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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나는 클로짓 게이와 결혼한 뒤 고통스러운 결혼에서 탈출했는가

  • Nimcy
  • 입력 2015.05.01 12:56
  • 수정 2015.06.30 14:12
ⓒAlamy

*이 블로그글은 허핑턴포스트 인도판에 소프트웨어 기술자인 Nimcy가 쓴 I Was Married To An Abusive Gay Man. I Got Out을 번역, 가공한 글입니다.

약 1년 전, 난 자살 노트를 작성한 후 이걸 누구에게 보낸 뒤 내 목숨을 끝내야 하나를 고민했다. 그런데 난 자살하지 못 했다. 추락한 내 모습을 남편이 보며 기뻐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편지를 지우고 대신 친구에게 전화했다.

남편과 결혼 한 지 며칠이 안 됐을 때, 나는 남편이 친구에게 남긴 문자를 봤다. 최근 다른 남자들과 가진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있었다. 우린 둘 다 이혼자였다. 둘 다 배우자의 부정으로 헤어졌다. 똑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믿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번엔 남편이, 다른 여자가 아니라,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거였다.

담판을 짓기로 했다. 그는 당연히 모든 것을 부인했다. 그 거짓말과 악어 눈물에 넘어가 우린 미국에서 영국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약 2달 후 알게 된 사실은, 남편이 이미 15년 전부터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거였다. 아이 둘을 가진 기혼자 절친이 남편의 오랜 비밀 파트너였다. 그런데 이 관계 외에 또 다른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또 한 번 놀랐다. 남편은 또 하나의 남자와도 장기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게이 데이팅 앱인 그라인더(Grindr) 덕에 남편은 자유자재로 바람을 피울 수 있었다.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떠날 수 없었다. 사랑은 희한한 감정이다. 물론 내 상상 속의 형상과 사랑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감정만은 진심이었다. 비판을 받아도 싸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리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나를 감정적으로 학대하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의 문제를 '고치는데' 애쓰지 않는 파렴치한 며느리로 추락했다. 내 복장에 대해 흠을 잡기 시작했다. 왜 늦게 다니냐고 트집을 잡았다. 거실 소파에서 자는 나에게 방세를 내라고 요구했다. 그의 이상한 세계에서 나는 존중할만한 가치를 지닌 인도인 아내가 아니었다.

그의 가족도 인도 가족의 방식으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아내가 어떻게 남편을 위해 요리를 안 하느냐? 다른 여자랑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지 않나? 결혼한 여자가 어떻게 남편을 금전적으로 도울 생각을 안 하는가? 게이 남편과 함께 사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자기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나? 세상의 모든 문제가 다 내 탓인 것처럼 그들은 나를 공격했다.

이런 트라우마를 심리적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신체적으로도 여파가 있다. 몸이 협조를 안 한다. 숙면을 취하는 것, 허기를 느끼는 것, 직장 가는 길을 기억하는 것. 매우 일상적인 활동이 내겐 벅찼다.

논리적으로 따지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되는대로 하루하루를 살기로 했다. 의사, 상담자, 누구든 우리의 상황에 도움이 되고, 남편이 자기의 성적 지향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 찾아봤다. 깨끗하게 관계를 정리하는 방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좋아지지 않았다. 그는 원래대로 자기도취증자로 남았다.

그러던 어느날, 인터넷을 검색하다 우연히 게이 남편과 사는 이성애자 여자들을 위한 웹사이트 '보니 케이(Bonnie Kay)'를 발견했고, 그녀에게 도움 요청이 담긴 이메일을 보냈다. 도움은 곧바로 왔다. 나는 게이 남편과 살면서 고통받는 이성애자 아내들을 위한 협력단체와 연결될 수 있었고, 다양한 나이와 국적의 사람들과 소통했다. 가상의 가족에 환영을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몇 달 동안 그들은 나의 1등 지지자였다.

차차 놀라움이 사라지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내 문제가 결혼을 잘 못 한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것은 여성의 삶에 관한 사회적 문제였다. 가방을 챙겨들고 마침내 독립의 길에 나설 때까지 약 2달 동안 돈을 모았다. 그렇다고 내가 매우 강한 여자였던 건 아니다. 마음은 조각났고, 우울했고, 혼란스러웠고, 창피했고, 두려웠다. 다음 단계가 뭔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친한 친구 캐스가 한 말이 기억났다. "네가 상상한 것과 똑같은 미래는 아닐지라도 행복할 수 있는 미래는 가능해."

그녀가 옳았다. 매우.

왜 남편을 떠나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사회가 두려웠던 건가? 그렇다. 친정 식구들이 상처 입을 걸 걱정한 거였을까? 그렇다. 사람들의 이목과 비난이 두려웠던 건가? 확실히 그렇다.

내가 두려워하던 것이 모두 현실이 됐지만 난 그래도 떠났다. 1년이 지난 지금, 내가 그 결정을 후회할까? 당연히 아니다! 나 같은 상황에 빠진 사람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뭘까? 또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린 어떤 해법을 고안할 수 있을까?

'사회'는 법이 아니다.

우리가 - 당신과 내가 - 사회를 형성한다. 바람둥이이자 동성애자인 남편과 부부생활을 했다고, 또 그런 그를 떠날 용기를 얻었다고 해서 범법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고와 다른 방식을 삶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사람을 범법자로 추궁할 수도 없다.

의식의 발전과 관용을 격려하자.

사람의 성적 지향을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몰래 이성애자 여자와 결혼하는 게이들을 방지하기 위해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는 날만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이 또 있다. 난 종종 동성애자 남자와 여자에 대한 나쁜 농담을 자주 듣는다. 그런 자리에 동성애자가 있었다면 그런 농담을 우연히 듣고 상처를 받은 뒤 영원히 옷장 속에 숨게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이런 무신경한 농담을 내뱉는 사람들을 중단시킬 수 있는가?

내 엄마는 남편이 바람피는 대상이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좋은거냐 아니냐라고 내게 질문했다. 그 순간 이 문제가 매우 예민한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난 엄마에게 화가 잔뜩 났다. 어떻게 좋을 수 있는가 말이다. 피곤한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가 나중에 말했다. 즉, 인도의 케랄라 같은 작은 마을에선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뿐더러, 성 자체가 존재한다는 사실 조차 잊어버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그저 무지했을 뿐이다.

보다 나이 든 세대에게 동성애가 서양에서 건너온 나쁜 유행이나 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가르칠 수는 없을까?

그런데 동성애자 남녀가 기억해야 사실이 하나 있다. 동성애자로서 비난받는 삶이 불공평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결혼해서 타인의 인생을 망가뜨릴 자유 이용권은 행사하면 안 된다는 거다.

결혼의 새로운 정의

결혼이란 아름다운 거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매우 기쁜 것이다. 누군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는 소중하다. 그러나 결혼이 사람의 존재를 정의하지는 못한다. 사람의 목표는 결혼해 아이 둘을 갖고 집과 차를 구입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로 늙는 것이 다가 아니다. 우리는 다양한 삶을 지향할 수 있다. 여행, 새로운 기술, 새로운 커리어, 자선. 가능성은 끝이 없다.

내 인생은 이혼 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난 여행을 시작했다. 지금도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혼자 살면서 직업과 일상을 동시에 즐기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몇 년 만에 난 정말로 행복하고 평화롭다.

이혼을 했다고 실패자로 남는 건 아니다. 나쁜 관계에 평생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결정일 뿐이며, 새로운 삶을 위해 그런 관계에서 뛰쳐나올 용기가 있다는 거다. 인생을 새로운 시야로 응시하게 된다. 변화와 미래의 장벽을 수용하자.

인도 여성에 대한 관념을 업데이트하자

시누이와 시누이 남편에게 내 남편이 게이라고 말했을 때 그녀의 반응은, 남편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 있느냐는 거였다. 대체 그 두 가지가 무슨 관련이 있다고 그런 질문을 한 것일까? 인도 여자로서 집을 청소하고 가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고 게이 남편이 이성애자로 변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내 역할이라는 말인가? 희생적으로 살면 천사지만 자기의 의견을 말하는 순간 식모라는 건가?

이젠 모든 것이 끝났고 정리되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 터널 끝에 밝은 불이 기다리고 있느냐는 거다.

있다. 그리고 너무 자주 말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적절한 클리셰를 한 마디 하겠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치유된다. 정말로 그렇다.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다. 우린 잘 해야 70-80세까지 산다(버스 사고가 나거나 범죄자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한 말이다). 첫 20년 동안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 가를 궁리하면서 보내고, 마지막 몇 년은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면서 보낸다. 그렇다면 그 중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겠나? 팔자나 신을 탓하며 나쁜 상황에 머물 건가? 아니면 그런 삶에서 탈출하여 위험을 무릎쓰고 새로운 시도를 할 건가?

허핑턴포스트의 블로그라는 공공의 터를 활용해 익명도 배제한 채 나의 치부와도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은 도움이나 연민을 바라서도 아니고 구질구질한 사연을 호소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난 이제 내 가족을 포함해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동성애자 남자와 결혼한 이성애자 아내 중 누구라도 나처럼 힘들게 살아가는 여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이다.

만약 당신이 동성애자 남자와 결혼한 이성애자 여자고, 좀 더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면 이곳(클릭!)을 꼭 참조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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