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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서평가와 웃기는 것만 못하는 서평가의 책 이야기

형식이 파격적이고 독특할 뿐만 아니라 추천도서의 목록도 이채롭다. 가령 '연애달인으로 만들어주는 책 10+1'이란 꼭지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읽어주기 가장 좋은 시라는 이유로 <입 속의 검은 잎>과 닳을 대로 닳은 연재 스킬이 담긴 <리스크 없이 바람피우기>를 함께 소개한 쿨함은 그 어떤 책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매력이다.

  • 박균호
  • 입력 2015.05.06 12:19
  • 수정 2016.05.06 14:12

[잡식성 책장]<북톡카톡> 김성신 남정미 공저, 나무발전소

독서를 좋아하다보면 반드시 부딪치게 되는 벽이 두 개 있다. 우선 책을 둘 공간이 부족하게 된다. 오디오 취미의 끝은 큰 집이라고 하지만 책도 마찬가지다. 장서가의 기준이 대략 3천권이라고 보는데 3천권의 책을 보관할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독자는 거의 없다. 오죽하면 아파트가 몇 권의 책을 지탱할 수 있는지 건설회사에 문의하는 독서가가 있겠는가? 독서가가 만나게 되는 두 번째 장벽은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이다. 초보 독서가나 장서가는 우선 이 책 저 책 할 것 없이 일단 모으고 보지만 결국 공간의 압박에 시달리게 되거나, '내가 대체 이 책을 왜 돈을 주고 산거야?'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책을 자주 만나게 되면 평생을 함께 할 '좋은 책'을 찾기 마련이다.

즉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 읽고 나서 여운이나 감동이 남는 책, 참고할 만한 책, 책장에 두고 오래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을 찾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타난 장르가 책에 대한 책 즉 독서에세이다. 나도 어쭙잖은 독서에세이를 2권이나 낸 만큼 대중적이고 각광받는 장르라서 수많은 관련 서적이 널려있다.

나 또한 독서에세이를 좋아해서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요즘에는 그다지 손이 가지 않는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매한가지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실 최근에도 봇물처럼 쏟아지는 독서에세이는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이 대동소이한 것이 불만이다. 만약 독서에세이에 눈길을 처음 돌리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목록을 말하라고 한다면 개인적으로 네 저작이 떠오른다.

지적이며 독서로 하는 유희의 끝판왕 <서재 결혼시키기>, 유려한 한국어로 쓰인 독서에세이의 고전 <행복한 책읽기>, 꾸준함과 광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장정일의 <독서일기>, 하도 방대하고 그 깊은 지식에 감탄한 나머지 책은 읽지 못하더라도 저자와 책이름만이라도 꼭 기억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고 최성일 선생의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이 그것이다. 독서에세이에 손을 대고 싶은데 그 많은 독서에세이를 다 읽을 수가 없다면 이 네 저작이면 얼추 기본은 하겠다는 생각이다.

최근 전문서평가 김성신과 개그우먼출신의 뉴페이스 서평가 남정미씨의 <북톡 카톡>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그저 '좀 웃기게 서평을 쓴 책'이려니 생각했다. 더구나 책 제목에 '카톡'이 들어가다니 조금 오버한 게 아닌가 하는 선입견마저 가졌더랬다. 그런데 막상 손에 넣고 읽어보니 내 예상을 빗나갔다. 비록 '웃기는' 서평집을 표방했기는 하나 책의 만듦새나 디자인을 살펴보니 얼마나 정성을 들여서 펴낸 것인지 알겠다.

지금까지의 서평집과는 전혀 다른 포맷 즉 일상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는 대화로 책소개를 이끌어내는 재주가 탁월했다. 더구나 두 서평가의 대화는 재미있는 만담과 진지한 사회 비판을 현란하게 넘나든다. 내가 앞서 언급한 독서에세이 4대 천황에 이 책을 슬쩍 들이미는 것은 다소 개인적 취향이 반영된 듯하나 4대 천황을 읽다가 색다른 요깃거리가 생각난다면 이 책을 우선순위에 넣고 싶다는 게 개인적인 의견이다. 간편하게 구해서 먹을 수 있지만 넉넉하게 배를 불려주는 두툼한 햄버거 같은 책이다. 실제로 두 서평가의 카카오톡 대화를 고스란히 책으로 담아 낸 이 책은 가볍지만 진중한, 웃기지만 슬픈, 짧지만 긴 여운을 선사한다.

가령 이런 구절이 그렇다.

정미: 난 이대목이 정말 웃기던데...

이대로 가다간 '디지털 관'도 나온다잖아요. 관 뚜껑에다 터치스크린 달아서 숨넘어갈 때까지 게임을 할 수 있게 고안된 전자관! 푸핫.

성신: "난 이것도 웃겼어. 평생 동안 트위터만 쓰다 가신 뮐러 여사 이야기. 뭘러 여사: 나 지금 죽었다.(이 메시지에 36명이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새로운 기계가 나오면 그걸 장만하느라 등골이 빠지고 손바닥만한 기계의 사용방법을 익히기 위해서 두툼한 매뉴얼을 읽느라 정작 자신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현대인의 딜레마를 유머스러운 필체로 비판한 <난 단지 토스터를 원했을 뿐>을 소개하면서 나온 이야기다.

이 책의 다른 매력은 철저하게 서기 2015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매일 부딪치는 사회현상과 연관된 책이 언급된다는 사실이다. 공동저자이자 방송인인 남정미씨가 갑의 횡포로 졸지에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든지(갑과 을의 나라), 카페의 옆자리 고등학생들의 욕설 섞인 비속어를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라든지(100명 중 98명이 틀리는 한글 맞춤법), 여자 친구에게 명품 백을 사주려고 자신의 콩팥을 팔아 버린 한 청년의 뉴스를 접한 상황(런던의 착한가게)에서 관련된 읽을 만한 책을 이끌어내는 재주가 탁월했다.

형식이 파격적이고 독특할 뿐만 아니라 추천도서의 목록도 이채롭다. 가령 '연애달인으로 만들어주는 책 10+1'이란 꼭지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읽어주기 가장 좋은 시라는 이유로 <입 속의 검은 잎>과 닳을 대로 닳은 연재 스킬이 담긴 <리스크 없이 바람피우기>를 함께 소개한 쿨함은 그 어떤 책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매력이다.

다만 차기작에서는 좀 더 목록을 추려서 심도 있는 두 서평가의 대화를 기대하면 욕심일까?

웃기는 두 서평가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독서에세이를 넘어서 좋은 사회현상비평서가 될 수 도 있겠다 싶다. 여러 가지 요리에 단골로 등장하는 재료가 소중한 것처럼 다양한 관점으로 달리 읽히는 책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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