후원을 부탁드린다. 후원금을 보내실 계좌는 그때 다시 알려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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