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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이 정상이 된 동아시아

동아시아에서 안보 문제는 제각기 분리된 것이 아니라 기계처럼 맞물려 진행되는 강대국 정치의 양상을 확연히 드러낸다. 여기서 순수한 한반도 문제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남북한의 대결이라는 것도 두 맹수가 지켜보는 작은 우리에서 두 토끼가 싸우는 격이다. 지금이야 토끼들끼리의 싸움을 지켜보기만 하겠지만 이 맹수가 참견을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한반도 사드 배치 논쟁은 두 맹수가 직접 참견하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의제였다. 1950년의 한국전쟁도 처음에는 남북한 전쟁이었지만 나중에는 미-중 전쟁이 된 것 아닌가? 예전처럼 우리는 한반도의 지정학은 불변이라는 점을 재확인할 수밖에 없다.

  • 김종대
  • 입력 2015.04.29 09:24
  • 수정 2015.06.29 14:12
ⓒnarvikk

황사와 꽃가루가 온종일 쏟아지는 4월의 베이징에는 먼지가 쌓인다. 하늘 한 귀퉁이가 부서졌는지, 무섭게 쌓이는 대륙의 부스러기들. 그 속에서도 악을 써대는 장사꾼과 신경질적인 자동차의 경적 소리, 그것마저 잦아드는 밤에 베이징의 뒷골목에는 대륙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공사판의 차단벽에도 '중화굴기', '민족부흥', '비룡재천'을 써 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이 거대한 공룡은 강대국을 향한 집단 의지를 불태운다. 때마침 사드 요격미사일의 한반도 배치, 네팔 지진,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필리핀의 대규모 군사훈련에 이은 양국의 확대안보협력협정 체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이 이어지는 동아시아의 긴박한 정세는 중국에 새로운 도전이다. 그래서일까? 필자가 만난 중국 정부의 핵심 지식인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인물은 "앞으로 3년간 중국의 국방비에서 매년 증액되는 규모가 한국의 국방비보다 클 것"이라고 전망한다.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기존 국방비에다가 매년 400억달러, 3년간 1200억달러를 더 늘린다는 놀랄 만한 이야기다. 이렇게 되면 3년 후 중국의 국방비는 250% 성장한다.

때마침 국영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충돌하는 가상 시나리오를 자극적으로 편집하여 방영한다. 미국에서 아직 개발에 착수하지도 않은 F-35C를 미 7함대의 핵심전력이라고 하고, 성능도 불확실한 무인전투기 X-47을 함재기의 주력이라고 하질 않나, 갖은 허풍으로 임박한 전쟁을 선동한다. 비논리적으로 증폭된 미국 공포는 마치 한국의 보수언론이 북한 위협을 부풀리는 수법과 유사하다. 중국 위협을 부풀리는 데 미국 군사전문가들도 한 허풍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어딜 가나 이른바 군사전문가라는 양반들은 도대체 정상인 같지가 않다. 그러나 국가주의가 말하는 국제정치에서 이런 비정상들이 정상이 된 걸 어찌하겠는가. 필자는 다른 중국 관리를 통해 우리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국가안전위원회가 올해 2월부터 미국의 사드 요격체계가 한반도에 배치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정치·군사적 대응 매뉴얼을 구상하는 데 착수하였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확인했다. 이쯤 되면 정신이 아찔해진다. 동북아의 열점이 된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이 전략적으로 충돌하는 대결승전의 무대였던 셈이다. 필자가 완전히 기절해버리는 데는 중국에서의 나흘이면 충분했다.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증폭된 계기는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였다. 중국은 일본과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영토분쟁으로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도 막후접촉을 통해 미국의 입장을 고려한 몇 가지 양보조처를 했다. 그런 와중에 미국이 한국에 사드 배치를 추진함으로써 자신들은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고 본다. 이것이 시진핑 주석이 사드 문제에 직접 개입한 배경이다. 화가 난 중국은 이제 분쟁의 눈으로 미국을 바라보려고 하고, 미국은 그걸 또 이용하는 그야말로 확실히 망가진 비정상으로 가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안보 문제는 제각기 분리된 것이 아니라 기계처럼 맞물려 진행되는 강대국 정치의 양상을 확연히 드러낸다. 여기서 순수한 한반도 문제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남북한의 대결이라는 것도 두 맹수가 지켜보는 작은 우리에서 두 토끼가 싸우는 격이다. 지금이야 토끼들끼리의 싸움을 지켜보기만 하겠지만 이 맹수가 참견을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한반도 사드 배치 논쟁은 두 맹수가 직접 참견하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의제였다. 1950년의 한국전쟁도 처음에는 남북한 전쟁이었지만 나중에는 미-중 전쟁이 된 것 아닌가? 예전처럼 우리는 한반도의 지정학은 불변이라는 점을 재확인할 수밖에 없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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