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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이득'은 괜찮고 '개쌍도'는 안 괜찮은 이유

최근 우리는 새로운 단계에 직면했다. 최근 몇 년 가장 빈번하게 수면위로 올라오는 문제의 용어들은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 소위 말하는 '혐오 언어'들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 사용'이 잘 모르고 습관처럼 사용하던 일상어에서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는 행위였다면, 혐오 단어들은 조어의 목적 자체가 '현실의 왜곡'이다. '설라디언'이라는 단어가 그 좋은 예다. 부산대학교 맞춤법 검사기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전라도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단어를 만들어 전라도 출신의 서울 사람을 구분할 필요를 느껴서 이런 단어가 생겼나?

  • 박세회
  • 입력 2015.05.06 11:33
  • 수정 2016.05.06 14:12
ⓒ연합뉴스

"홈플러스 개이득! 욕 한 번 먹고 226억 꿀꺽했네!"라는 한 신문사의 제목을 보고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속으로 '이런 미친'이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지만, 잠시 후 다시 '개살구', '개떡', '개망나니'라는 단어를 생각해보니 그다지 웃을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개미남'과 '개드립'이라는 신조어가 표준어로 등재되기 직전의 과도기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년 국립국어원은 '뇌섹남', '부먹파'를 비롯해 334개의 신어를 발표했다. 심지어 이 중에 '개이득'은 들어 있지도 않다. 수면 아래, 게이머들과 폐쇄적인 커뮤니티 유저들 사이에는 또 얼마나 멋지고 희한하고 기괴한 단어들이 숨어있을까? 인터넷과 모바일이 활성화되고 SNS를 통해 누구나 칼럼니스트가 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도래했고 한국어는 이에 발맞춰 '개미친' 속도록 내달리며 변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속도로 어떻게 달려야 할까?

때마침 서점에 갔다가 '학교를 덜 다녔으면 오래 공부한 사람의 책이라도 읽자'는 생각에 고종석의 <언어의 무지개>라는 책을 샀다. 라틴, 그리스어 기반의 유럽어군과 한(문)자 기반의 일본어, 중국어까지 아우르는 필자의 해박한 지식 세계로 떠나는 여행은 무척 흥미로웠지만, 더욱 매혹적인 건 '오는 말 막지 말고 가는 말 잡지 말자'는 그의 자유로운 언어관이었다. 문득 얼마 전에 봤던 한 회사의 홈페이지 문구가 떠올랐다.

그야말로 아방가르드한 language 익스프레션이 아닐 수 없다. '맥북'은 알파벳으로, 'detail'은 음차해서, 마지막엔 순우리말 '톺아보기'로 정점을 찍었다. 웹 게시판에서 '애플 홈페이지에 오타가 있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고 심지어 몇몇 매체에 기사가 나기도 했다. 촌극이다. 사과 社가 'closer look'을 '톺아보기'로 쓰게 된 이유는 뭘까? 이 문구를 작성한 사람이 순우리말 쓰기에 경도되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외래어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엔 충분했다.

유독 우리나라는 외침이 많아서인지 외래어의 유입을 강박적으로 싫어한다. 예를 들면 국립국어원은 한글로 된 신어는 때가 되면 표준어로 올려주겠다고 하면서도 '헤드셋', '팔로워', '소셜네트워크'는 '통신머리띠', '딸림벗', '누리소통망'으로 바꿔 쓸 것을 권한다. 물론 동의할 수 있는 순화도 있고 힘든 순화도 있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마치 외래어는 '통관'을 거쳐 가져와야 한다는 듯한 전체주의적 사고다.

얼마 전 허핑턴포스트의 한 블로그 중 성 정체성을 감춘 게이 남편과 결혼한 여성의 고백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기사의 한국어 편집자는 그 제목을 '나는 클로짓 게이와 결혼했다'고 뽑았다. '클로짓 게이'라면 두 단어로 표현될 걸 풀어쓰는 게 비경제적(웹에서 긴 제목은 사람들이 잘 안보니까)이기도 하거니와 '커밍아웃'의 반대 의미로 '클로짓'(옷장에 숨어있다는 뜻)을 사용하는 게 직관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 관세가 붙으면 이 단어는 어떻게 바뀔까? '옷장비역남'이 되어야 할까?

고종석의 '외래어가 어떻게 됐든, 그것들을 인위적으로 몰아내 한국어를 순화하겠다는 충동은 근본적으로 전체주의적이라는 점이 강조돼야 한다'는 발언에 동의하고 싶은 이유다. 조금 더 나가자면, 비록 허세일지언정 아령보다 '덤벨'을, 계피보다 '시나몬'을, 전설보다 '레전드'를 좋아할 자유가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딱히 외래어 쓰기를 즐겨서는 아니다. 언어를 순화하는 방향성을 얘기하자면 민족주의적 문제 제기보다는 정치적 올바름을 따지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고종석의 말을 또다시 빌리면, "현실은 언어 이전에 있는 것이어서 언어를 바꾸려는 노력이 고스란히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될 수는 없겠지만, 언어의 비틀림을 응시하는 일은 현실의 비틀림을 살피는 첫걸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비틀림으로 현실의 비틀림을 발견할 수 있는 예는 곳곳에 있다. 지난 2월 영국의 TV 시리즈 <셜록>의 주인공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내가 바보였다"며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다. "내 친구 중에 유색인종(Coloured)인 배우들이 영국에서 일자리를 잡지 못해 미국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발언 때문이었다. 백인과 비교해 다른 모든 인종을 '유색'이라고 표현한 게 문제였다. 10년 전이라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발언이다. 우리가 찾아내서 순화해줘야 하는 게 바로 이런 말이다. (미국에서) 사회적 약자, 듣는 '유색인'이 기분 나쁘지 않게 언어의 균형을 맞춰 주는 일 말이다.

사실 사회적 약자의 권리 측면에서는 영어도 언어의 비틀림을 통해 현실을 재인식한 역사가 그다지 오래되지 않는다. 빌 브라이슨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1975년 미국 여성기구의 회장 카렌 C.드크로가 여성 비하적인 단어들을 '정치적으로 공정(Politically Correctness)'하지 못한 단어라 천명하며 시작됐다. 이는 하나의 운동으로, 영어에서 'Manhole', 'Fireman' 등 남성에 기반을 둔 대략 2만 개 어휘를 도마에 올렸고 후에 여성뿐 아니라 다양한 소수 차별적 언어에까지 영향력이 번져 Nigger(흑인 비하), Chink(중국인 비하), Fag(성 소수자 차별) 등 잘못된 단어를 몰아내는 데 한몫을 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흐름은 있다. 예를 들면 이제는 누구도 공식 석상에서 '불구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한때 '장애자'나 '장애우'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者)라는 글자가 주는 '놈'이라는 훈과 '우'(友)라는 글자가 주는 괜한 친한 척이 대상을 불편하게 한다는 걸 한국어 사용자들이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런 운동을 이끄는 여러 단체, 즉 여성가족부나 국립국어원의 언어 순화 노력이 가끔 논쟁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잘못된 언어 사용에 의문을 던진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가 있다.

이제는 아무도 한국 사회에서 '비만 모델'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물론 이 단어도 좀 더 나은 표현이 나온다면 자리를 내줘야 할 만큼 문제가 있는 단어긴 하다)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남녀평등'은 '양성평등'으로 바꿔 말하고, 자칫 다양한 성 정체성에 왜곡을 줄 수 있는 위험 때문에 '동성애자'라는 편협한 단어 대신 '성 소수자'를 주로 사용한다. 언론인으로서 맞춤법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게 바로 '평등한 언어'의 사용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적극적인 순화가 필요한 상황에 직면했다. 최근 몇 년 가장 빈번하게 수면위로 올라오는 문제의 용어들은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 소위 말하는 '혐오 언어'들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 사용'이 잘 모르고 습관처럼 사용하던 일상어에서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는 행위였다면, 혐오 단어들은 조어의 목적 자체가 '현실의 왜곡'이다. 예전에 아버지들이 운전대를 잡고 '김 여사'를 욕하던 것과 같은 양상이지만 훨씬 더 폭력적이고 더럽고 무섭다.

'설라디언'이라는 단어가 그 좋은 예다. 부산대학교 맞춤법 검사기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전라도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단어를 만들어 전라도 출신의 서울 사람을 구분할 필요를 느껴서 이런 단어가 생겼나? 이게 무슨 '히스패닉 아메리칸'처럼 인종 통계를 내기 위해 만든 말인가? 아니다. 이 단어는 전라도 사람을 구분해 내고 악의적 왜곡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낸 것이다. '김치년'은 또 어떤가? 이것 역시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카톡 대화'나 가장의 소개팅 사연을 인터넷에 뿌려대며 여성 혐오자들이 만들어 낸 용어다.

특정 게시판의 정치색을 드러내기 위한 단어들도 문제다. '노무노무'라는 단어를 아이들이 듣는다고 생각해보라. 고인이 비하의 대상이라는 왜곡된 프레임을 갖게 되지 않을까? '수꼴', '좌빨'이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다. 보수주의자에게 '수구 꼴통'이라 하고, 진보주의자에게 '좌파 빨갱이'라고 일컫는 행위는 애초에 대화를 단절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어린 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게시판 이용자'의 줄임말인 '게이' 역시 마찬가지다. '게이'(gay)를 비하할 목적이 없었다면 이런 줄임말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 것이다.

고종석의 '언어의 무지개'

'언어의 무지개'에서 답을 찾아보려 했지만 실마리를 찾을 길이 없다. 아뿔싸. 그는 이미 절필을 선언했고 이 책은 2007년까지의 글만을 모은 에세이 집이었다. 아, 막막하다. 우리는 폭력에 가까운 일상어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가?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그르고를 따질 수준이 아니라 단어의 존재 자체가 폭력인 언어에 우리는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가?

언젠가는 없어질 언어고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그런 순진함을 버려야 한다. 편집자로서 하루에도 수십 개의 게시판에서 동향을 파악하다 보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날 만큼 깜짝 놀라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린아이들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면역력 없는 아이들의 의식이 기형적 언어에 폭행당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현재 '개쌍도', '홍어', '멍청도', '감자국' 등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대표적 단어들을 인터넷에 올리면 적잖은 벌금을 물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고종석의 말대로 이런 정책이 고스란히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건 물론이고 특정 지역에 대한 발언뿐 아니라 성 소수자, 여성, 반대 정치성향에 대해서 그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혐오가 더 번지면 손쓸 도리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 물론 선관위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논의는 또 다른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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