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메이웨더 우세? 파퀴아오 왼손 훅이 복병...오늘 ‘세기의 대결'

  • 강병진
  • 입력 2015.05.03 08:08
  • 수정 2015.05.03 08:12

▶ 6년을 끌어온 두 복싱 챔피언이 맞붙는다. 사상 최초로 8체급을 석권한 매니 파퀴아오(36·필리핀)와 5체급 석권과 함께 무패 행진을 기록중인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가 3일 낮 12시(한국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복싱기구(WBO), 세계복싱평의회(WBC), 세계복싱협회(WBA) 웰터급 통합타이틀을 놓고 위험한 승부를 벌인다. 2억5000만달러(약 2700억원)의 대전료뿐 아니라 두 위대한 복서의 마지막 자존심이 걸려 있다.

매니 파퀴아오와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는 현존하는 최고의 복싱선수지만 어느덧 30대 후반에 이르러 정점은 지나가고 있다. 향후 재대결 등의 변수도 있겠지만 두 선수의 복싱 인생에서 최후의 승부처임은 분명해 보인다.

메이웨더는 이미 은퇴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최근 <시엔엔>(CNN)과의 인터뷰에서 오는 9월께 한 경기를 더 치른 뒤 은퇴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47승 무패인 메이웨더는 헤비급의 전설 로키 마르시아노가 이룬 49전49승이라는 가까운 목표가 있다. 하지만 그에게 기록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메이웨더는 “50경기 무패가 당신에게 특별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겐 아니다”라고 말하고 “이제 쉴 때가 됐고 은퇴한다면 더 이상 복싱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이웨더는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만한 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의 별명은 머니(Money)다. 그의 아버지 플로이드 메이웨더 시니어(63) 역시 영국 신문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파퀴아오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링에서 내려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복싱은 도박과 같다. 그 정도 돈을 벌었다면 이제 됐다”고 말했다.

“사형수에겐 다 들어주지 않나요?”

파퀴아오 역시 은퇴를 고려할 시기다. 2013년 필리핀 하원의원에 재선되면서 그의 인생은 새로운 진로를 모색할 때다. 2012년 2연패를 당하며 은퇴설이 나돌자 그는 “내 복싱 인생은 2~3년 더 연장될 수 있다고 본다”며 재기 의욕을 불태웠다. 그는 이후 훌륭히 재기에 성공했지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이번 대결을 성사시키면서 두 가지를 메이웨더에게 양보했다. 대회 직전 소변과 혈액으로 약물 복용 여부를 검사하자는 요구를 수용했고, 대전료의 불평등한 분배에도 동의했다. 이는 물론 파퀴아오가 도전자 입장을 취해 40 대 60으로 적은 쪽의 돈을 받는 것에 대한 합의였다. 2009년 메이웨더가 처음 혈액 검사를 요구했을 때만 해도 펄쩍 뛰었다. 그는 최초로 여덟 체급을 석권했으면서도 도전자가 된 입장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오랜만에 도전자 입장에 서기 때문에 오히려 더 동기부여가 되고 용기와 집중력을 얻을 수 있다.” 또 그는 “사형수에게는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지 않나요?”라는 농담도 던졌다.

두 사람은 경기 스타일이 정반대다. 파퀴아오는 전형적인 인파이터다. 좀처럼 뒤로 물러서지 않고 상대 품으로 끊임없이 파고들며 주먹을 던진다. 작은 키(169㎝)와 짧은 팔(리치 170㎝)인 그에게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다. 파퀴아오가 창이라면 메이웨더는 방패다. 무수한 펀치를 피하며 틈이 생길 때마다 주먹을 날려 점수를 쌓는다. 상대 펀치를 어깨로 막거나 튕겨내는 ‘숄더롤’은 예술의 경지라는 평가다.

두 사람의 세기의 대결은 메이웨더 쪽이 좀더 유리해 보인다. 도박사들은 이미 메이웨더 쪽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있다. 여러 베팅 업체의 현황을 정리해 보여주는 사이트 ‘오즈 체커’에 따르면 ‘판’을 벌인 업체 대부분이 파퀴아오의 승리에 더 높은 배당률을 매겼다. 이는 메이웨더의 승률이 높다는 뜻이다.

국내 복싱 전문가들의 예측도 메이웨더 쪽으로 기울고 있다. 황현철 한국복싱위원회 홍보이사는 지난 3월 초 국내 복싱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100명 중 62명이 메이웨더의 승리를 점쳤고, 31명만이 파퀴아오의 승리를 예상했다. 메이웨더의 승리를 점친 62명 중 51명이 판정승을 예상했다. 황 이사는 “메이웨더는 영악한 이미지인 반면 파퀴아오는 친근하고 서민적이어서 강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파퀴아오의 경우 플라이급(50.8㎏)에서 시작해 여덟 체급을 석권했지만 메이웨더는 슈퍼페더급(59㎏)에서 시작했다”며 “이번 대결은 웰터급(66.67㎏)에 맞추고 있지만 평소 체중이 갖는 힘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메이웨더의 우세를 점치는 또다른 의견으로는 그의 깔끔한 경기를 지적한다. 치고 빠지는 깨끗한 경기로 웬만하면 펀치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만큼 파퀴아오가 펀치를 성공시키기가 힘들다. 그러나 황 이사는 국내 복싱 전문가의 90% 정도가 파퀴아오의 승리를 응원했다고 전했다.

반면 박시헌 복싱 국가대표 감독은 파퀴아오의 우세를 점쳤다. 박 감독은 “파퀴아오는 왼손 받아치기가 뛰어나다”며 “특히 파퀴아오의 왼손 훅은 잘 보이지 않는데 메이웨더가 여기에 몇번 걸려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감독은 2008년 오스카 델라 호야도 파퀴아오의 왼손 훅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졌다고 말했다.

복싱 영웅들이 대개 그렇듯 이들도 어린 시절은 지독히도 불우했다. 이들에게 복싱만이 유일한 탈출로였고 희망이었다.

1978년 필리핀 남쪽 민다나오섬에서 태어난 필리핀 소년은 국회의원이자 국민 영웅이 됐다. 파퀴아오는 우연찮게 복싱이라는 길을 발견해 그의 인생을 걸고 끊임없이 도전했다. 어머니 혼자 6명의 자녀를 양육할 수 없었다. 파퀴아오는 일찌감치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길거리에서 복싱을 배운 그는 재능이 보이자 14살 때 수도 마닐라로 상경했다. 그곳에서 정식으로 복싱을 시작해 1995년 16살의 나이에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데뷔 첫해부터 연전연승하며 재능을 보인 그는 3년째 마침내 처음으로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슈퍼밴텀급 타이틀마저 획득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트레이너이자 평생의 동료인 프레드 로치(55)를 만났다. 한때 복서였던 로치는 25년째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파퀴아오는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나의 트레이너일 뿐만 아니라 조언자이며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밝혔다. 프레드의 건강 상태는 트레이너로선 버겁지만 두 사람 누구도 그것을 불편해하지 않는다.

파퀴아오는 역사상 최초로 8개 체급에서 타이틀을 획득했다. 정식 복싱기구에서 주관하는 7개의 체급을 정복했고, 복싱 전문 잡지 <더 링 매거진>에서 라이트웰터급 챔피언 타이틀을 부여해 여덟 체급을 석권했다. 그의 별명은 팩맨(Pac-Man)이다. 모든 체급을 먹어치웠다고 해서 식충 캐릭터 팩맨에서 가져왔다.

경량급에서 경력을 쌓아가던 파퀴아오는 2008년 당시 정상급 복싱 스타였던 ‘골든 보이’ 오스카 델라 호야를 제물로 삼아 세계 스타로 발돋움한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여섯 체급 석권의 델라 호야와의 대결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최고 전성기가 지났다 해도 키와 몸무게 차이만 해도 대결은 무리로 보였다. 모국 필리핀 국민들 사이에서도 반대운동이 일었지만 그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오히려 델라 호야를 몰아붙여 8라운드 티케이오(TKO)승을 거두며 단숨에 국제적인 스타가 됐다. 특히 필리핀에서 누구보다 높은 지지를 누렸다. 파퀴아오의 경기가 있을 때면 극장이나 공원에서 대형 텔레비전을 지켜보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필리핀 경찰 관계자도 그의 경기가 열릴 때면 범죄율이 떨어진다고 인정할 정도다.

악동 이미지 상품화한 메이웨더

그는 자신이 벌어들인 돈을 모국을 위해 사용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고향 마을이나 낙후된 지역에 병원·학교를 짓는 데 지원금을 보냈다. 지금도 파퀴아오재단을 통해 자선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13년에는 태풍 피해로 고통받는 이재민들을 위해 대전료 191억원을 전액 기부하기도 했다. 만학열을 불태우기도 했다. 29살이던 2007년 고등교육과정 자격을 취득했고 이후 대학에서 학점도 이수했다. 2010년에는 필리핀 하원의원에 당선됐으며 2013년 재선에 성공했다.

2012년 그의 복싱 경력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판정패에 이어 케이오(KO)패 등 2경기 연속 패배했다. 특히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에게 케이오패 당한 뒤 그는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도 나오기 시작했다. 2009년부터 시도되던 메이웨더와의 빅매치 구상도 쏙 들어갔다.

하지만 다시 일어났다. 파퀴아오는 11개월 뒤 브랜던 리오스를 꺾었고, 이어 자신에게 판정패를 안긴 티머시 브래들리와의 재대결에서 승리하며 웰터급 타이틀을 되찾았다. 당시 공원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한 60대 필리핀 시민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예수처럼 그의 복싱 경력이 부활했다”며 “그는 훌륭한 복싱선수일 뿐 아니라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 나는 그가 자랑스럽다”고 감격해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파퀴아오를 필리핀 국민들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잘 보여준다.

악동 이미지로 자신을 상품화하고 있는 메이웨더의 어린 시절 역시 파퀴아오 못지않게 불우했다. 일곱 식구가 한방에서 잘 정도로 가난했으며 가족은 마약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트레이너를 담당했던 아버지는 메이웨더가 아마추어 선수로 성장하려는 그때 코카인 밀매 혐의로 5년 형을 선고받아 투옥됐다. 어머니와 이모도 마약과 무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메이웨더의 몸속에는 뛰어난 복서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 플로이드 메이웨더 시니어뿐 아니라 두 명의 삼촌 역시 전직 프로복서 출신이었다. 특히 삼촌 중 로저 메이웨더는 슈퍼페더급과 라이트웰터급 챔피언을 지내기도 했다. 가족은 단란하지 못했지만 그를 복싱선수로 키워줄 훌륭한 트레이너들은 주변에 넘쳐났다. 메이웨더는 아마추어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전적을 쌓아 1996년에는 애틀랜타 올림픽에 미국 대표로 출전했다. 아쉽게도 동메달에 머물렀다.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메이웨더가 갈 수 있는 길은 프로뿐이었다. 당장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유명한 프로모터 밥 애럼과 계약하며 경력을 쌓아갔지만 애럼과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애럼은 당시 ‘골든 보이’ 델라 호야를 끼고돌았기 때문이다. 참지 못한 그는 10년 만에 애럼에게 75만달러를 지불하고 계약을 파기했다. 직접 프로모션에 나선 그는 더 공격적인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상품화한다. 날렵한 아웃복싱으로 상대의 펀치를 허용하지 않아 깨끗한 얼굴이란 뜻의 ‘프리티 보이’였지만 튀는 행동과 돈에 대한 집착으로 별명이 ‘머니’로 바뀌었다. 메이웨더는 2007년 마침내 델라 호야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며 슈퍼웰터급 타이틀을 차지한다. 당시 델라 호야와의 대전료는 둘이 합쳐 역대 최고인 1억500만달러였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복싱에서 증명해야 할 일은 없다”는 말을 남기고 갑자기 은퇴를 선언한다.

현금 굴러다니는 침대 사진을 SNS에

그는 21개월 만에 링에 돌아왔다. 여전히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언행으로 무대에서 자신을 팔아왔다. 그가 소유한 마케팅 회사 이름도 티엠티(TMT, The Money Team)다. 메이웨더가 은퇴한 뒤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파퀴아오와의 대결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하는 세계 운동선수 부자 순위에서 2012년과 2014년 1위를 기록했다. 2015년 역시 사실상 1위는 예약돼 있다. 그는 자신의 호사스러운 생활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금 뭉치가 굴러다니는 침대 사진을 찍어 올리는가 하면 대저택과 명품 가방, 수십억원에 이르는 슈퍼카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자주 선보이곤 한다.

파퀴아오와 메이웨더. 그들은 성장 배경과 복싱 스타일, 가치관 등 어느 분야에서도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복싱으로 최고의 성공을 거뒀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스포츠 #메이웨더 #파퀴아오 #권투 #복싱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