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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연금폭탄' 제조법

  • 김병철
  • 입력 2015.05.11 08:20
  • 수정 2015.05.11 10:28

청와대가 10일 ‘공무원연금 개혁안 우선 처리’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논의 불가’를 거듭 촉구하며 강한 톤으로 국회를 압박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밝힌 ‘입장 자료’에는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여론을 의식한 자극적인 표현이 줄을 이었다.

“향후 65년간 추가 세금 부담만 1702조원” “세금폭탄” “미래세대 재앙” “내년에만 1인당 255만원(이후 209만원으로 수정) 추가 보험료” “2060년부터 보험료만 소득의 4분의 1” 등이 대표적이다.

청와대는 김 수석의 브리핑 뒤 “1조원은 한 사람이 매일 100만원씩 2700년 동안 쓸 수 있는 돈”이라는 ‘수학적 설명’까지 덧붙였다.

특히 청와대는 ‘세금폭탄’이란 표현을 동원해 국회가 논의하고 있는 소득대체율 인상 방안(재정지출 확대 또는 보험료 인상 등)을 ‘증세’인 것처럼 왜곡했다. 청와대가 ‘65년간 1702조원의 세금이 더 필요하다’며 밝힌 구체적인 액수도 극단적인 상황을 전제로 계산한 것이어서 국민 불안을 조장한 것이라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이 수치는 향후 국민연금 보험요율을 65년 동안 한 번도 조정하지 않고 소득대체율을 50%로 보장했을 때를 전제로 한 것이다. 국민연금 재원 부족 등에 따라 향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요율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데는 여야나 학계, 시민단체 등이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음에도 이런 고려 없이 단순히 2016년부터 2080년까지 추가로 필요한 재원을 누적 계산한 것이다. 수치를 부풀리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또 청와대는 오전에 이런 수치를 내놓은 근거를 묻는 질문에 “보건복지부 계산이다. 자세한 건 알아보고 연락 주겠다”고 했다가 오후 늦게 ‘50%로 인상할 경우 내년에 국민연금 가입자 1인당 255만원의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는 부분을 ‘1인당 209만원’으로 정정했다. 발표 내용이 급조됐음을 엿볼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오후 반박자료를 내어 “청와대가 근거 없는 ‘세금폭탄론’으로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 왜곡된 자료로 국민을 호도하는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청와대가 내놓은 추산치는 단순 산식으로도 이해되지 않는다.

청와대는 ‘국민에게 세금 부담을 지우지 않고 보험료율을 상향조정해 소득대체율 50%를 달성하면 2016년 한 해에만 34조5000억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는데, 2014년 보험료 수입이 32조원임을 고려하면 2016년에 당장 보험료를 2배 인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총 보험료 징수액은 32조6861억원으로 가입자 1인당 연간 197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있다. 청와대 주장대로라면 가입자의 연간 부담액이 197만원에서 209만원이 늘어난 406만원이 된다.

새정치연합은 “청와대 주장은 소득대체율을 현행보다 0.25배(40→50%) 올리기 위해 보험료를 1.95배나 인상해야 한다는 것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2007년 국민연금 개혁 당시 2028년까지 20년간 단계적으로 소득대체율을 인하했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의도적이며 악질적”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처럼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원색적으로 급하게 여야 논의를 비판하고 나선 것은 여론 흐름이 불리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편 수준이 미흡하다는 의견이 많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에도 보험료 부담 등으로 인해 반대하는 이들이 많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청와대 발표에 대해 새누리당은 겉으로는 “당 입장과 차이가 없다”며 당·청 갈등설을 잠재우려는 분위기다. 박대출 대변인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김무성 대표가 ‘5월2일 여야 대표 합의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뜻은, 공무원연금은 여야 합의로 처리하되 국민연금은 어떤 숫자(소득대체율 50%)를 명기하지 않고 사회적 기구를 통해서 (이를) 논의해나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여야 논의를 조심스럽게 새로 시작해야 하는 민감한 상황에서 청와대가 돕지는 못할망정 ‘자기 정치’에만 몰두하듯 거친 주장을 쏟아낸 것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도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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