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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통신원이 본 이승우

이승우의 매너 문제가 논란이 되기 시작했죠. 물론 저는 유럽에서 이승우의 행동이 용인되는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유럽이나 한국이나 사람 사는 세상은 똑같았고, 축구문화도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유럽에서 매너를 더 강조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티브 김은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팀은 각각 스페인과 카탈루냐 지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항상 자기들이 젠틀맨이라고 생각하는데 자기네들 유니폼 입고 인상을 쓰거나 광고판을 찬다면 아웃이다"라고 했습니다.

  • 김창금
  • 입력 2015.05.08 10:27
  • 수정 2016.05.08 14:12

축구 선수 이승우와 처음 만난 일이 기억납니다. 4월20일 18살 이하 청소년대표팀이 파주 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 소집된 날이었습니다. 머리부터 금발로 염색해서 형들 사이에서도 눈에 확 띄더군요. 그날 훈련을 끝내고 인터뷰를 했는데, 역시 이승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분하면서도 할 말은 다하는 당돌함, 시선은 전방 한 지점에 고정시키면서도 얼굴은 굳어있지 않았습니다. "메시를 뛰어넘는 선수가 되고 싶다"라는 말에선 전율이 왔죠. 메시가 누구인가요. 인간의 얼굴을 한 '축구의 신'이라는 평을 듣는 세계 최고의 선수인데, 그 선수를 뛰어넘고 싶다는 말에서 드러난 자신감이 신선했습니다. 진짜 메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메시도 13살이던 2000년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입단했고, 이승우도 13살이던 2011년 바르셀로나 유스팀과 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르샤라는 팀의 후광은 후광일 뿐이고, 이승우가 가야 할 길은 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나중이었습니다. 이승우가 수원 JS컵 국제청소년대회에서 감독의 교체 사인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플레이가 안 풀린다고 광고판을 차는 행위를 한 뒤죠. 아무래도 이승우의 행동이 낯설어서, '이승우의 신경질, 어떻게 보셨나요?'라는 글을 썼고, 그 뒤 이승우의 매너 문제가 논란이 되기 시작했죠. 물론 저는 유럽에서 이승우의 행동이 용인되는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유럽이나 한국이나 사람 사는 세상은 똑같았고, 축구문화도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유럽에서 매너를 더 강조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겨레> 스페인 통신원인 스티브 김, 독일 통신원인 마쿠스 한에게 물어본 결과가 그렇습니다.

스티브 김은 "바르셀로나 유스에서는 축구 기술보다는 팀워크를 가르친다. 만약 이곳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곧바로 하부리그로 방출시켰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마음 됨됨이가 안 돼 있으면 선수로 성공할 수 없다. 조금 문제가 있는 식으로 행동하면 어릴 때부터 잘라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런 문화의 바탕에는 "축구는 팀"이라는 단체정신과 함께, 지역이나 나라를 대표하는 클럽이라는 자존심이 있습니다. 스티브 김은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팀은 각각 스페인과 카탈루냐 지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항상 자기들이 젠틀맨이라고 생각하는데 자기네들 유니폼 입고 인상을 쓰거나 광고판을 찬다면 아웃이다"라고 했습니다. 세계 톱5 정도 되는 선수들도 예외가 없다고 했습니다. 현재 파리생제르맹의 해결사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바르셀로나에 있을 때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후반 1분 남겨놓고 투입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브라히모비치가 불쾌감을 드러내자 팀 밖으로 방출했습니다.

하물며 이승우는 현재 징계 중인 상태로 바르셀로나 후베닐 A팀의 공식 경기에도 뛸 수가 없습니다. 개인훈련이나 비공식 경기에 출전하는 게 고작입니다. 이런 선수한테 한국 대표팀에서 뛸 기회를 줬는데 그것을 감사히 여기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입니다. 스티브 김은 "스페인에서 이승우가 언론에 가끔 등장하지만, 아직 프로선수가 아니어서 주목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청소년 선수들은 프로도 아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감독에게 복종한다"고 했습니다. 스티브 김의 말을 들으니 이승우의 행동이 아직은 나이 어린 선수의 치기 정도로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마쿠스 한도 "독일식 축구 문화를 보면 감독이 선수를 잡는 스타일이다. 좀 튀는 행동을 하고 팀워크를 이루지 못하면 곧바로 '네가 스타냐'라며 혼쭐을 낸다"고 알려왔습니다. 이영표 해설위원은 과거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위르겐 클롭 도르트문트 감독의 경우 선수단이 같은 자리에서 밥을 먹을 때 핸드폰 소리가 울리면 숟가락이 날아간다"고 했습니다. 훈련 때 핸드폰을 갖고 오면 안 되는 데 규율을 위반한 것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낸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명 정도만 빼고는 유럽의 어떤 선수도 감독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정말 밉보이면 방출을 할뿐 아니라 다른 팀에서도 못 뛰게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의 지도자 문화가 유럽보다 선수들에게 권위적이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사생활은 간섭하지 않아도 경기장에서의 예절이나 매너, 인성은 축구 선수로서 갖춰야 할 기본이고, 그런 것을 강조하는 게 선수의 개성이나 자유정신, 창조성을 말살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유럽의 유청소년 축구 문화에서 확인됩니다. 스티브 김은 "자유분방함도 체계 속에서 자유분방이다. 축구를 혼자 하려면 자영업을 하면 된다"라고 정리했습니다.

후베닐 A에서 뛴다고 해서 본격 프로선수로 대접받는 바르셀로나 B팀으로 승격하기가 쉽지도 않습니다. 바르셀로나 유소년팀 육성 시스템은 7~8살 유치부부터 16~18살 청소년부까지 10여개 연령별로 세분돼 있고, 각 연령별 클럽엔 10~20명의 선수가 있습니다. 이승우는 연령별 팀의 마지막 단계인 후베닐A에서 뛰는데, 여기서 바르셀로나 B팀에 들어가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설령 바르셀로나 B에 진출하더라도 바르셀로나 A팀에 가기는 더 힘들다고 합니다. 스페인 대표팀 선수인 무니르 엘 하다디(20)는 유럽 최고의 샛별이라는 칭송을 듣지만, 바르셀로나 A팀에는 가끔 불려 올라갈 뿐이며 여전히 B팀에 있다고 합니다. 가뜩이나 이승우는 내년 1월6일까지 경기에 나서지 못하니까 불리한 상황이죠.

공부하는 지도자 출신인 하재훈 K리그 감독관은 "천재성과 성실함 두 가지 기준으로 선수를 선택한다면 성실한 선수를 택하겠다. 선수로서 오래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박지성과 이영표가 성실파의 대표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2000년 허정무 올림픽팀 감독이 명지대에 다니던 박지성을 뽑았을 때 박지성을 아는 축구팬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일부에선 "허 감독이 김희태 명지대 감독하고 바둑 두다가 뽑았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박지성은 2002 한일월드컵의 영웅이 됐고,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을 거쳐 잉글랜드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까지 10년 이상을 한국 축구의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1999년 코리아컵을 앞두고 허정무 감독은 건국대에 다니던 이영표를 발탁했습니다. 이영표가 신출내기이던 시절 동년배 최고의 선수는 고종수, 이관우였습니다. 이영표는 처음 등장했을 때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표팀에서 100경기 이상 뛰며 한국 축구의 대들보 구실을 한 것은 이영표였습니다.

반짝 떴다가 질 위험이 있는 것보다는 성실함으로 재능을 끌어올리는 것이 현명하고 현실적이라는 얘기입니다. 더욱이 17살 나이대에서는 한두 달 사이에 기량의 우월이 역전되는 경우가 있다고도 합니다. 이영표 해설위원은 "대표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5~6번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 위기를 벗어날 힘은 인내심"이라고 했습니다. 대표 선수로 발탁됐다고 해도 뛰지 못하고 사멸하는 선수가 있습니다. 뛰어도 몇 번 뛰지 못하는 선수가 있습니다. 많이 뛰어도 뛸 때마다 잘해야 합니다. 이런 위기를 넘고 넘어 장수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승우는 분명 천재적인 선수입니다. 그러나 성장의 정점인 20~22살까지 과연 더 발전할 수 있는지는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이승우의 천재성이 한국 축구의 값진 자산으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장수하는 선수'가 되기 위한 현명한 선택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이승우 본인이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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