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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아이들 | 난민선에서 구조된 알리 이야기

아침 9시에서 9시30분쯤 되었을 때 배 위에 이상기류가 돌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배 앞쪽으로 몰려가 구멍에 바람을 넣으려고 애썼어요. 우리는 휴대전화로 구조요청을 했어요. 구조선이 도착할 때까지 6시간이 걸렸어요. 그 6시간은 제 인생 최악의 시간이었어요. 저는 제가 다시 숨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죠. 사람들은 신께 용서를 구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준비하는 아이들로 거리마다 꽃 내음이 가득한 시기에도 우리의 관심을 받지 못한 세계 곳곳의 아이들은 어른들이 방치한 또는 방조한 인권침해 상황속에서 희망을 품기조차 벅차다. 아이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잃어버린 아이들, 그 세번째는 새로운 삶을 찾아 지중해 난민선에 올랐지만, 수많은 생명의 위협을 겪으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알리(Ali)의 이야기다.

지난 달 18일 난민들을 가득 태우고 리비아를 출발한 어선이 침몰한 참사가 있었다. 최소 700명 이상의 난민을 태운 선박이 지중해에서 가라앉으며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눈앞에서 산 채로 수장된 충격적인 참사에 세계의 시선이 쏠렸다. 올해 지중해에서만 1,700여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7명이 사망한 것에 비해 10배에 이르는 수치이다.

국제앰네스티는 지중해에 위치한 이탈리아 람페두사(Lampedusa)섬과 시실리(Sicily) 인근지역에서 이민자 및 난민, 망명신청자들의 증언을 들었다. 생존자들의 증언은 참혹했다. 3개월에 거친 끔찍한 여정 동안 친구의 죽음을 지켜본 소말리아 소년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그의 요청으로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다.

구조선이 난민을 싣고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에 도착했다 © AP

저는 소말리아에서 온 알리(Ali)입니다. 15살이에요. 제가 아홉 살 때 가족과 헤어져 수도 모가디슈(Mogadishu)로 왔어요. 저는 친구들과 야크쉬드 지역에서 살면서 영어를 배우고 군인들의 신발을 닦는 일을 했어요.

석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 저는 소말리아를 떠났어요. 폭력, 가뭄, 기아 등의 문제로부터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찾고 싶었어요. 노르웨이로 가고 싶었죠. 저는 친구와 함께 이동했어요. 친구 아버지가 우리 둘을 위해 소말리에서 리비아에 이르는 사막횡단 교통편을 지불해주셨어요. 에티오피아, 수단, 리비아를 거쳐 트럭 한 대로 이동하는 정말 길고 힘든 여정이었어요. 제 친구는 끝내 견뎌내지 못했어요. 밀수업자인 트럭 운전수들이 사하라 사막을 건널 때 너무 빠르게 운전하는 바람에 제 친구는 트럭 뒤쪽에서 떨어지고 말았어요.

밀수업자들은 차를 세웠고 우리는 친구의 상태를 확인했어요. 하지만 제 친구는 이미 심장박동이 멈춘 상태였어요. 우리는 친구를 사막에 묻었어요. 그 애 나이는 19살이었어요. 그 친구 아버지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화했을 때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었어요.

소말리아를 떠난 지 세달 후 우리는 트리폴리(Tripoli)에 도착했어요. 우리는 그곳에 일주일간 머물렀어요. 큰 집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살았죠. 밀수업자들은 소말리아인과 에리트리아인을 분리해서 각각 다른 집에 머물게 했어요. 우리를 억류하고 있던 사람은 폭력을 마구 휘두르는 등 매우 나쁜 행동을 일삼았어요. 그들은 장총과 권총 모두를 가지고 있었어요.

한 선원은 제게 와서 유럽까지 가는데 1,900달러(약 200만원)를 더 달라고 요구했어요. 하지만 저는 돈도 없을뿐더러 돈을 지불해줄 가족도 없었죠. 같은 집에 머물고 있던 다른 사람들이 저를 도와줘서 유럽행 배를 탈 수 있는 돈을 마련했어요.

그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우리에게 섬유유리로 된 배를 타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공기주입식 고무보트였어요.

이민자, 난민, 망명신청자들을 위한 람페두사 이주민센터 정문 ©Amnesty International

우리가 떠나기 전에 머물고 있던 트리폴리에서 큰 사고가 났어요. 몇몇 사람들이 가스를 사용해 요리했는데 바로 근처에서 담배를 핀 것이었죠. 가스통에 불길을 일어나면서 폭발했고 10명의 사람들이 죽었어요. 우리는 그들을 트리폴리에 묻었어요. 에리트리아에서 온 22명의 사람들은 심한 화상을 입었어요. 그러나 밀수업자들은 강제로 그들이 배에 타도록 했어요.

우리는 4월 16일 밤늦게 배에 올랐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트리폴리를 떠났어요. 배 위에는 심각한 부상자를 포함해 70명이 넘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어요. 소말리아인 45명, 에리트리아인 24명, 방글라데시인 2명 그리고 가나인 2명이었어요.

다음날 아침 9시에서 9시30분쯤 되었을 때 배 위에 이상기류가 돌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배 앞쪽으로 몰려가 구멍에 바람을 넣으려고 애썼어요. 우리는 휴대전화로 구조요청을 했어요. 구조선이 도착할 때까지 6시간이 걸렸어요. 그 6시간은 제 인생 최악의 시간이었어요. 저는 제가 다시 숨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죠. 사람들은 신께 용서를 구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오후 3시가 됐을 무렵, 구조선이 도착했어요. 이탈리아 재무경찰(Guardia di Finanza)이 보낸 회색 배였어요. 저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어요. 배에서 구조된 제 친구들은 모두 무사했어요. 하지만 부상자들은 심한 고통을 호소했어요. 에리트리아에서 온 한 여성은 화상으로 결국 숨졌어요. 다른 여성은 2살배기 아들이 있었는데, 부상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배에 탄 다른 사람들이 그 아이를 대신 보살펴야 했어요. 우리가 람페두사(Lampedusa)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이민자들이 이주민센터에서 람페두사 마을로 통하는 흙 길을 걷고 있다 ©Amnesty International

지금 우리는 보호소에서 지내고 있어요. 식량도 있고 그저 우리를 구해준 신께 감사할 따름이에요. 또, 이탈리아에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어요. 소말리아 사람들은 평화로운 삶과 일자리가 없는 고향을 떠나 계속해서 위험한 여정에 오르고 있어요. 여기 람페두사에서 저는 제 마음에 드는 문구를 발견했어요. 저도 같은 말을 해주고 싶어요.

"정부는 국경이 아닌 생명을 살려야 한다."

*람페두사 이주민센터에 머물고 있는 활동가와 지역병원 관리자에게 확인한 결과, 부상당한 에리트리아 여성과 그녀의 아들은 이후 시실리에서 다시 만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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