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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늘 기억해야 할 어느 애국자

하필 아베 수상이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기로 한 날짜가 현지 시간으로 4월 29일이란 걸 알게 되니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나는 전율을 느끼며 더욱 답답하고 부끄러워지면서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4월 29일이 왜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자면 잠시 70년 전인 1945년으로 돌아가 아베 일본 수상이 그렇게도 그 굴레를 던져 버리고자 했던, 일본이 패전하던 날로 시계 바늘을 돌려 보아야 한다.

  • 바베르크
  • 입력 2015.04.29 07:45
  • 수정 2015.06.29 14:12

아베 일본 수상이 현재 미국 방문 중이다. 튼튼한 미일 동맹 관계를 보여 주려는지,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이례적으로 자택에 아베 수상 부부를 초청했는가 하면, 케네디 대통령 딸인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 대사는 아베 수상을 위하여 아빠를 기념하는 도서관 안내를 자청하기도 했다. 아베 수상은 이른바 종군 위안부(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해결하라는 침묵 시위대를 피하여 들어가느라 모양새가 좀 구겨지기는 했으나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서도 연설하는가 하면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만찬도 진행하였고, 미국 동부 시간으로 4월 29일에는 미 의회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일본 수상으로서는 최초로 연설할 예정이다.

올해가 일본이 미국 등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여 패전한지 70주년이 되는 해인데 아베 수상은 이번 미국 방문에서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미국과의 방위 가이드라인도 개정해 그가 그렇게 염원했었던 이른바 보통국가(라고 쓰고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 없이 재무장의 길로 줄달음질친다로 읽는다)로의 움직임을 가속화할 기세이다. 우리나라의 최대 우방인 미국이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을 환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일 뿐만 아니라, 최근 과거사 문제에서 그나마 우리와 보조를 맞추어왔던 중국마저 지난번 60주년 기념 반둥회의에서의 중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하려는 듯한 입장을 보여 아베 수상의 미국 방문을 지켜 봐야만 하는 우리로서야 그저 착잡하기만 할 따름이다.

그런데 앞에서 보았듯이 하필 아베 수상이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기로 한 날짜가 현지 시간으로 4월 29일이란 걸 알게 되니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나는 전율을 느끼며 더욱 답답하고 부끄러워지면서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4월 29일이 왜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자면 잠시 70년 전인 1945년으로 돌아가 아베 일본 수상이 그렇게도 그 굴레를 던져 버리고자 했던, 일본이 패전하던 날로 시계 바늘을 돌려 보아야 한다.

일본 덴노 히로히토가 소위 옥음(玉音, 우웩-)방송을 한 날은 이제 우리가 광복절로 기념하는 된 1945년 8월 15일이지만 당시의 일본제국과 소위 황군이 정식으로 미국 등 연합국에 정식으로 무조건 항복한 것은 그해 9월 2일 도쿄만에 정박한 미국 전함 미주리호 함상이었다. 자 그럼 여기서 바로 그 당시의 상황을 전하는 뉴스 영상을 잠시 보기로 하자.

미주리호 함상에서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시게미쯔 마모루.

항복문서에 사인하고 있는 시게미쯔 마모루.

이 영상에서 일본을 대표해 무조건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이는 시게미쯔 마모루 당시 일본 외상이다. 그런데 이 영상 속에서 그는 의족을 하고 지팡이에 의지한 모습이다. 영상 속에서 시게미쯔가 도쿄만에 정박한 미주리호 함상에 지팡이를 짚고 오르는 순간에 나레이터는 "몇 년 전 그는 한국의 애국자에 의해 상하이에서 부상을 입어 의족을 하고 있다"고 한다(동영상에서 1분 50초 정도 지난 부분부터 보면 된다). 한.국.의 애.국.자.? 상.하.이.? 부.상.? 그렇다, 시게미쯔 마모루 당시 일본 외상은 바로 1932년 4월 29일, 즉 아베가 미 상하양원 합동연설 하기 정확히 83년 전, 중국 상하이에서 한국 애국자의 공격을 받아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하게 된 것이다.

시게미쯔 마모루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의 홍구 공원(지금은 노신 공원으로 이름이 바뀜)에서 열린, 일본 덴노 히로히토의 생일 축하 및 그 얼마 전에 끝난 상하이 사변에서 중국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상하이 거주 일본인들의 소위 천장절 기념행사에, 당시 상하이 주재 일본 공사로 단상에서 참석 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다 눈치채셨겠지만 시게미쯔에게 도시락 폭탄을 던져 그를 부상하게 하고 나중에 일본 외상까지 승진한 그가 일본을 대표해 미주리호 함상에서 무조건 항복 문서에 서명할 때 다리를 절게 만든 한국 애국자는 바로 윤봉길 의사님이었던 것이다ㅜㅗㅜ

현대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윤봉길 의사님 의거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다시 70년 전인 1945년 9월 2일 도쿄만에 정박한 미주리호 함상 영상으로 돌아가 보자. 윤봉길 의사님의 의거에 한쪽 다리를 잃어 절룩거리며 시종일관 지팡이에 의한 시게미쯔의 모습은 너무나 두드러지게 보인다. 나중에 뉴스 영상을 만들며 나레이터까지 정확히 "상하이에서 한국 애국자에 의해서 부상입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 자리에 참석한 맥아더 장군, 니미츠 제독, (당시 남한 미 군정 사령관인) 하지 중장 등 미군 고위 참석자들은 물론이고, 본국에 있는 미국 정부의 트루먼 대통령 이하 고위 관료들, 그리고 미국과 함께 일본의 항복을 같이 받은 영국, 중국, 소련, 네덜란드, 호주 등등의 연합국 장성들과 역시 각각의 본국 정부 인사들, 그리고 현장 및 뉴스 영상과 신문 보도로 이 역사적 장면을 지켜본 1945년 당시의 세계인들은 한국의 어느 청년 애국자가 침략자 일본이 한국을 넘어 다른 나라로 침략을 시작하던 시점인 1932년에 일본 제국의 고관에게 타격을 입혔음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확인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니 나는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님께서 일본이 미국의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떨어뜨린 다음 바로 항복하는 바람에 우리는 전장에서 시원하게 침략자인 그들을 쳐부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을 슬퍼하셨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아까의 영상을 암만 여러 번 돌려 보아도 미주리호 함상에서 일본의 항복을 받는 각국 장성들 중 우리 광복군 장성은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자리에 참석했던 모든 이들과 이를 지켜 본 당시의 세계인들은 비굴하게 자비를 구하는 일본 외상이 더 비굴하고 초라하게 보이게 그를 의족과 지팡이에 의지하게 만든 이가 바로 한국 애국자(Korean Patriot)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침략자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받는 그 자리에 초대받지는 못했지만-_-; 아무 것도 갖지 못한; 피압박 민족의 청년이 자신의 조국 한국을 넘어, 그 침략자가 세계를 향해서 마수를 뻗치기 시작할 무렵인 1932년 4월 29일에 그 침략자에 외로이 맞서서 평생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타격을 입혔던 것이다.

이 이상으로 이 한민족이, 한국인이 당신들처럼 당당한 독립국의 국민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세계인들에게 더 또렷하게 보여 줄 수 있는 일이 있었을까? 아베 수상이 미국 의회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며 70년 전 미주리호 함상에서의 항복을 씻어버렸다고 자부하는 4월 29일 오늘은 바로 그 한국인 애국자 윤봉길 의사님께서 중국 상하이 홍구 공원에서 침략자 일제에게 타격을 입히신 의거일이다. 망국민으로서 분연히 일어 나셔서 침략자 일제에 맞서셔서 우리도 떳떳이 독립할 자격이 있다고 밝히셨던 윤봉길 의사님의 뜻을 제대로 잇지 못한 부끄러운 후대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저 참담하게 오늘을 맞이하자니 답답하고 슬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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