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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짬뽕을 알아?

우리 짬뽕의 역사 중에 어느 '순간' 돼지고기와 돼지 뼈가 사라져버렸다. 몇몇 중식당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기는 하다. 굳이 군산이니 어디니 갈 것도 없다. 인천이 그곳이다. 두툼하고 시원한 국물, 질기지 않은 면. 내가 오래전 짬뽕의 표준으로 삼던 그것과 닮았다. 차이나타운 말고도 옛 인천의 구도심과 그 주변에는 이처럼 오래된 중국집들이 있다. 주말에 전철 표 한 장 들고 추억의 맛 여행을 떠날 수 있으리라.

  • 박찬일
  • 입력 2015.05.07 08:12
  • 수정 2016.05.07 14:12
ⓒ한겨레 / 박미향

고등학생 시절에 잘 가는 분식집이 있었다. 당시엔 서울 곳곳에 정통(?) 분식집이 많았다. 물만두와 찐만두 같은 역사가 오래된 음식을 팔았다. 이런 음식은 본디 '호떡집'이라고 부르는 중국식 밀가루음식에서 역사가 시작된다. 개화기에 청나라 사람들이 인천과 서울에 들어와 시작한 일이니, 아주 역사가 깊다. 이런 분식집에서 학생들은 '미팅'을 하곤 했다. 물만두를 건져 먹으며 하던 미팅이라니. 상상이 안 갈 것이다. 본디 '면'(麵)이라는 요리는 꼭 국수만을 이르는 것은 아니었고, 밀가루로 만드는 음식의 총칭이었다. 그래서 국수와 빵, 만두를 함께 파는 중국식 음식점이 이 땅에 분식문화를 일구어왔다. 한국 외식사에서 분식점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는 멀리 개화기의 중국인에게서 비롯한 셈이다. 어쨌든 잘 가는 분식집의 명물은 의외로 짬뽕이었다. 구레나룻을 멋지게 기른 아저씨가 원래 중식당 출신이라고 했다. 고추기름이 거짓말 보태서 1㎝는 되도록 두껍게 뽑아서 국물 위에 넓게 퍼져 있는데, 전혀 느끼하지 않았다. 공장에서 만든 고추기름이 아니라 불 조절을 해가며 '웍'(사진)이라고 부르는 큰 냄비에서 살살 볶아낸 수제이기 때문이다. 주방장 아저씨가 한가한 시간에 닭 뼈를 손질하던 장면, 고추기름을 볶아두느라 덜그럭덜그럭 웍을 놀리던 모습도 생각난다. 면은 수타면은 아니었지만, 아주 부드럽게 잘 뽑았고 무엇보다 고명이 최고였다. 별다른 해물도 없이 잘게 자른 고기가 수북하게 올라 있는 것이었다. 한국의 중국요리에서 슬(絲)이라고 부르는, 길쭉길쭉 자른 고기를 센 불에 빠르게 볶아 탄 듯한 스모키 향을 내면서 국물의 맛을 끌어올렸던 것 같다. 국물에 늘 고춧가루 입자만한 검은 물체(?)가 떠다녔는데, 이게 바로 세게 '불질'을 제대로 한다는 증거품이었다.

학교 앞 분식집이니 면은 산더미처럼 넣어주었고, 국물도 그릇이 넘치도록 찰찰 담아주었다. 그 짬뽕은 요샛말로 '마약 짬뽕'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닭 국물과 돼지 뼈로 곤 두툼한 국물, 막 뽑은 싱싱하고 탄력 있되 너무 질기지 않은 면, 텁텁하지 않고 개운한 고추기름, 불에 지진 고소한 돼지고기 고명. 아아, 이것이 진짜 짬뽕이 아니고 무엇이던가. 하루에 두 번을 먹어도 물리지 않는 짬뽕. 이 집에서 라면을 시키는 아이들을 나는 은근히 경멸하였다. 짬뽕도 모르는 녀석들.

우리 짬뽕의 역사 중에 어느 '순간' 돼지고기와 돼지 뼈가 사라져버렸다. 몇몇 중식당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기는 하다. 굳이 군산이니 어디니 갈 것도 없다. 인천이 그곳이다. 지금은 국자를 물려주었지만 팔십 노구를 이끌고 만두 빚기 같은 기본 요리를 하는 주방장이 있는 전설적인 중국집이 있다. 중구 신흥동에 있는 신일반점이다. 이 집에서 초마면이라고 부르는 짬뽕을 받아 들고 나도 몰래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슬'로 자른 돼지고기가 고명으로 얹어져 있는 게 아닌가. 두툼하고 시원한 국물, 질기지 않은 면. 내가 오래전 짬뽕의 표준으로 삼던 그것과 닮았다. 차이나타운 말고도 옛 인천의 구도심과 그 주변에는 이처럼 오래된 중국집들이 있다. 주말에 전철 표 한 장 들고 추억의 맛 여행을 떠날 수 있으리라.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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