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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가 되지 말았어야 했을까요?

돌이 지나고도 걷지 않았던 아들 녀석은 결국 발달지연 판정을 받았다. 걷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인지, 언어 등 전반적인 발달 부분이 또래에 비해 늦다는 게 의사의 결론이었다. 육아가 힘들었던 고비마다 애써 '괜찮아 괜찮아 잘하고 있어' 스스로 위안을 내렸던 나만의 마법도 이때만큼은 통하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무너져 내렸다. 마음이 너무 힘든 나머지 재활의학과 교수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이가 느린 게 엄마 때문일까요. 제가 이 아이를 잘못 키워서 이렇게 된 걸까요?" (의사는 그런 나에게 '엄마 탓이 아니라고, 그냥 아이가 느린 것일 뿐'이라고 이야기 해줬다)

  • 송선영
  • 입력 2015.05.04 11:14
  • 수정 2016.05.04 14:12
ⓒ송선영

[얼렁뚱땅 육아일기 #5] 나는 엄마가 되지 말았어야 했을까요?

'자책하지 말자'

이는 내 육아의 모토이다.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의 자책이라 생각한다. 아니 생각했다.

모든 이들의 육아가 다 어렵고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겠다만, 나는 정말이지 육아가 너무 힘들었다. 물론 지금도 힘들고 버겁다. 태어나자마다 예민했던 아이는 지독하게 영아산통을 앓았고 엉덩이 쪽에 꽤나 큰 딤플 구멍을 가지고 태어났다. 또 한 쪽 고환이 내려오지 않아 잠복고환 진단을 받아 수술을 했고, 돌이 지나서는 발달지연이라는 판단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큰 대학병원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고 독하디 독한 수면제를 먹어가며 MRI 등 큰 검사도 여러 번 해야 했다.

나는 출산 직후 배냇저고리를 입고 있던 작디 작은 아이를 속싸개에 싸 큰 대학병원을 찾아야 했다. 아이가 왜 우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초보엄마였던 나는 건강하게 태어났으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아이가 겪고 있다는 생각에 눈물만 펑펑 쏟았다. 뱃속에 있었던 열 달 동안 아이를 제대로 품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가장 컸다. 모든 것이 다 나의 탓인 것만 같았다. 제대로 태교를 못해서 지금 이 아이가 이 큰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온 것만 같아 속상하기만 했다.

이후, 아들 녀석은 생후 8개월 무렵에 잠복고환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날 수술 동의서를 쓰는 과정에서 담당 간호사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잠복고환 수술은 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수술 중에서 가장 간단한 수술이에요"라며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 간단한 수술을 지켜보는 부모의 가슴은 녹아 문드러졌다. 수술 전 8시간 금식과 수술 후 6시간 금식을 어린 아이가 견뎌내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었지만, 수술 직후 회복실에서 만난 아이가 생전 처음 듣는 이상한 소리로 꺼이꺼이 울어가며 아픔을 호소하던 그때 그 순간은 지금도 나에게 가장 큰 상처로 남아있다.

자책하지 않으려 했지만 자책감이 들 수밖에 없는 날들은 계속됐다. 돌이 지나고도 걷지 않았던 아들 녀석은 결국 발달지연 판정을 받았다. 걷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인지, 언어 등 전반적인 발달 부분이 또래에 비해 늦다는 게 의사의 결론이었다. 육아가 힘들었던 고비마다 애써 '괜찮아 괜찮아 잘하고 있어' 스스로 위안을 내렸던 나만의 마법도 이때만큼은 통하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무너져 내렸다. 마음이 너무 힘든 나머지 재활의학과 교수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이가 느린 게 엄마 때문일까요. 제가 이 아이를 잘못 키워서 이렇게 된 걸까요?" (의사는 그런 나에게 '엄마 탓이 아니라고, 그냥 아이가 느린 것일 뿐'이라고 이야기 해줬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이때부터 '자책하는 엄마가 되지 말자'란 굳은 결심을 하게 됐다. 쉬운 육아는 아니었지만 괜찮다고, 다른 아이보다 느리지만 괜찮다고 자책이 아닌 위안을 삼기 시작했다. 어쩌면 미쳐버릴 것 같았던 시간 속에서 숨을 쉬고 싶어 부단히 발버둥을 쳤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내 스스로 씩씩하게 이겨내고 있다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1년간 이어졌던 아들 녀석의 집중 재활치료도 버틸 수 있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매일 이어진 빡센 재활 치료였지만 또래보다 느린 아들 녀석이 감당해야 할 인생의 몫이라 여겼고 동시에 느린 아들을 둔 부모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 여겼다.

하지만 꾹꾹 참아 괜찮다고 생각했던 그 부분들이 사실은 괜찮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 들어 부쩍 아이에게 화를 내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도 내 감정을 담아 아이를 호되게 혼내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엄마가 되지 말았어야 했나'라는 자책감이 다시금 든다. 한순간도 순탄하지 않았던 육아에 대한 화풀이를 애꿎은 아들 녀석에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반성을 해본다.

다시 마음을 부여잡아 본다. 오늘까지만 자책하되 더는 자책하거나 우울해하지는 않겠다. 여러 모로 부족함 많은 실수투성이 엄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되길 참 잘했다. 꽃보다 예쁜, 웃는 모습이 참 예쁜, 아이가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다짐하지만 분명 나는 또 내일 아들에게 헐크 같은 모습을 보이겠지. 아들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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