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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원칙' 대통령 + '예스맨' 외교 장관 = 한국 외교?

  • 허완
  • 입력 2015.05.06 05:44

한국 외교가 미-일 밀착, 중-일 관계개선 모색, 남북관계 단절 등 3각 파도에 휘청거리고 있다. 고차 방정식의 해법을 찾지 못하는 외교 리더십의 무능력과 전략 부재가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특히 국정 최고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과 외교 사령탑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수직적 일체화’ 구조가 한국 외교의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4일 벌어진 상황은 박근혜-윤병세 외교 리더십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여야 의원들은 이날 국회에 출석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향해 “일은 하는데 결과가 없다”, “한국 외교가 실종됐다”며 사퇴를 촉구하는 등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최근 ‘미-일 신밀월’ 등의 국면에서 한국 외교의 무기력함을 강하게 질타한 것이다. 하지만 같은 시각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일본이 스스로 과거사 문제에 매몰되어가고 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우리가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라며 정부 책임론을 반박했다. 동시에 “한-미 동맹과 한-일, 한-중 관계 등은 사안에 따른 목표 달성을 위해 앞으로도 소신있게 노력을 기울여달라”며 외교라인에 대한 재신임 방침을 분명히 했다. 한국 외교 전략이 박 대통령 자신의 뜻에 따른 것임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선 외교 분야 성과 진단에서 이처럼 정부와 여당을 비롯한 국회 사이 엇박자가 심각하게 된 이유와 관련해, 먼저 ‘박 대통령과 윤 장관’, ‘청와대와 외교부(외교안보 라인)’ 사이의 수직적이고 경직된 관계를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외교부가 이런저런 정보를 바탕으로 전략적 판단을 하고 학계나 외교분야 전문가 집단 등과 두루 소통하는 게 아니라, 청와대의 지침만을 일방적으로 집행하는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윤 장관을 겨냥한 여야의 ‘사퇴 촉구’ 역시 박 대통령에게 외교정책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직접 물을 수 없는 상황에서 불거져 나온 항의 성격이 짙다. 여야가 경제나 사회 등 ‘내치’가 아닌 외교장관의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기도 하다.

지금의 외교적 무기력 상태가 박 대통령과 윤 장관의 스타일이 빚은 결과라는 혹평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전문성과 전략적 방향성이 모호한 상황에서 ‘원칙론’을 고집하고, 윤 장관을 포함한 외교안보 분야 참모 누구도 이에 대해 쓴소리를 하지 못하다 보니, 외교가 국내 정치의 수단 또는 홍보용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정부 초반 해외 순방만 다녀오면 전임 대통령에 비해 국정 지지율이 크게 뛰는 현상이 반복된 것도 결과적으로 ‘외교 분야만큼은 잘하고 있다’는 착시 효과를 낳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의 전직 고위 당국자는 “(윤 장관은) 독자적인 시각이나 색깔을 지닌 전략가라고 할 수 없는 전형적인 외교 관료”라며 “그때그때 정부 분위기에 맞춰 보고서를 올리고, 지시에 따르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청와대 회의 때 보면 자기 의견을 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박 대통령에 맞춰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충실히 수행하면서, 약간의 포장을 더해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분간 한국 외교가 수장 교체 등 큰 틀의 방향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윤 장관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지금껏 장관직을 유지하고 있는 최장수 장관 중 한명일 정도로 박 대통령의 신뢰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윤 장관 특유의 성실성’을 꼽는다. 과거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나 측근 참모가 새벽 2시에 전화를 해도, 윤 장관은 언제나 벨이 3번 울리기 전에 받는다”며 그의 업무 스타일을 전한 적이 있다. 밤 11시에 외교부 국장들을 불러모아 회의를 하는 등 ‘일벌레’ 이미지도 박 대통령의 신뢰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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